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장사해수욕장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치 좌초한듯 정박하고 있는 "LST문산호"의 실물 모형인,

"장사 상륙작전(長沙上陸作戰) 전승기념관"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영덕군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상륙함 문산호를 복원한 전승기념관으로,

영덕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은 국내 유일의 바다 위 호국 전시관이며,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토대를 마련하며 한국 전쟁사에 영원히 남을 전투로,

역사속으로 사라질 뻔한 호국영웅들의 희생과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건립되어,

2020년 6월에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이 개관 하였으며,

 

 

 

 

전승기념관은 장사 해수욕장의 끝부분에 위치해 있으며,

 

 

 

 

장사 전승기념관 앞에는 전승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바다에서 나와 목적지인 육지의 어느곳으로 향하는 듯한 형상으로,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시키기위해,

북한군을 기만할 목적으로 양동작전을 수행한 학도의용군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조형물이며,

1950년 9월 15일부터 9월 28일까지,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의 이곳 장사리에서 벌어진 상륙작전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작전명 174호, 174 고지라고도 하며,

 

 

 

 

9월 14일 부산항을 출발한 이후 9월 15일 06:00에 상륙작전이 개시 되었는데,

학도병 772명으로 구성된 제1독립유격대대가 LST 문산을 타고 장사리 해안에 상륙하여,

국도 제7호선을 봉쇄하고 조선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하고 철수한 작전으로,

 

 

 

 

이 상륙작전은 인천 상륙 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실시되어 양동작전으로서는 성공 하였는데,

원래는 제8군의 임무였으나 유엔군의 상륙지점 교란을 위해 인민군 복장을 입고 특수 작전을 해야 하는 사정상,

북한군과 외모가 비슷한 남한 출신 학생들인 학도병에게 작전명 174를 맡긴 것이라 하며,

 

 

 

 

부대는 3일간의 물자만 보급받아 9월 14일 2시에 장사리 해안에 상륙하여 교란할 때 다쓰고 철수할 예정 이었는데,

그러나 때마침 불어온 태풍 케지아로 인해 LST 문산이 좌초되는 바람에 작전 계획은 뒤틀려 버렸고,

발이 묶은 제1독립유격대대는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7번 국도 차단 임무를 계속 수행 하였는데,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한 뒤, 9월 19일에 유엔군 정찰기에 포착되었고,

해안선을 따라 항행하던 미국 제7함대 태스크 포스 77 소속 USS 헬레나 (CA-75)가 이끄는,

포격임무대(bombardment Task Force)의 엄호를 받으며,

LST 조치원을 타고 철수하였으며 일부는 남겨졌는데 그들의 생사는 알 수 없는데,

작전의 결과로 제1독립유격대대의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부대는 휴식을 취하고 인원을 보충받은 정비한 뒤 다시 전선에 복귀 하였습니다.

 

 

 

 

전승기념관은 유료로 관람할수 있는데,

성인 3,000원이고 중고등 2,000원, 초등 1,000원이며,

단체로 가거나 경주, 포항, 울진, 울릉도에 주소를 둔 사람이면 50%할인 적용 받을수 있습니다.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계단을 통하여 아랫층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으며,

 

 

 

지상 3층으로 설립된 전승기념관에서는 전시유품공간과,

1950년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6일간의 장사상륙작전을 다루고 있는 전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50년 9월 한국전쟁 당시의 한반도의 상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낙동강 전투의 모습을 모형으로 재현해 두었고,

 

 

 

 

한국전쟁 당시 장사 상륙작전을 위한 학도병의 자료들을 모아두어,

 

 

 

 

학도병이란 6·25 전쟁 때 학업을 중단하고 자진하여 참전한 병사들로,

의용병, 학도의용병이라고도 하며,

 

 

 

 

중학생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학도병은 전쟁 전 기간을 통하여 2만 7700명에 이르렀고,

후방 또는 수복지역에서 선무활동에 참여한 학생은 20만명이나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많은 여학생들이 간호병으로 활동 하였고,

학도병들은 정규장비와 보급도 없이 "군번없는 병사"로서 전투에 참가했는데,

특히 대구로 내려간 학도병들은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경북 포항의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에 당시의 생생한 전투 장면이 재연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학도병이 주축이 되어,

"LST 문산호'를 이용한 장사상륙작전이 전개 되었는데,

 

 

 

 

장사상륙작전때 독립제1유격대 대원들이 입었던 군복으로,

북한군으로 위장하여 전투에 참여 했다고 하며,

 

 

 

 

당시 학도병의 상징이기도 했던 책가방은 베낭을 대신하는 역활을 했다고 합니다.

 

 

 

 

전장에 나가기전 학도병들의 군사훈련의 모습을 디오라마(Diorama)로 재현해 두어,

사격을위한 에비작업인 PRI훈련이 있었고,

 

 

 

 

백병전에 대비한 총검술 훈련이며,

 

 

 

 

실거리 사격훈련도 실시 하였고,

 

 

 

 

밤에 강을 건너서 적진에 침투하는 야간 도하훈련의 모습도 재현이 되어 있습니다.

