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의 유적지를 찾아보면서,

"영모재"와 함께 찾은곳은 "생금집" 입니다.

교훈이 있는 특별한 전설을 안고 있다는 고택여서 기대감이 더욱 컷습니다. 

시흥시 죽율동에 위치한 생금집은,

금녕 김씨(金寧 金氏) 자손이 12대째 세거하고 있던 곳으로,

인근에 널리 알려진 생금집의 특별한 전설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집 앞에는 "생금집"에 대한 전설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고,

 

 

 

 

영모재에 이어 생금집도 문이 굳게 잠궈져 있습니다.

위탁 관리를 하는탓에 평일에는 문을 열어 개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휴일을 맞아 이곳을 찾는 많은분들은 문틈 사이를 들여다 보구서는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

 

 

 


그냥 돌아서기 아쉬워 이곳의 구조를 살펴봅니다.

12칸의 안채와 6칸의 바깥채로 이루어져있는 생금집의 면적은 149.84㎡에 이르는데,

조선조 말엽의 기본적인 전통가옥의 생활상을 충실히 살펴볼 수 있는곳으로,

생금집의 주인은 조선조 말엽에 시흥시 죽율동 597에 살았던 김창관(金昌寬, 1845~1929, 호적에는 김창권으로 기록됨.

자는 인홍, 본관은 금녕, 아버지는 김치협, 어머니는 연안 차씨. 통정대부 [通政大夫: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는 관직] 에 오름)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의 가옥은 1913년에 개축한 것으로 부분적인 개수는 있으나,

건립 당초의 기본적인 가옥구조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 지역 전통가옥의 생활모습을 비교적 충실히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될 뿐 아니라,

바닷가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상이 충분히 반영 되어있는 가옥이라고 합니다.

 

 

 

 

대문간 옆에 세워둔 나무수례가 눈길을 잡아주고..

 

 

 

 

문틈 사이로는 옛날 시골에서,

어린 병아리를 키울때 사용했던 도구인 "어리"의 모습도 들어 옵니다.,

 

 

 

 


개구멍(?)이라고 하기도 하죠..

외부에서 병아리나 닭을 해치는 들짐승들을 막기위해 석쇄로 가려 두었습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생금집 부속가옥으로,

디딜방아가 보이는 부속가옥은 시흥시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통 초가집이라고 합니다.

 

 

 

 


소를 키우는곳인 외양간의 모습도 보이고..

 

 

 

 

집의 뒤뜰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있는듯한 느낌을주는 장독대의 모습이 들어 옵니다.

 

 

 

 


일하는 가치, 분수에 맞는 생활자세를 전해주는,

생금집이라는 전설이 만들어진 장소로서의 교훈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곳인 "생금집" 입니다.

 

 

 

 


담장을 따라돌면서 안쪽을 들여다 봅니다.

 

 

 

 

안채의 뒷편으로 부속건물인 초가와 마주보이는곳 입니다.

 

 

 

 

담장옆에서 자라고있는 모과나무의 모과는 벌써 모양을 갖추어 자라고 있습니다.

 

 

 

 

욕심내지 말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주는 곳으로,

폐쇠적인 관리로 아쉬움이 더했던 시흥의 유적지 "생금집"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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