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얼마 남지 않은 고택중 하나인,

군포시의 문화재인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을 찾았습니다.

250여년의 세월을 지켜내고 서있는,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軍浦 東來鄭氏 東來君派 宗宅)은,

외부의 담장이 따로이 없어서 외부에서 들어가보면 여느 고택들과 같이,

겉보기에는 고택에 기거하지 않으며 관리만 하는곳으로 보여 집니다.

 

 

 

 

사랑채의 마당 앞에는 그리 크지 않은 연못이 있으며,

지금 연못 위쪽에 있는 집은 예전에는 없었다고 전하며,

연못의 위쪽까지는 정원이었으며 연못 주변에 꽃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어 경관이  아주 좋았다고 하는데,

과거에 사랑채에서는 주변이 내려다보이고 연못주변에 화초가 가득하여,

연못쪽을 내려다보며 술 한잔하면서 풍류를 즐길만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지나 주변의 많은것이 변해버린,

지금의 연못에는 봄을 맞는 수련의 화사함만 남아있습니다.

 

 

 

 

이곳 종택의 배치도를 참고삼아,

종택이 자리잡은 모습을 미리 보아둡니다.

 

 

 

 

이 집은 현재 안채와 사랑채 광채가 몸채를 이루고 있고,

주변에 작은사랑채 그리고 새로 지은 사당 뒷마당에 있는 광채가 있는데,

그리고 원래 안채 뒤쪽에 별당이 별도로 있었고 연못 앞쪽에 솟을대문이 있었던 행랑채가 있었는데,

현재는 사라지고 없고 본채앞의 대문의 옆자리였던 건물만 남은 모습입니다.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은,

현재 자리에서 500년을 이어온 유서 깊은 집으로 사랑채의 모습입니다.

 

사랑채와 안채는 ㄴ자형의 안채와 사랑채가 마주보며 튼 ㅁ자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사랑채는 전후퇴집으로서 2고주 5량집으로 이런 "전후퇴집"은 조선후기들에 본격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홑집으로 출발한 집이 조선 중기에는 전퇴집으로 발전하고 후기로 들어서면서 전후퇴집으로 발전해갑니다.

이런 평면의 발전은 살림집 규모와 용도가 늘어나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사랑채가 전퇴집인 안채와 다른 구조를 갖는 것은 지어진 시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안채는 1783년에 지어졌고 사랑채는 19세기 후기인 1877년에 지어지면서 구조상의 차이를 보이게 되는것 입니다.

 

 

 

 

 

경기도 지정 종택임을 알려주는 작은현판이 있으며,

이곳에 자리잡은 사람은 동래군파 파시조인 정란종(鄭蘭宗 1433-1489)의 큰아들인 정광보(鄭光輔 1457-1524)로서,

정란종의 묘소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가문이 500년 이어져 오게 되었으며,

정란종은 이시애 난 등을 평정한 공로로 동래부원군으로 봉해지면서 동래정씨의 파시조가 되었습니다.

 

14대 난종부터 종손의 5대조부인 26대 때까지 13대가 이어오는 동안,

단 한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군(君)으로 봉해졌을 정도로 명문가였으며,

5대조 또한 조선이 망하면서 시호를 받지 못하였을 뿐이라고 전합니다.

 

 

 

 

 

사랑채의 누마루는 단을 높게 올려,

마루에서 연못과 그주변의 풍광을 더눅 넓게 즐기기 위함인지 올려둔 모습으로,

 

 

 

 

사랑채의 누마루에서 보이는 모습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진 연못주변의 풍광이 아쉽게 남았습니다.

이 집은 주변 풍광이 매우 아름다웠으며 이곳으로 입향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정란종의 묘소 때문에 이루어진 것으로,

묘소 터도 좋지만 나중에 자리잡은 집터 역시 매우 좋은 자리에 있으며,

묘소가 남향으로 자리잡아 있어서 집터는 묘자리 건너편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큰문은 닫혀있으나,

사랑채 윗쪽의 작은문은 개방이 되어 있어 안채를 들여다 보니,

이곳 종택은 안채에 사람이 기거를 하며 이곳을 지키는듯 합니다.

 

 

 

 

사랑채옆의 큰문쪽의 모습입니다.

 

 

 

 

서향집으로 자리잡은 안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을 지을 때 향을 보기 위한 중심점은 안채 대청이 됩니다.

그러므로 안채 대청의 향이 집의 주향이 되는 것입니다.

 

 

 

 

안채 대청으로 볼 때는 지세를 따라 지었지만,

ㄱ자 집으로서 건너방을 제외한 안방은 남향을 하고 있어,

오히려 햇빛에 대한 조건은 남향집일 때보다 더 좋아진 것이라 합니다.

 

 

 

 

안채의 처마에는 풍경을 달아넣아 맑은 바람소리를 느낄수있게 해두었고..

 

 

 

 

외벽에는 연밥과 솔방울로 아주예쁜 장식을 해두었습니다.

 

 

 

 

꼼꼼하고 아기자기하게 정리를 해둔 모습이,

뵙지는 못햇지만 종택의 주인장 성품을 대신 보여주는듯 합니다.

 

 

 

 

안채의 뒷모습으로,

들어내어진 낮은 굴뚝과 단을 쌓아 층층이 화단을 꾸며둔 모습이,

흙담장과 어울려 고택의 품위를 더해 줍니다.

 

 

 

 

뒤뜰 맨안쪽에는 사당이 보이고,

 

 

 

 

남향을 취하고 있는 사당의 모습입니다.

사당은 현재 한 칸으로 복원되어 있으나 원래는 두 칸이었다고 하는데,

예전 사당은 전면 두 칸 측면 두 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전면 한 칸은 마루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두 칸이 된 것은 한 칸은 불천위인 동래공의 위패를 모셨으며 다른 한 칸은 사대조를 모시는 곳이었다고 하며,

두 칸이었던 사당이 한 칸으로 복원된 것은 다시 복원될 당시 공무원이,

두 칸으로 된 사당이 없다는 이유로 한 칸으로 복원되었다고 하며 이 사당은 한국전쟁 전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더 이상 제사를 치르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어른께서 위패를 땅에 묻어버리면서 원래의 사당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당앞에 피어난 귀한 흰색꽃의 작약이,

화사하게 피어나 봄의 향기를 맘껏 전해주며 고택을 찾은이를 반겨줍니다.

 

갑자기 뿌리는 비탓에,

인근의 정란종의 묘소는 찾아보지를 못하고 종택을 다녀감으로 만족을 해야 합니다.

군포의 문화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軍 東來鄭氏 東來君派 宗宅) 답사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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