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예천군 도장면 지보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가옥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92호인 "예천 석문종택(醴泉 石門宗宅)"입니다.

 

석문종택(石門宗宅)은 1609년(광해군 1)에,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이 건립 하였는데,

 

건물은 완만한 경사면에 서남향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초가 지붕을 올린 "一"자 형의 대문채와,

기와 지붕을 둔"ㄷ"자형 정침이 튼"ㅁ"자형으로 배치 되었는데,

특히 정침은 기와를 올린 토석(土石) 담장으로 둘러 싸였는데,

대문채와의 사이에 있는 사주문(四柱門)을 통해 출입하게 하였으며,

이 사주문은 바깥마당과 안마당을 나누는 기준인데,

사랑채는 동쪽에 사랑마당을 두고서 바깥마당 쪽 담장에 일각문(一角門)을 세워 오가게 하였습니다.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은,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인 경상도 용궁현 포내리에서 태어나,

5살 때 아버지 정식(鄭湜)이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사촌 형제인 정조(鄭澡)의 양자가 되어 안동의 송천에서 살았으며,

그 뒤 1605년(선조 38)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산림에 묻혀 처사로 살았습니다.


1636년(인조 14)에 용궁현의 가산(家産)은 맏아들인 정혼에게 맡기고,

영양의 입암(立巖)으로 옮겨 서석지(瑞石池)와 경정(敬亭),

주일재(主一齋)와 운서헌(雲棲軒) 그리고 유종정(遺種亭) 등을 짓고서,

이시명(李時明, 1590∼1674), 조전(趙佺), 조임(趙任, 1573∼1644) 등과 교유 하였으며,

이 건물은 크고 작은 보수를 거쳤으며 2010년∼2012년에는 서까래 등이 해체 보수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3대 원림에 속하는 서석지(瑞石池)를 세운,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의 종택인 "예천 석문종택(醴泉 石門宗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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