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에 섬여행을 나섯다가,

추자도에서 완도로나와 상경길에 찾은 무등산 자락의 정자 "독수정 원림" 입니다.

 

독수정원림(獨守亭園林) 입구의 모습으로,

정자로 오르는 길의 양쪽에는 꽃무릇이 활짝 피어올라 반겨줍니다.

 

 

 

전남 담양군 남면 연천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원림 독수정원림(獨守亭園林)입니다.

독수정 지역은 진입로에 중국이 원산종인 회화나무와 자미나무 등의 노거수가 심어져 있고,

정자 앞에는 자미나무,매화나무 등의 수목이 심어져 있는데  크기나 수령으로 보아 1890년대 중건 당시에 심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경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산수 원림으로서의 기법을 이 지방에 도입하는데 선구적인 역활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곳이라고 합니다.

 

 

 

독수정(獨守亭)의 현판으로,

독수정이라는 이름은 이태백(李太白)의 시,

이제시하인 독수서산아(夷齊是何人獨守西山餓)”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창호는 띠살창으로 양쪽 측면은 2분 합문으로,

정면은 4분합문의으로 되어있으며 열개로 하여 걸쇠에 걸게 하여둔 구조입니다.

 

 

 

전신민(全新民)은 고려후기의 무신으로  호는 서은(瑞隱),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북도안무사 겸 병마원수(北道安撫使兼兵馬元帥)를 거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역임 하였는데,

막역지기로 지내던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선죽교(善竹橋)에서 살해되고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 72현(七十二賢)과 함께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은거하였는데,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아침마다 조복(朝服)을 입고 송도(松都)를 향하여 곡을 하고 절을 하였으며,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연천리에 독수정(獨守亭)이란 정자를 짓고 은둔을 하였다고 하며,

묘는 담양군 남면 금산(金山)에 있고, 이곳 독수정 아래에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독수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정면 1칸과 후퇴(後退)를 온돌방으로 꾸몄으며,

정면과 측면 모두 3칸의 중앙에 재실이 있는 팔작지붕으로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상태이지만,

정자 건물은 1972년에 허물고 새로 건립하였기 때문에 변형으로 인하여 기념물 지정이 되지 않고 주변의 원림(園林)만 전라남도기념물 제 61호로 지정이 되어있습니다.

 

 

 

정자의 천정에는 독수정 중수기등 수많은 현판이 걸려 있으며,

전신민이 고려왕조와의 의리를 지키고자 이 곳에 은둔하며 독수정을 건립한 이유를 담은 독수정원운(獨守亭原韻)과,

조선후기 사람인 완산(完山) 이광수(李光洙)가 쓴 독수정 14경(獨守亭14景)등이 걸려 있습니다.

 

誓將獨守結爲堂(서장독수결위당- 장차 홀로 절개를 지키려 이 집을 지었다네)

風塵漠漠我思長(풍진막막아사장- 바람과 티끌은 막막하고 나의 생각은 갈수록 깊어지네)

何處雲林寄老蒼(하처운림기노창- 어느 깊숙한 구름과 숲 사이로 이 늙은 한몸을 숨길 수 있으랴)

千里江湖雙?雪(천리강호쌍빈설- 임금 계신 곳 천리밖의 자연에서 두 귀밑버리는 눈처럼 희어지고)

百年天地一悲凉(백년천지일비량- 기껏해야 백년도 못사는 인생살이 슬프고 처량하다)

王孫芳草傷春恨(왕손방초상춘한- 아름다운 풀과 꽃들은 가는 봄을 가슴아파하고)

帝子花枝叫月光(제자화지규월광- 두견새는 꽃가지에 앉아 달을 보고 우는구나)

卽此靑山可埋骨(즉차청산가매골- 이곳 청산에 뼈를 묻으려고)

誓將獨守結爲堂(서장독수결위당- 장차 홀로 절개를 지키려 이 집을 지었다네)

전신민(全新民)의 독수정원운(獨守亭原韻)을 가져왔습니다.

 

 

 

다른곳과는 달리 북쪽을 향하여 세워진 정자에 올라 내려다 봅니다.

증암천(옛 지명은 자미탄) 가장 상류에 자리잡고 있는데 숲에 가려 하천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왕버들·소나무·참나무·서어나무 등의 거목(巨木)에 둘러싸여 독수정이 자리하고 있으며,

주위에는 100여년 됨직한 배롱나무·매화나무·살구나무·산수유나무 등의 노거목이 있어 원림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서은(瑞隱) 전신민(全新民)이 1390년 전후에세운 정자 독수정의 뒷모습으로,

전신민은 고려가 멸망하자 두문동 72현과 함께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여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며 그 뜻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독수정을 건립하였고,

언덕 위에 북쪽을 향한 정자를 지어 이른 아침마다 북쪽 개경(開京)을 향하여 울며 절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개경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서있는 정절의 정자 "독수정"

담양 지역의 정자의 시류라고도 할수있는곳이지만,

주변의 환벽당과 식영정, 유명한 소쇄원의 그늘에 가리워져,

찾는이가 많지 않지만 보존되고 지켜 나가야 할곳인 담양의 정자 "독수정 원림"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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