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 있는 종택(宗宅)으로,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5호인 "안동 흥해배씨 임연재종택(安東 興海裵氏 臨淵齋宗宅)"입니다.

 

"금역당사당 및 종가(琴易堂祠堂 및 宗家)"로도 불리는 흥해배씨 임연재종택(興海裵氏 臨淵齋宗宅)은,

조선 명종 13년(1558)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이 지은 배씨 종택으로,

원래 예안면 도목동에 있었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197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종택(宗宅)은 몸채와 금역당 그리고 사당의 3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몸채는 앞면 5칸·옆면 6칸 규모의 1층 건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는데,

별당건물인 금역당(琴易堂)은 건물 이름을 배삼익의 아들 배용길(1556∼1609)의 호에서 따온 것이며,

여기에는 이퇴계가 직접 썼다고 전하는 "임연재(臨淵齋)"와 "도목촌(桃木村)"이라는 액자가 있으며,

사당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 입니다.

 

사당에는 종택 세운 퇴계의 문인 이었던,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의 위패가 불천위로 배향되고 있는데,

임연재종택(興海裵氏 臨淵齋宗宅)은 조선시대 상류주택 건축 변화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데,"금역당구가도(琴易堂舊

家圖)"에 의하면 원래 임연재종택은 56칸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로,"가례"에 따라 성리학적 이념을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사대부의 철학이 반영 되었다고 하며,16세기 당시의 구조는 정침과 중당이라 불리는 중심건물이 남북으로 위치하고,

좌,우로 공간을 확장해 옆으로 누운 "日(날 일)"자 형태 였다고 합니다.

 

18세기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진 후 오늘날의 "口"자 형태가 되었는데,

개축 이유는 성리학 이념에 따른 구조가 통풍, 채광, 동선에 불리했다는 점과,

그리고 온돌난방의 보편화 였다고 하며,

사대부의 철학이 반영되었던 고택으로,

경북 안동의 종택인 "흥해배씨 임연재종택(興海裵氏 臨淵齋宗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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