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의 문화재를 살펴 보던중,

우연하게 알게된 특이한 이름의 "일산 밤가시 초가" 입니다.

유일하게 잘보존된 조선시대의 초가라고 알려져 있어 돌아보았습니다.

 

밤가시 초가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1313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언덕위에 있는 밤나무의 꽃이 만개하여 밤꽃향이 진하게 풍겨져 옵니다.

이곳은 별도의 주차장이 마련 되어 있지 않으나 비교적 한적한곳여서 주차의 어려움은 덜합니다.

 

 

 

 

특이한 이름의 "일산 밤가시 초가"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별도의 입장료는 없습니다.

 

 

 

 

계단을 올라 입구를 들어서면,

넓게 트여진 공간과 함께 기와집 한채가 먼저 보이고..

안내문이 있는 자리가 원래 밤가시 초가가 있던 자리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고양시의 민속 전시관 입니다.

 

 

 

 

전시관의 내당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대문에서 안채가 바로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창고의 벽으로 막아둔 모습입니다.

 

 

 

 

대문쪽에서 보이는 안채의 모습입니다.

내당은 전형적인 口의 형태로 사랑채와 붙어있는 모습이고..

 

 

 

 

안채의 큰방앞에 자리한 부엌부터 들여다 봅니다.

구둘이 있는 방쪽으로 솥이 걸린 아궁이가 자리해있고,

 

 

 

 

건너쪽에는 찬장의 역활을 하는 가구가 놓여있으며,

위로는 시렁이 놓여져 있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시렁은 "물건을 얹어 두기 위하여 까치발을 받쳐서 벽에 달아 놓은 긴 널빤지"로  선반의 옛말이며 덕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내당의 대청마루 입니다.

일반적으로 고택등을 답사해 보면 가구등을 놓아두지 않아 허전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곳은 고택은 아니지만 옛날가구나 생활품을을 배치해두어 옛사람들의 생활상을 들여다 보는데 도움이 되게 합니다.

 

 

 

 

안채의 큰방으로 안방마님이 사용했을 곳이구요,

 

 

 

 

고가구들을 함께 배치해 두었습니다.

 

 

 

 

대청에서 보이는 대들보의 모습입니다.

이곳에 계시는 친절한 여성해설사님의 말을 빌리면,

이곳은 일산 인근의 실제로 있었던 가옥을 표본으로 세워진 가옥이라고 합니다.

 

 

 

 

대청마루을 사이에 두고  마주해 있는 건너방의 모습입니다.

 

 

 

 

건너방의 바로옆에는 고방이라고도 하는 "광"이 자리해 있으며,

이집의 생활정도를 엿볼수 있는곳으로 곡물과 집안의 생필품과 농기구등을 보관하는곳으로  안방의 주인이 관장하는 창고입니다.

 

 

 

 

고방(庫房)의 바닥에 둥근 문양이 있는 두꺼운 나무판이 놓여있는데,

이곳 해설사님의 설명으로는 기름을 짜내는 도구의 일부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나무판의 둥글게 홈을내어 파놓은,

문양의 아랫쪽에는 구멍이 나있는 모습으로..

 

 

 

 

나무의 아랫쪽을 들여다보니,

홈이 파여져있고 기름구멍이 나있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작은 나무수래와 그위의 어리의 모습도 보입니다.

"어리"는 싸리나 대로 만드는데 바닥은 없게 하여 마당에 엎어서 병아리를 안에 가두어,

천적등으로 부터 어린 병아리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디딜방아와 나무 절구통,

그리고 바람이 일게하여 곡식의 알갱이와 쭉정이를 분리해주는 풍채또는 풍구라고도 하는 기구도 보입니다.

 

 

 

 

이곳 민속 전시관에는,

203여점의 농기구(용두례, 나무 풍차 등)와 생활용품(장롱, 뒤주 등)이 진열되어있어,

옛사람들의 생활상을 살펴볼수가 있어서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현장학습에도 좋은곳으로,

 

 

 

 

밤가시 초가를 찾는분들 에겐,

초가와 더불어 보너스와 같은 민속 전시관으로,

초가와 기와집을 함께두어 고양인근의 옛날 생활양식을 볼수있게 해두었습니다.

 

 

 

 

광에서 대문쪽으로 돌아서면,

소를 키웠던 곳으로 여물통이 있는 외양간의 모습이 보이고,

 

 

 

 

외양간의 윗쪽에는 이엉의 모습도 들어옵니다.

