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사불산(四佛山)에 있는,

문경 대승사의 "묘적암(妙寂竜)"입니다.

 

묘적암(妙寂竜)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인,

대승사(大乘寺)의 산내 암자이며.

 

 

 

 

안내문의 배치도를 통하여 묘적암의 위치를 보아 둡니다.

 

 

 

 

묘적암(妙寂竜)을 찾으면 윤필암과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고,

 

 

 

 

암자로 오르는 길은 그리 넓지는 않으나,

승용차로도 넉넉히 오를수 있는 길이며,

 

 

 

 

주차장에 이르기 전에,

석등과 함께 또다른 구조물이 있어,

 

 

 

 

큰바위 아래 석간수가 나오는 곳으로,

이물질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두껑을 덮어 두었으며,

 

 

 

 

두껑을 열어보니 맑고 시원한 감로수가 깨끗하게 모여 있습니다.

 

 

 

 

석간수 바로 위에는 2기의 부도가 있어,

동봉당과 동산당 일초선사의 부도이며,

 

 

 

 

앞에 있는 세운지 조금 오래 된듯한 동봉당(東奉堂) 부도로,

동봉(東峯) 스님은 대승사의 장로로 휼민(恤民)으로 널리 알려진 스님으로,

 

 

 

 

부도는 보주가 뾰족해 특이한 모습인데,

승탑 주인의 이름인 동봉당(東奉堂)을 이 보주에 부분에 새겨놓은 것은 더욱 특이하며,

 

 

 

 

안쪽의 부도는 세운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데,

 

 

 

 

전면에 "동산당 일초선사(東山堂 一超禪師)"라 암각되어 있어,

부도의 주인을 확인 할수가 있는데,

일초스님은 대승사에서 수행한 선사로,

2008년에 묘적암에서 입적 하였다고 합니다.

 

 

 

 

2기의 부도 안쪽에는 또다른 부도가 있어,

 

 

 

 

홀로 외로이 서있는 이부도는 나옹선사(儺翁禪師)의 부도로,

나옹선사(懶翁禪師)는 이곳에서 출가하여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 하였으며,

신륵사에는 나옹(懶翁) 혜근(慧勤,1320∼1376)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과 비석등이 보물문화재로 남아 있는데,

이곳의 승탑은 비석 없이 홀로 서 있어 출가처인 이곳에도 부도를 건립 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부도에는 "화상의 발우가 부도 속에 간직되어 있으며 밑면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어,

닿으면 소리가 난다. (和尙一椀藏于屠中下有兩孔接之有聲)"고 전해지고 있으나,

어느 부분에 적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나옹(懶翁)은 청산혜요(靑山兮要)의 시(詩)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데,

고려후기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큰스님 였습니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는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부도전을 지나 바로 위에는 작은 주차장이 있고,

차량은 이곳에 두고 앞의 모퉁이를 돌아가면,

 

 

 

 

단청을 하지 않아서 인지 사찰의 암자가 아닌,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의 사학의 하나였던 정사(精舍)로 보이는 묘적암(妙寂竜)이 자리하고 있어,

 

 

 

 

옆의 오솔길을 따르면,

다소곳이 반겨주는 듯한 사주문이 있는데,

 

 

 

 

문에는 불이문(不二門)의 현판이 있어 사찰임을 알게 해주는데,

사찰로 들어가는 3문(三門) 중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을 지칭하며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하는데,

불이(不二)란 뜻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세속과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며,

선악(善惡), 유무(有無), 깨끗함과 더러움, 등등 상대적 개념에 대한 모든 대상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일반적으로 일주문(一柱門)과 천왕문(天王門)에 이어 불이문(不二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세 번째 문으로,

온갖 2분법의 분별과 대립과 언어를 떠난 부처의 경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불이문을 들어서면 "ㄱ"자형의 묘적암(妙寂竜)이 자리하고 있어,

묘적암(妙寂竜)의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고대 남북국시대 신라 말기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고려 말기에 나옹(懶翁) 혜근(慧勤,1320∼1376)이 1340년에 출가하여 수행한 사찰로 유명한 곳으로,

 

 

 

 

나옹이 처음 이 절의 요연(了然)을 찾아 중이 되기를 청하였을 때,

요연은 “여기 온 것이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는데,

나옹이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습니다 마는,

보려 하여도 볼 수가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습니다.”고 한 뒤,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를 물었다고 하며,

 

 

 

 

요연은 자신도 알지 못하니 다른 고승을 찾아가 물어볼 것을 권하였는데,

훗날 나옹이 도를 깨닫고 다시 이 절로 돌아와서 회목 42그루를 심었으며,

그 뒤 나옹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절에 찾아 왔으며,

 

 

 

 

나옹으로 인하여 이 절은 조선 후기까지 불교의 한 성지(聖地)로 부각 되었으며,

1668년(현종 9) 성일(性日)이 중건하였고,

1900년 취원(就圓)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근자에는 조계종 제6, 7대 종정을 지낸 성철(性徹)스님과,

제8대 종정을 지낸 서암(西庵)스님 등이 오랫동안 이곳에서 머물렀으며,

제 11, 12대 조계종 종정이신 법전(法傳)스님이 김치 한 조각으로 반찬을 하며,

묘적암에서 무문관 수행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고 하며,

이처럼 묘적암은 선승의 수행처로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묘적암은 최근에 전면적인 보수를 하였는지,

서까래와 마루 등에는 옛것과 새로운 목재가 혼용되어 있으며,

 

 

 

 

암자의 쪽마루에는 동종이 나와 앉아 있고,

 

 

 

 

쪽마루 끝에는 무엇인가 조성되어 있어,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불교를 수호하는 신중을 모시는 신중단(神衆壇)의 탱화로 여겨 지며,

 

 

 

 

쪽마루 안쪽에는 너른 법당이 있어,

 

 

 

 

법당에는 석가모니의 입적 이후 미륵이 출현할 때까지,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보살이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봉안하고 있어,

아미타불의 현신으로 불교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보살로,

일반인에게 가장 친숙하며 널리 숭상되고 있으며,

모든 중생이 해탈할 때까지 자신은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옆의 작은 공간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8호인,

"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영정(聞慶大乘寺 妙寂庵 懶翁和尙影幀)"이 봉안되어 있어,

 

 

 

 

나옹(懶翁) 혜근(慧勤,1320∼1376)은 고려 말의 고승으로,

보우(普愚)와 함께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세운 위대한 고승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묘적암은 그가 21세 때 출가하여 수행한 사찰이며,

나옹화상 영정은 화기(畵記)를 통해 1803년에 제작된 것을 알수 있는데,

화면에는 가사 장삼을 입은 나옹화상이 주장자를 들고 염주를 잡은 채 측면향으로 가부좌하고 있습니다.

 

 

 

 

나옹선사가 20세 때 이웃 동무의 죽음을 보고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가,

아는 이가 없어 답을 찾고자 출가한 유서깊은 암자이며,

대승사에서 동안거 중이던 성철스님이 광복이 되자,

묘적암으로 거처를 옮기고 이곳에서 한국불교의 앞날을 위한 구상을 한 곳으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만 일반신도에게 개방하며 보통은 출입을 할 수 없으며,

법당 한 채와 요사채 한 채로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의 암자로,

경북 문경 대승사의 산내 암자인 "묘적암(妙寂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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