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문화재 답사중,

지수당에 이어 인근의 연무관(演武館)을 찾았습니다.

 

경기도 광주쪽에서 남한산성을 향해 길을 잡으면,

산성 로타리를 조금 못미쳐 오른쪽의 낮은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차장이 따로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인근 주차장에 차를 둔후 찾아야 합니다.

 

크고작은 나무그늘 아래에,

돌로된 너른 계단이 있으며 그위에 연무관의 모습이 보입니다.

 

 

 

 

계단을 오르기전 도로와 가까운곳에는.

예날 이곳에 장이 섰던곳 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으며..

 

 

 

 

계단위 바로옆에는,

470여년을 살아온 느티나무가 큰 몸집으로 서있고..

 

 

 

 

마주보듯 앞쪽에는,

510 여년 수령의 노거수 느티나무가 아직도 정정함을 보여주듯 서있는데,

1600년 즈음에 심어진 나무로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는듯 합니다.

 

 

 

 

남한산성의 연무관(演武館)입니다.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기(武技)를 연마하던 곳으로 건축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624년 숙종 때 수어사 김재호(金在好)로 하여금 개수하게 하고,‘鍊兵館(연병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고 하며.

남한산성 내에 관아 건물 중에서 현재까지 그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로 군사훈련 지휘소라고 할 수 있는곳 입니다.

 

 

 

 

정조 때에는 수어영(守禦營)이라 하였으나  보통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 하였는데,

지난날에는 이곳에서 무술을 닦은 무사로서 기예가 뛰어난 사람은 선발되어 서울로 진출하였다고도 하며.

정조 3년(1779)에 왕이 영릉을 참배하고 귀경길에 들러 연무관에서 무술시합과 홍이포 시범을 구경하였다고 합니다.

 

 

 

 

연무관(演武館)의 옛모습입니다.

옛날 사진여서 흐리긴 하지만 건물의 모습은 지금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연무관(演武館)의 현판이구요,

 

 

 

 

화강암을 잘 다듬어 주춧돌을 놓아두었으며,

뒷돌을 밀어 받쳐둔 마루로 오르는 계단돌이 재미있습니다.

 

 

 

 

확트인 연무관의 너른 대청을 둘러봅니다.

 

 

 

 

가려진 나무 숲으로 인해,

산성안의 저멀리 까지는 조망이 되지않지만 나름 시원함은 있습니다.

 

 

 

 

연무관에서 보이는 산성의 동쪽의 모습입니다.

 

 

 

 

겹처마로 초익공(初翼工)을 올렸으며 연등천장[椽背天障]에 마루는 우물마루인데,

기둥은 둥글며 네 기둥마다에 주련(柱聯)이 걸려 있는 구조 입니다.

 

 

 

 

팔작지붕 으로 되어있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7량가 구조의 제법큰 규모의 건물로,

연무관의 전면기둥에 걸린 주련(主聯)의 모양은 특이합니다.

통나무에 글을 쓰고 그속을 파내어 기등을 감싸듯 부착해 두었습니다.

 

 

 

 

뒷벽은 널판벽으로 좌우측 널벽에는 널문이 3개씩 설치되어 있으며,

정면은 아무런 벽체나 문짝도 없이 훤하게 개방이 되어 있는데,

원래는 장치가 있었으나 중간에 보수하면서 그 장식이 없어진 듯하며,

건물의 뒤편에는 1.5m 너비의 퇴(退)가 나와 있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문,무과의 시험을 보는 공개적인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하며,

"남한산성의 연무관은 수어청에서 군사들을 조련시키는데,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할 양반집 자재나 사대부집안 자재들을 대상으로 자질이 있고 성적이 뛰어난 사람을 뽑아,

수어사가 추전장을 전하면 한양에서 무과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무관 육성소 역할을 담당하던 곳"으로 전하는 남한산성의 연무관 입니다.

 

 

 

 

연무관을 내려오면서,

노거수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옥과 같이 단단한 진터와 철벽과 같이 견고한 성곽이 높은 산 위에 축조되어 있고,

풍운을 탄 용처가 기이한 힘을 내는도다" 라고 쓰여진 연무관의 주련에 쓰여진 글귀하나로,

그당시 우렁찬 목소리로 호령했을 연무관 무사들의 마음가짐을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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