이엉은 밤가시 초가로 올라가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안채에서 나와 사랑채를 보기위해 나오니,

이집의 대문은 다른곳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솟을 외문의 규모와 내당의 크기로 보아 사대부가의 고명저택은 아니며,

재물이 많은 중인이나 중상정도의 생활을 하였던 양반가의 가옥으로 보여집니다.

 

 

 

 

대문에서 사랑채 뒤편에보이는 장독대로,

안채의 부엌 뒷문이 사랑채 뒤로 나있음을 짐작케하는 배치입니다.

 

 

 

 

사랑채의 모습입니다.

정자를 겸한 누마루가 함께있는 사랑채가 아니어서 사대부의 대가는 아닌듯해 보입니다.

 

 

 

 

사랑채의 주인인 이집의 바깥어른입니다.

가구등과 밀랍인형을 함께 배치해두어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민속 전시관을 나와  경기도민속자료 제8호인 일산읍 밤가시 초가로 향합니다.

150년 된 밤가시 초가는 서민들의 생활사, 즉 온돌과 외양간, 아궁이 등의 한국 특유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 밤가시골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입니다.

 

 

 

 

정발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이 초가는,

조선후기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전통적인 서민 농촌주택의 구조를 원형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집은 약 150년 전에 건립 된 것으로 추정이 되며,

'ㄱ'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행랑채가 맞은편에 대칭으로 지어져 있어 전체로 볼 때 'ㅁ'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안채는 안방·대청·건너방·부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당을 지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이 안방, 왼쪽이 건너방입니다.

안방에서 ㄱ자로 꺾여 자리잡고 있는 부엌은 대문과 마주하고 있어,

들여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별도로 벽을 만들어 두었으며,

서민 가옥의 소박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로 조선 후기 지방 농가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집입니다.

 

 

 

 

이 집 대문위는 가시가 뾰족한 엄나무 가지가 올려져 있는데,

나쁜 액운이 집안으로 들어 오지 못하게 엄나무 가시가 막아주는 이지방의 특이한 풍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집의 마당에는 하늘 구멍아래 한단 낮추어진 모습을 볼수가 있는데

이것는 비나 눈이 올 때 떨어지는 낙숫물이 다른 곳으로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물 빠짐이 좋게 아래쪽으로 살짝 기울기가 있는 마당은 배수구를 미리해두어  마당의 빗물이 자연스레 밖으로 빠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붕의 형태는 또아리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소박하면서도 튼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처마 지붕은 둥근 원형으로 지붕에 하늘 구멍을 뚫어 놓은 형상으로 중간에는 밝은 태양이 환히 비치어 자연 채광이 되도록 해두었습니다.

 

 

 

 

사랑채로 보이는곳의 내부모습이구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안방의 맞은편에 있는 건너방으로 작은 가구와 화로가 놓여져 있습니다.

 

 

 

 

대청마루의 모습입니다.

밤가시골의 똬리집은 나뭇간, 부엌, 2칸의 안방, 2칸의 마루, 건너방으로,

곱은자 집에 건너방과 연이은 대문간, 헛간, 문간, 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량문(上樑文)에는 ‘세재병술삼월십구일입주상량가주경진생(歲在丙戌三月十九日立柱上樑家主庚辰生)'

이라고 쓰여져 있어 1886년(고종 3년)에 지어진 집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다행인것은 전체적인 구조의 변화등은 거의 없이 원형을 보존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 가옥의 주요목재는 기둥, 대들보, 중방, 문틀, 마루, 서까래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곳에서 흔히 구할수 있었던 밤나무를 재료로 사용해서 지은것이 특징입니다.

 

 

 

 

두칸으로 이루어진 안방의 모습이구요,

 

 

 

 

부엌으로 들어가 봅니다.

부엌은 나뭇간을 헐어내어 부엌으로 통합했는데 벽쪽에 ㄱ자로 조리대를 만드는 등,

약간은 개조를 하였으며 부엌의 문은 마당과 뒤뜰 양쪽 두군데로 나있습니다.

 

 

 

 

이집의 살림살이를 알수있는 헛간채로,

소쿠리, 항아리 등과 곡식등의 일상의 생활용품등을 보관하며,

 

 

 

 

소를 이용한 농기구로 농사일에 쓰는 쟁기등의 모습도 보입니다.

