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여행지로 방초정을 소개합니다.

 

김천에서 거창으로 통하는 3번국도는,

구미을 기점으로 거창, 함양 으로의 여행길뿐만 아니라,

전남 광주지방 으로의 업무관계로 오래전 부터 자주 다녔던 길로서,

 

자주 다니게되다 보니 알게된,

유명 맛집인 지례의 까막돼지 연탄석쇠 불고기집인,

"원조 지례 삼거리식당" 은 잊지않고 찾곤 하였었는데,

 

우연히 알게되어 찾아온,

김천시 구성면 의 "방초정" 입니다.

 

성주댐을 넘어 오면서 길을 잘못 든탓에,

예상보다 좀늦게 해질녘이 가까워서야 목적지에 도착을 할수가 있었습니다.

 

 

 

 

 

 날아갈듯 아름다운 모습,

그러나 슬픈 이야기가 있는 정자 "방초정"입니다.

 

 

 

 

방초정의 현판입니다.

이 현판은 김대만이 쓴 것이라고 전합니다.

 

 

 

 

가마를 탄 형상의 2층 누각의 팔각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장방형의 건물입니다.

화강암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로 초석을 놓고,

한칸 규모의 온돌방을 구성하고 있으며,

누 상부의 네 기둥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주를 세웠습니다.

또한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지붕의 추녀를 받들고 있는 둥근 활주가 있습니다. 

 

 

 

 

정자 앞에 있는 연못은 "최씨담"으로,

커다란 방지(方池)가 꾸며져 있으며 연못 가운데에 두개의 섬이 있습니다.

 

 

 

 

최씨담의 섬이 두 개인 것에 대해서는,

사실이야 어떻든 최씨 부인과 몸종 석이의 무덤형태로 축조된 것이라는 전설이 있으니..

우리나라의 연못에서 섬은 대개 삼신사상(三神思想)을 상징하는 세 개의 섬이 있거나,

또는 천원지방(天圓池方) 사상을 나타내는 한 개의 섬을 조성해 두는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두 개의 섬을 조성한 것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물에 빠져 죽은 최씨와 석이를 추모하기 위해 일부러 만든 특이한 형태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는 연못을 하늘로 보고,

해와 달을 상징 하는것으로 하여 2개의 섬을 두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기둥을 받쳐주는 주춧돌은,

자연석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자의 왼쪽을 돌아서면 옆면에,

누각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의 일부를 부분적으로 보수를 해둔 모습이 보입니다.

 

 

 

 

방초정의 아름다움이 있으니,

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이 정자에 올라,

감천을 사이에두고 너른들과 가까이는 불두산과 멀리는 금오산을 조망하는,

정자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찬미한 시를 볼수가 있습니다. 

 

 

 

 

중앙에는 한칸 크기로,

문을 들어 여닫을 수 있는 들문을 달았으며,

창호에 한지를 바른 것은 자연 채광과 더불어 환기를 위한 것이며,

걷어올리면 마루가 되고 내려 닫으면 방으로 쓸 수 있게 해두어,

여름에는 사방으로 조망을 할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서,

옛날의 풍광은 퇴색이 되긴 했지만,

최씨담 너머로 흐르는 감천과 들판을 지나면 서있는 불두산의 전경이 들어옵니다.

 

 

 

 

영남지방의 정자로는 보기 드물게,

마루 한가운데에 한칸 크기의 온돌방이 꾸며져 있으며,

2층 누각의 중앙 온돌방에는 들문이 달려 있습니다.

이 문을 걸어올리면 넓은 마루가 되고, 내려닫으면 방으로 쓸 수 있는 구조입니다.

 

 

누각 중앙의 방 아래에는 돌과 흙으로 쌓아올린 구들이 있어,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라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름답고도 슬픈이야기를 간직한 정자에서 상념에 잠겨봅니다. 

 

 

 

 

화순최씨(和順崔氏)의 정려각(旌閭閣)과 풍기진씨 열행비각 입니다.

앞에 보이는 최씨부인의 커다란 정려각과 함께,

정려각 앞에서 앙증맞게 서있는 최씨부인의 몸종 석이의 빗돌이 있습니다.

몸종 석이의 빗돌은,

1975년 방초정 연못을 준설할 때 못에 묻혀있던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碑)가 발견되어,

화순최씨 정려각 앞에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방초정(芳草亭)은,

1625년(인조3년) 이곳 출신으로 선조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유학자 연안이씨 (延安李氏) 방초(芳草) 이정복(李廷馥, 1575-1637)이 지은 정자로서,

1723년(경종 3년) 여름 홍수에 유실된 것을 4년 뒤인 1727년(영조 3)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2층누각의 형식으로 꾸며놓았았지만 주위에는 담장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누각과같은 시원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정자에서 내려와,

어둠이 내려오는 최씨담을 돌아보며 비각으로 향합니다.