 

 

 

 

코너를 돌면 스크린에는,

당시 장사 상륙작전(長沙上陸作戰)에 참여했던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수 있고,

 

 

 

 

또다른 공간에는 장사 상륙작전(長沙上陸作戰)을 위한 공간으로,

 

 

 

 

LST 문산호를 이용한 "장사 상륙작전(長沙上陸作戰)"의 모습을 디오라마(Diorama)로 재현해 두었는데,

 

 

 

 

그당시의 상황을 알수있게 해두어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전시관을 나와 계단을 오르면,

 

 

 

 

한쪽에는 철판을 세워두어,

마치 배 옆면의 한부분으로 보이게 해 두었는데,

 

 

 

 

복도를 지나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3일간의 교란작전을 무사히 마쳤지만,

태풍 케지아로 인해 LST 문산이 좌초 되는 바람에 철수하지 못하고,

발이 묶인 제1독립유격대대의 모습을 재현해 두었고,

 

 

 

 

 

1950년 9월 19일 이후,

LST 조치원을 타고 철수하는 모습을 재현해 두었는데,

높은 파도로 인하여 철수용 LST함이 해안까지 접근하기 불가능 함으로,

육지와 약 200m 정도 떨어진 해상까지 접근한 후,

육지와 함정 사이를 연결 시킨 밧줄을 잡고 바닷물을 헤쳐나가는 방법으로 수송선에 오르기로 했고,

또 철수 개시 시간은 아침 6시 30분으로 결정하여 미군 함정의 엄호사격과 동시에 철수작전이 시작 되었는데,

파도가 너무 높아 완전 무장한 대원들이 파도를 이기지 못하여 물속으로 휩쓸려 익사하는 이도 있았다고 합니다.

 

 

 

 

장사 상륙작전은 주로 나이 어린 학생 772명으로,

그들은 군번도 부여 받지 않았고 정식 계급도 부여 받지 않은채 출전 했었기에,

겉 보기에는 군인 같지만 법적인 면에서는 엄연한 민간인의 자격으로 참전했던 것이며,

 

 

 

 

병력 수송을 위해 동원된 선박은 정규 군함도 아닌,

해운공사에서 징발한 문산호(2700톤급) 단 1 척으로,

작전 지역까지의 호송만 미국 군함이 호송 하였을 뿐이라 하며,

전투요원의 군장 역시 개인용 소총(소련제 장총)과 탄약 등으로 무장한 기본적인 경보병 수준의 무장이었으며,

탄약과 식량도 겨우 3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지급 하였다고 합니다.

 

 

 

 

다음 전시실에는 아랫쪽이 내려다 보이게 해두고,

그곳에는 장사 상륙작전(長沙上陸作戰)에 참가한 이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고,

 

 

 

 

중앙에는 그들의 나라를 향한 불꽃같은 정열을 표현하듯,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샌드아트 영상관 에서는 장사 상륙작전의 과정을,

펼쳐진 모래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 영상이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예술인 샌드아트로 살필수 있으며,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남길수 있는,

샌드 디지털 방명록도 있으니 자취를 남겨볼만 합니다.

 

 

 

 

전시관을 나오는 곳에는,

어린 학도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말자는 당부가 있고,

 

 

 

 

전시실을 나와 위로 나있는 계단을 오르면,

 

 

 

 

LST문산호 실물모형의 갑판에 이를수 있으며,

 

 

 

 

갑판 위에는 1990년에 도입되어,

분당 최대 160발을 발사할수가 있는 40 L 60(S)함포가 전시 되어 있는데,

중형고속정인 PKM에 주포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이곳을 찾은 기념으로 포토존으로 인기가 많으며,

 

 

 

 

군함의 상갑판 중앙부에 높게 만든 지휘 통제 시설인 함교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함교에는 별다른 시설은 없고 쉴수있는 휴식 공간만 있으며,

 

 

 

 

함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문산호의 갑판으로,

마치 LST 문산호에 승선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주는데,

 

당시 LST 문산은 좌초된 채로 버려졌고,

시간이 지나 1991년 3월 6일에 수색 작업에 나선 해병대가 장사 앞바다에서,

2700t급 전차상륙함 문산호가 난파선으로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경북 영덕의 장사해변에서 찾은 군함으로,

6·25 전쟁의 한부분으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시키기 위해,

북한군을 기만하기 위한 양동작전으로 수행 되었던 장사 상륙작전(長沙上陸作戰)으로,

구국의 일념으로 참여 하였던 학도병의 빛나는 전공이 남아 있는 곳으로,

잊지 말아야할 우리의 근대사인 "장사 상륙작전(長沙上陸作戰) 전승기념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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