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의,

운달산(雲達山)에 있는 사찰인 "김룡사(金龍寺)"입니다.

 

김룡사(金龍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며,

 

 

 

 

김룡사 일원의 계곡을 "운달계곡"이라 하는데,

맑은 물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져 "문경8경"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사찰로 향하는 길 또한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만큼 숲길 입니다.

 

 

 

 

김룡사(金龍寺)는 588년(진평왕 10) 조사 운달(雲達)이 창건하여 운봉사(雲峰寺)라 하였으며,

그 뒤 조선 중기까지의 사적은 전래되지 않고 있으며,

1624년(인조 2) 혜총이 중창하였으나, 1642년(인조 20)에 소실되어

1649년(인조 27) 의윤(義允)·무진(無盡)·태휴(太休) 등이 중수 하였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절 이름을 김룡사라 한 것은,

옛날 지금의 문경(聞慶)인 문희(聞喜)부사로 김씨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관(官)에 죄를 짓고 도망쳐 이 산에 숨었다가 우연히 신녀를 만나 가정을이루어 용(龍)이란 아들을 낳았고,

가운이 또한 부유해져 사람들이 김씨 어른(金長者)이라 일컬었는데,

하루는 큰 비 바람이 분 뒤 그 처자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나 간 곳을 알 수 없었으며,

지금 그 옛 터와 섬돌이 절의 서쪽에 남아있어 절 이름을 김룡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일설에는 금선대(金仙臺)의 금자와 용소폭포의 용자를 따서 금룡사라 하였다는 설도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31본사의 하나로서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이었으나,

지금은 교통의 불편으로 옛 말사였던 직지사의 말사가 되었으며,

1940년 요사와 종루를 개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힘든 금강문으로 여겨지는 솟을 삼문의 대문을 지나면,

천왕문(天王門)을 만나게 되며,

 

 

 

 

김룡사의 천왕문(天王門)에는 특이하게 석조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모셨는데,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비파(琵琶)를 들고 동쪽에 있고,

보검(寶劒)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남쪽을 수호 하고 있으며,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의 손에는 용과 여의주(如意珠)를,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보탑(寶塔)을 받쳐든 모습을 하고 있어,

불법을 수호하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들은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인도 재래의 신(神)인데,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서 사방을 지키게 된 것이라 합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왼쪽에 범종각(梵鐘閣)이 있고,

 

 

 

 

대법회가 있을 때에는 불전에서 행할 행사를 치르는 곳인 중층의 누각(樓閣)을 지나게 되며,

 

 

 

 

사찰의 중심전각인 금당 앞에는 노주석(露柱石)이 있어,

대웅전 앞에 나란히 놓인 2기의 노주석은 사찰에서 야간에 법회 등의 행사때 주위를 밝히는 석등의 일종으로,

석등보다 선행되는 형식이지만 고려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는 노주석은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없으며,

영남 지방에서만 볼수있는 것으로 인근의 대승사(大乘寺) 에서도 노주석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3호인 "문경 김룡사 대웅전(聞慶 金龍寺 大雄殿)"으로,

대웅전은 17세기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법당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협시불로 봉안하였으며,

 

 

 

 

김룡사에는 보물 제1640호인 "문경 김룡사 영산회괘불도(聞慶 金龍寺 靈山會掛佛圖)"가 있으나,

괘불은 옥외에서 법회를 행할 때에 밖에 내다 걸 수 있게 만든 대형불화여서 관람은 할수 없었으며,

 

 

 

 

대웅전의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으며,

대웅전 건축 양식상 특이한 것은 건물의 기단 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기둥을 세워 높이가 일정하지 않으나,

기둥 모두 대웅전의 중심쪽으로 약간씩 기울어져 건물 전체가 안정감을 주는 기법을 사용 하였습니다.

 

 

 

 

대웅전 옆에는 현판이 2개인 특이한 전각이 있어,

금륜전(金輪殿)은 고종 26년(1889)에 경허(鏡虛) 대사가 중수(重修)했다고 하며,

 

 

 

 

중앙에는 금륜전(金輪殿)의 현판이 걸려있고,

 

 

 

 

오른쪽 옆에는 독성각(獨聖閣)도 현판이 걸려 있는데,

 

 

 

 

내부의 중앙에는 "금륜보계 치성광여래불(金輪寶界熾盛光如來佛)"을 봉안하고 있어,

중생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하시는 부처님으로 주로 삼성각 또는 금륜전(金輪殿)에 모시고 있으며,

 

 

 

 

왼쪽에는 절이 있는 산을 지킨다는 신장인 "산왕대신(山王大神)"을 모셨고,

 

 

 

 

오른쪽에는 스승없이 홀로 깨친 독각의 성자인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모셨으며,

 

 

 

 

금륜전(金輪殿) 앞뜰에는 꽃잔디가 화사하게 한창 입니다.