 

 

 

 

이정복의 부인 절부(節婦) 화순최씨(和順崔氏)의 정려각(旌閭閣)입니다. 

 

 

 

 

정려각 앞에,

몸종 석이의 비석과 나란이 비각을 지키려는듯 돌이 서있고,

 

 

 

 

 화순최씨 정려비 입니다.

 

절부 화순최씨는 임진왜란때 혼인 직후 시댁으로 왔다가 왜적을 만나자,

"왜적에게 욕보이는 건 깨끗하게 죽는 이만 못하다" 고 하여 못에 몸을 던져 자진(自盡)하니,

이때의 나이가 17세였다고 합니다.

이때 주인을 잃은 종 석이(石伊)도 따라 죽었다고 합니다.

 

 

 

 

비석위에 자리해 있는,

1632년(인조 10년) "화순 최씨" 에게 인조임금이 직접써서 하사하였다는 정려문입니다. 

 

 

 

 

"화순최씨 정려비" 옆에 자리한 "풍기진씨 열행비각" 입니다.

 

 

 

 

풍기진씨 열행비 입니다.

 

 

풍기진씨는 진희태(秦喜泰)의 딸로 1912년 대구(大邱)에서 태어났으며,

18세 때 연안(延安)인 이기영에게 시집을 가서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며 동기간에도 우애가 깊어 온 집 안의 복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어느 해 남편이 병이 들어 앓아누웠다.

풍기진씨가 하늘에다 자기 목숨과 대신해 줄 것을 빌었지만 남편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마침내 대구에 있는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후였다.

늑막염으로 고생하던 남편의 증상이 복막염으로 확대되었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1935년 11월 초 대구 친정에서 남편이 사망하자, 풍기진씨는 “남편은 내가 죽인 것이다.”라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그녀는 식음(食飮)을 전폐하고 한없이 슬퍼하였다.

무지했기 때문에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였다는 원통함과 남편에 대한 죄스러움이 그녀로 하여금 죽을 결심을 하게 했다.

남편의 장례 준비를 손수 마련해 놓은 눈 오는 밤,

풍기진씨는 “남편이 찬방에 홀로 누웠는데 내가 어찌 더운 방에서 자랴.” 하며,

얼어서 죽을 각오를 하고는 밖으로 나가 눈이 오는 마당에 누웠다.

그러나 곧 집안사람에게 발각되어 남편을 따르지 못하자,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남편의 시체 옆에 가서 반듯이 누웠다.

그리하여 일체의 음식을 거부하고 남편을 따라갔다.

1935년 12월 18일, 풍기진씨가 남편이 죽은 방에서 따라 죽 굶어 죽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 24세였다.

전국 각 유림에서 애도문(哀悼文)과 제문(祭文), 만사(輓詞) 등을 보내 왔으며,

1937년 3월에는 정려를 세워 후세인의 본보기로 하였다.

(영남삼강록과 충의효열지 열부편에 기록되어 있는 글입니다) 

 

 

 

 

 

풍기진씨 열행비각의 천정도 단청을 하여 두었습니다. 

 

 

 

 

 연못으로 되돌아 나오니,

땅거미가 아름드리 버드나무에 내리고 있습니다.

 

 

 

 

최씨부인이 물에 빠져 죽고난후,

신랑 이정복은 벼슬임지에서 돌아와 부인을 잊지 못해 여러 해 동안 웅덩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후손을 봐야한다는 문중의 권유로 훗날 재혼은 하였으나,

못 옆에 정자를 지어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부부의 인연을 영원토록 함께 하기를 기원했다.

그렇게 먼저 간 부인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정자가 방초정이며,

웅덩이를 확장하여 개축하고 최씨의 연못이라는 의미로 최씨담(崔氏潭)이라고 명명했다.

(방초정에 관해서 전해오는 또다른 이야기 입니다)

 

 

 

 

마을로 들어오는 초입의 가로등도 불을 밝히고, 

 

 

 

 

두개의 섬사이에,

날아 갈듯이 자리한 방초정 입니다. 

 

 

 

 

연못의 한쪽에는,

수명을 다하여 쓰러진 고목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고, 

 

 

 

 

한그루가 아니라 나란히 서서,

끝까지 남아서 정자와 연못의 의미를 지키려는듯 서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는 방초정,

분위기 있는 고즈넉함을 맛보게 해줍니다.

 

 

 

 

 

방초정(芳草亭)!

이곳은 아름다운 주변경관과 함께,

최씨부인과 몸종 석이의 정절 이야기를 간직한,

조선조 정원의 대표적인 별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마을 앞에 자리해 있어 마을사람들의 공동 정자로 변모했지만,

최씨부인의 커다란 정려각과 함께 앙증맞게 서있는 몸종 석이의 비석은,

요즘처럼 삶의 가치관이 혼란할 때 사랑과 지조, 의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열부 최씨와 진씨 등의 이야기처럼 부부의 신의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살아 있는,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 김천의 아름다운 정자 방초정(芳草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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