 

 

 

 

초가의 바깥으로 나가봅니다.

외부의 공간은 안마당과 바깥마당, 그리고 뒤뜰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엌 뒤쪽의 뜰에는 장독대가 자리해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이엉"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엉은 우리 나라 서민가옥의 대표적인 지붕재료로,

이엉으로 올린 지붕을 초가지붕이라하며 그 집은 초가라 하는데,

시공의 편리성과 운반의 용이성, 열전도율이 적어 여름의 열 차단과 겨울의 보온에 적합한 장점이 있어서,

이 같은 합리적인 면은 온돌구조와 함께 서민가옥의 지붕양식을 초가지붕으로 정착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널리 사용되었으며,

지방에 따라 또는 지붕 이외의 용도로 쓰일 때는 보릿짚이나 갈대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제주도에서는 한라산 중턱에서 자라는 띠를 이엉재로 쓰였다고 합니다.

 

 

 

 

담장을 이루고 있는 모습입니다.

굵기가 비슷한 나무둥치들을 가지런히 세워서 울타리로 만들어둔 모습이 정겹습니다.

 

 

 

 

밤가시 초가의 똬리집은 좌우 각각 4칸이며,

안마당을 중심으로 담장없이 사방으로 방과 창고등으로 배치 되어있는 폐쇄적인 구조를 보이는데,

이는 개성(開城)과 경기도의 서해안 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모습이며,

이집의 초가집을 짖는데 사용된 목재는 모두 밤나무로 구성되어 있고,

초가집 지붕은 볏짚을 이용하여 매년 위에 한번씩 덮어 주고 있는데,

보통 5년에 한번씩은 지붕전체의 볏짚을 모두 들어내고 다시 덮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며 불과 20년 전엔 이집에서 사람이 살았다고 합니다.

 

 

 

 

사랑채와 건너방 뒤편의 모습으로,

뒷벽 가까이에 붙어있는 굴뚝의 모습이 들어 옵니다.

 

 

 

 

뼈대는 오상량(五上樑)으로 3분법을 하였다.

기둥은 162 162㎝, 보는 200 230㎝의 크기이고, 서까래는 장단연을 채용하였다. 굵기는 95, 간격은 340㎝, 내밀기는 500㎝이다.

대공은 판대공이고 종도리와 장여가 지붕재를 받치고 있다.

똬리집은 경기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곱은자집의 연장이자 변형이다. 이같은 변형은 다른 지방의 가옥구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똬리집은 경기지방 가옥구조의 변천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똬리집은 평면 구성이나 지붕모양이 똬리(또아리:머리 위에 짐을 얹을 때 고이는 물건 모양 같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구조는 기본적으로 외통집에 속하며, 안동(安東)지방의 뜰집과 유사한 평면구성이지만 칸수는 다르다.

(일산 밤가시 초가의 자료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밤가시 초가를 둘아보고 내려오는길을 잡습니다.

 

 

 

 

"밤가시 마을" 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지역은,

이름 그대로 마을 전체가 밤나무가 많아 주 소득이 밤에서 나오고,

초가집이나 울타리를 칠 때도 모두 밤나무를 이용하는 등 밤나무가 삶의 터전인 곳으로 그덕분에 "밤가시" 라는 지명도 여기서 전해졌다고 합니다.

 

일산 신도시 개발로 인해 마을 전체가 없어지고,

새로운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면서 이곳 일대가 황무지로 변할 즈음에,

그 때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던 초가들이 모두 헐리게 되는 상황이 되었고..

하지만 후대에게는 역사로 남아버릴 서민들의 집 "밤가시 초가"는 사진자료 만으로는 남기기엔 아쉬움이 있어서

그덕분에 "밤가시 초가"를 보존하게 되면서 가능한 한 원주인이 살던 모습 그대로 보수하여 보전을 하게되어,

지금은 일산의 명물로 옛사람들의 생활상을 볼수있는 곳으로 남아 일산 시민들의 큰사랑을 받는곳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일산 밤가시 초가와 민속 전시관을 돌아보면서,

이곳 민속 전시관을 관리하시는 여성 해설사님의 세세하고 친절한 설명 덕분에,

더욱 의미있고 기분좋은 방문으로 남게된 고양의 문화재인 일산 밤가시 초가와 민속 전시관 답사기 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