 

 

 

 

윗쪽에는 1709년(숙종 35년)에 건립하였다는 "극락전(極樂殿)"이 있어,

정면 3칸에 지붕은 겹처마에 풍판을 단 맞배지붕의 구조이며,

 

 

 

 

극락전(極樂殿)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를 봉안하는 전각으로,

극락의 주불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대승불교의 부처 가운데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님입니다.

 

 

 

 

뒤쪽에는 석가모니의 설법장인 영산회상에서 유래한 전각인 "응진전(應眞殿)"이 있어,

 

 

 

 

내부의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그리고 좌, 우측에 8 분씩 나한상을 모시는데,

중앙의 "문경 김룡사 응진전 석조석가삼존불 (聞慶 金龍寺 應眞殿 石造釋伽三尊佛)"은,

조선후기에 조성된 향토유산으로 비지정 문화재이며,

 

 

 

 

좌우에는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512호로 지정된,

"문경 김룡사 응진전 석조십육나한좌상 일괄(聞慶 金龍寺 應眞殿 石造十六羅漢坐像 一括)"이 있어,

 

 

 

 

응진전에 모셔진 24구(軀)의 불상으로,

목조인 석가삼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석조인 16나한과,

제석천(帝釋天 2구), 사자(使者 2구), 동자(童子 1구) 등이 봉안되어 있는데,

주존을 비롯한 석가삼존불은 모든 부분에서 나한상 등과 양식적으로 차이가 있어 문화재에서 제외가 되었으며,

불상의 조성시기는 1709년이며 조각승 수연 등에 의해 조성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응진전을 나오면 뒤편 산아래에는 "석조약사여래불입상"이 있어,

 

 

 

 

계단을 통하여 위로 올라가 봅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55호 "문경 김룡사 석불입상(聞慶 金龍寺 石佛立像)"으로,

불상은 돌기둥 모양의 입상으로,

입체감이 결여된 민불(民佛) 형태의 석불이며,

 

 

 

 

수인(手印)과 옷주름 등 전신이 매우 낮고 투박한 부조(浮彫)로 조각되었고,

얼굴만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1725년에 출간된 "雲峰寺事蹟"에 의하면,

서쪽의 계곡 건너에 위치한 석탑과 함께 풍수사상에 입각하여,

1709년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석조약사여래불입상(石造藥師如來佛立像)로도 불리는 석불입상은,

이곳 김룡사는 와우형혈(臥牛形穴)이라고 하여,

응진전 뒤 산록에 산의 지세를 보충하기 위하여 목우인상(牧牛人像)을 세웠다고 하며,

 

 

 

 

그래서 이 석불을 목우인상(牧牛人像)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머리가 나발이며 약호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藥師如來)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불의 기단부는 원래의 것이 아니고,

근자에 조성 한것으로 여겨지는데,

기단부의 하부에는 여러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선정불(禪定佛)과 합장불(合掌佛) 그리고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을 비롯하여,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과 인왕상(仁王像) 등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석불입상에서 내려오는길에는,

토종 민들레가 반기고 있어 이곳이 청정지역임을 알려 주는듯 하고,

 

 

 

 

낮은 담장 너머로 절간의 살림인 장독대도 들여다 보게 됩니다.

 

 

 

 

내려 오면서 작은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르면,

 

 

 

골짜기의 내를 건너 다른 곳에 숨어 있는듯한 명부전(冥府殿)을 만나게 되는데,

1714년에 담유(曇裕)와 탁밀(曇裕)에 의해 중창 되었다고 합니다.

 

 

 

 

명부전은 특이하게도 외부에서 보면,

중앙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의 구조로도 보일수 있게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문경 김룡사 명부전 목조지장삼존상 및 제상(聞慶金龍寺冥府殿木造地藏三尊像─諸像)"이 있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5호로 지정 되었으며,

중앙의 나무로 만든 지장삼존상의 높이는 지장보살좌상(본존) 88㎝, 도명존자(좌) 134㎝, 무독귀왕(우) 124㎝이며,

 

 

 

 

김룡사 명부전에는 목조지장보살삼존좌상 외에도,

시왕상 및 하부 권속들을 포함한 21구의 존상들이 봉안되어 있고,

동자상들 4구는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있으며,

무독귀왕 내부에서 발원문이 발견되어 이 불상들이 1714년에 제작된 사실이 확인 되었는데,

 

 

 

 

명부전 목조지장삼존상 및 제상은,

임진왜란 이후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조선 후기 조각승 집단의불상 조성 경향을 반영하는 존상으로,

무독귀왕에서 발견된 발원문에는 존상을 조성한 승려 이름이 기입되는 연화질(緣化秩)이 없어,

조성에 참여했던 조각승은 알 수 없지만 명부전 화주인 탁밀을 통하여,

김룡사 명부전에 관여했던 조각승 집단이 단응·탁밀에 속한 조각승들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1900년 이전에는 명성황후 원찰이었으며,

1911년부터 경상북도 5본산 의 하나가 되어 50개가 넘는 말사를 관장하고,

1926년 경에는 256명의 승려가 생활하고 등록되어 있었다는 대찰였던 곳으로,

경북 문경의 사찰인 "김룡사(金龍寺)"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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