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이 있는,

안동 봉정사의 위쪽에 있는 "개목사(開目寺"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인 개목사(開目寺)는,

봉정사와 함께 천등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나,

차량으로는 서로 갈수없는 위치에 있는데,

도보로는 산길로 약 40분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개목사(開目寺)를 찾으면 절집 앞에는,

장방형의 연못이 있어 우리 고유의 사상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의미 하는듯 하기도 하고,

 

 

 

 

개목사(開目寺)는 통일신라 초기에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천등산 중턱에 세운 절로 원래는 흥국사(興國寺)라 하였으며,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신통한 묘술로 하루에 1시간씩 99일 동안 99칸의 거대한 절을 지었는데,

그 후 이 절은 부처의 영험이 많이 나타나 많은 불도들이 찾아와 기도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개목사란 이름이 생긴 것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하나는 "영가지(永嘉誌)"에 실린 내용으로 "원래는 절 이름을 흥국사(興國寺)였다.

당시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 많았는데,

절 건립후 소경들이 없어졌다 하여 이름을 개목사(開目寺)로 바꾸었다"고 하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고려시대에는 정몽주(鄭夢周)가 이 절에서 공부하였으며,

조선 초기의 재상인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이 안동부사로 부임해 와서 보니,

경상북도 안동의 지세가 눈병 환자가 많을 형상이어서,

더 이상 맹인이 생기지 않도록 절의 이름을 개목사(開目寺)로 바꿔 불렀다고 전하며,

 

 

 

 

또다른 이야기;의 개목사(開目寺)는,

의상이 출가하여 이 산 정상 부근의 큰 바위 밑에서 수도하였는데,

하늘에서는 큰 등불을 내려 비춰 주었고,

의상은 99일 만에 도를 깨치고 지금의 터에 99칸의 절을 창건하였으며,

하늘의 등으로 불을 밝혔다 하여 천등사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개목사(開目寺)를 찾으면 보통 사팔에서 만나는 산문이나 천왕문 따위는 찾을수 없고,

경내로 들어가는 누각 조차도 마치 고택의 대문채를 연상 시키듯 자리해 있는데,

누각의 누마루를 대신하여 마치 여염집의 대청마루 같은 2칸의 마루를 만날수 있고,

 

 

 

 

돌담장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4칸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요사채 또는 스님의 승방으로 보이는 건물 마져도 단촐하게 여겨 집니다.

 

 

 

 

마치 여여집과 같아 보이는 작은 규모의 개목사(開目寺) 이지만,

금당격인 원통전(圓通殿)은 보물 242호로 지정 되어 있는데,

 

건물은 전툇간 5량(前退間五樑) 구조인데,

앞면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이 일정 하지만,

옆면은 앞쪽에 1칸의 툇간을 덧붙여 마치 유교건물인 대성전(大成殿)처럼 보이는데,

이전에는 가운데칸인 정간(正間)만 법당이었고 좌우의 협간(夾間)은 돌방 이었으며,

건물 서쪽에는 1칸반 규모의 부엌이 덧대어 있었다고 하며,

1969년에 해체하여 보수하면서 방과 부엌을 모두 없앤 법당으로 바꾸었습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安東 開目寺 圓通殿)은,

1969년 해체보수공사 때에 상량문이 나와 1457년(세조 3)에 건립 되었음이 확인 되었는데,

측면에서 볼 때 전면으로 퇴간을 달아 맞배지붕의 박공면이 전면으로 길게 나와 있으며,

공포는 전, 후면이 다른 수법으로 되었는데 전면은 출목없이 익공형으로 조각 되었고,

후면은 1출목을 두어 외목도리를 받게 하였으며,

 

 

 

 

건물은 막돌 위에 긴 돌을 쌓은 기단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기단 윗면에는 둥글고 넓적한 자연석을 다듬지 않은 채 주춧돌로 놓았고,

가구(架構)는 기둥 위에만 공포(栱包)를 둔 주심포(柱心包)식으로 결구(結構) 되었으며,

 

 

 

 

툇기둥[退柱]의 맨 윗부분에는 대접받침인 주두를 놓아서,

평주와 툇기둥을 연결하는 툇보,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주심도리(柱心道里)를 받도록 하였고,

도리 방향에는 창방을 생략한 대신,

기둥 머리에 다포(多包)계 건물에서 주로 사용하는 둥근 모양의 첨차를 끼워서,

주심도리 밑의 장여를 받치게 하였으며 툇기둥의 머리 부분은 쇠서로 처리 되었습니다.

 

 

 

 

내부는 연등천장으로 상부가 노출 되었으며,

초각한 파련대공과 솟을 대공을 두어 종도리를 받게 하였고,

솟을대공 수법 역시 고식의 하나로 되어 있는데,

 

 

 

 

툇간의 바닥과 건물 안의 바닥에는 모두 마루를 깔았고,

건물 안의 가운데칸 뒷쪽에는 작은 불단(佛壇)이 마련되어 있는데,

불단 위에는 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고,

뒤쪽의 후불벽에는 석가모니불을 그린 탱화가 걸려 있으며,

보살좌상 위에는 간략한 모습의 닫집이 설치 되었고,

 

 

 

 

이 건물은 1969년에 보수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천순원년(天順元年)"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457년(세조 3)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 되는데,

다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 조선 중기 이후에 중수를 하며 많이 변형되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원통전의 뒤편에는1칸의 맞배지붕으로 아담한 규모의 산신각(山神閣)이 있어,

 

 

 

 

산신각(山神閣) 사찰에서 산신을 봉안하는 한국 사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예로,

 

 

 

 

산신각에는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을 봉안하거나,

이를 탱화(幀畵)로서 도상화한 그림만을 모시기도 하는데,

산신신앙은 불전(佛典) 안에서는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으며,

우리나라 특유의 산악숭배신앙과 관련이 깊지만,

우리나라 불교사의 초기 및 중기의 사찰에서는 산신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전각 이기도 합니다.

 

 

 

 

천등산 자락에 함꼐 자리하고 있지만,

봉정사의 명성에 가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이지만,

사찰 앞에서 보이는 빼어난 풍광과,

마치 어염집을 찾은듯한 편하고 소탈한 규모의 사찰로,

안동의 사찰인 "개목사(開目寺)"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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