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을 여행하면서,

함안군 군북면 원북(院北)마을에 있는 서산서원을 돌아보고,

조선시대의 누정인 채미정(菜薇亭)을 찾았습니다.

서산서원에서 채미정으로 가는길목에는,

근자에 세운듯한 함안 조씨의 기념비가 보이고,

 

 

 

 

비석 옆에는 낡은 비각이 있어 잠시 머물러 봅니다.

 

 

 

 

이비각은 고려말의 충신이었던 전서공 조열(典書公 趙悅)의 신도비로,

 

 

 

 

전서공 조열(典書公 趙悅)은

고려 공양왕때 공조전서를 역임하였고,

태조 이성계 부자를 견제할 것을 수차례 간하였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자 낙향하여 함안땅에 은거했다가

수년 후, 결국 고려가 망하고 뒤이어 공양왕이 사사되자,

통곡하고 공양왕의 장사를 지내고 3년간 복상을 했으며.

 

 

 

 

태조 이성계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끝까지 고려와 공양왕에 대해 충절이 변치 않았다고 합니다.

 

 

 

 

조열선생의 신도비 옆에는 쌍절각(雙節閣)이라는 또하나의 비각이 있으며,

이비각은 충의공 대소헌 조종도 와, 열녀 중정부인인 전의이씨의 쌍절각 입니다.

 

 

 

 

대소헌 조종도(大笑軒 趙宗道,1537~1597)는,

생육신 정절공 어계 조려조려((趙旅)의 5대손으로,

이곳 함안 군북면 원북동에서 출생하여 성장했으며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례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7년간의 임진왜란때  송암 김면, 내암 정인홍과 더불어 의병활동을 하였는데,

1597년 정유재란때 함양 안의의 황석산성에서 카토 키요마사가 이끄는 대군과 맞서 싸우다  황석산성이  함락되면서 장렬히 전사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전의 이씨 부인도 남편을 따라 자진하여 절개를 지켰다고 하며  이곳의 쌍절각(雙節閣)은 대소헌 조종도와 전의 이씨 부인을 기리는 비각입니다.

 

 

 

 

두곳의 비각에서 채미정으로 향하는 길목의 감나무는 가을의 풍성함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신도비 방향에서 들어서면서 보이는 채미정(採薇亭)의 뒷모습으로,

서산서원 앞 "청풍대"란 절벽과 "고마암" 이란 멋들어진 바위가 빚어낸 좋은 경관이 있어  이곳에 누각을 세우고 그 이름을 채미정이라 했다고 합니다.

 

 

 

 

채미정(採薇亭)의 마당 한쪽에는,

수년전 고사였다는 500여년을 살다간 은행나무의 둥치만이 남아있고..

 

 

 

 

채미정(採薇亭)입니다.

1735년 서산서원의 부속건물로 세워진 단층 팔작지붕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면 2칸 측면 1칸의 방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툇마루로 되어있는 특이한 구조의 정자입니다.

 

 

 

 

채미정(採薇亭)의 현판으로,

경북 구미에 있는 고려말의 충신인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채미정(採薇亭)과 같은 이름으로,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이곳의 주인인 어계 조려((趙旅:1420-1489) 또한 유사한 명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자한채와 조그만 연못, 그 연못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아치형 다리가 있으며,

채미정 겹처마 팔작지붕의 처마 밑에는 "百世淸風(백세청풍)" 이라고 나뉘어쓴 현판이 보이며,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 즉 그의 곧고 맑은 충정을 보여주는듯 합니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 조려(1420-1489)는,

단종이 숙부인 세조에 의해 사약을 받고 영월 땅에서 죽임을 당하자,

강원도 영월까지 달려가 그 시신을 수습하고 낙향을 하였으며 단종의 위폐를 동학사에 모셔놓고 백이산 아래에 은거를 하였다고 전합니다.

백이산 아래에 은거한 어계(漁溪) 조려(趙旅)는  풀과 고사리로 연명을 하면서 살았다고 전하며,

"채미(採薇)란 고사리를 캔다는 뜻으로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 무왕을 섬기는 것을 수치로 알고,

수양산으로 숨어들어 풀과 고사리만 먹다가 아사를 하였던 고사에서 유래합니다.

조려(趙旅)는 백이, 숙제와 같은 뜻을 품고 이곳에서 은거를 하면서 좋은 의복과 좋은 음식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조려(趙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가 바로 이곳의 채미정(採薇亭) 입니다.

 

 

 

 

앞뜰에는 못을 파고,

동쪽 언덕 청풍대(淸風臺) 위에는 문풍루(聞風樓)라는 육각정을 세웠는데, 주변 지형을 이용한 정원 구성이 볼만한 곳입니다.

 

 

 

 

청풍대(淸風臺)라는 언덕위의 문풍루(聞風樓)라는 육각정으로,

문풍(聞風)은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라는 의미가 있어서,

이 곳에 앉아 한줄기 청아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글을 읽던 옛 선비의 모습을 떠올릴수가 있습니다.

문풍루에서는 백이산과 숙제봉이 나란히 바라보입니다.

단종 복위 후 숙종이 글을 내려 이 산을 백이산(伯夷山)이라 이름 하자,

그 옆에 있는 봉우리를 숙제봉(叔齊峯)이라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함안의 문화재를 답사하면서 찾아본,

선비의 지조와 풍류를 함께 느껴볼수 있었던..

함안의 충절이 더욱 아름다운 정자 채미정(採薇亭) 답사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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