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드는 즈음에..

담양의 아름다운 정자 명옥헌의  원림을 찾았습니다. 

 

마을을 통해서 들어가는 명옥헌 원림입니다.

광주를 거쳐 담양을 여행하면서 아쉽게도 비를 만나서,

명옥헌에 왔다가 쏟아지는 비로인해 차안에서만 한참을 바라보다가 되돌아 갔었는데 식영정과 소쇄원을 돌아보고나서 다시 찾을수 있었습니다.

 

 

 

마을길을 가로질러 가야하기에 곳곳에서 황토내음의 안내 표지를 볼수가 있는데,

원림(苑林)이라 표기가 되어있는데 명옥헌원림만 왜 원림(園林)이 아니고 원림(苑林)인지 궁굼합니다.

 

 

 

고즈넠히 자리잡은 명옥헌 원림입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음양구조를 보여주는 명옥헌 원림은,

고졸한 정자와 배롱나무, 소나무 등의 정원수가 어우러져 정원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있는곳입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의 수학 및 천문학 문헌인 『주비산경(周髀算經)』에서,

“모난 것은 땅에 속하며, 둥근 것은 하늘에 속하니,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고 선언되어 있다.

고대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 비슷한 표현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명제는 전근대 시기 말까지 동아시아 사회에서 하늘과 땅의 모양에 관한 권위있는 학설로 받아들여졌다.

(참고로 가져온글 입니다)

 

 

 

명옥헌으로 들어가는길은 연못을 중심으로 가장자리의 둑방길을 따라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못 한가운데 있는 섬 안에도 배롱나무가 자리하고 있으며,

배롱나무는 이 정원을 온통 뒤덮고 있어 백일홍의 숲길을 걷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늦여름 배롱나무 꽃이 질 때면 붉은 꽃비가 되어 정원 곳곳에 흩날리고,

꽃잎이 못 위에 호사스런 붉은 융단을 만드는 아름다운 자미(紫薇, 배롱나무)의 정원이 명옥헌 원림으로,

이곳은 담양 지방의 정자원림 중에서도 배롱나무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는데 조금 늦은 느낌입니다.

 

 

 

화사한 배롱나무꽃이나 낙화를 보기에는 늦은 시기 이지만  꽃무릇이 길을 안내하고 있어 위안이 되어 줍니다.

 

 

 

오희도의 비를 앞에둔 명옥헌(鳴玉軒)입니다.

조선 중엽에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1583∼1623)가 산천경계를 벗하며 살던 곳으로

별뫼의 원림들 보다 한세대 뒤인 1625년  오희도(1583~1623)의 넷째 아들 오이정(1619~1655)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거하면서 만든 정원이며,

정철의 아들 정흥명이 지은 《명옥헌기(鳴玉軒記)》에는 명옥헌을 오희도의 손인 오대경이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별뫼의 원림들: 식영정과 서하당이 있는 별뫼(성산)에서 송강 정철을 정점으로 하는 누정문화을 표현

 

 

 

이곳의 주인인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1583∼1623))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인조반정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1602년(선조 35)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에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의 관원으로 천거되었고,

기주관을 대신하여 어전에서 사실을 기록하는데 민첩하여 여러 대신들의 칭찬을 받았으며  검열에 제수되었습니다.

벼슬에 큰 뜻이 없었던 그는 당시 광해군 재위기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모시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전하는데,

어머니와 후산마을에 정착해 산기슭에 망재(忘齋)라는 조그마한 서재를 짓고 공부에 매진했으며, 때때로 고개 너머에 있는 장계골에서 자연을 즐겼다고 합니다.

오희도는 효성이 남달리 지극하였으며 형제와 함께 살면서 독서하며 서로 권면하였고 금성(錦城)의 옛 고향 대명곡(大明谷)에 거처하면서 명곡(明谷)이라 자호하며,  

만년에는 뒷산 기슭에 집을 지어 망재(忘齋)라 하였으며 사람들을 대하는 데에는 소장귀천(少長貴賤)을 막론하고 두루 환심을 얻었다고 하는데,

불행히도 천연두에 걸려 41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저서로는 『명곡유고(明谷遺稿)』가 남아있습니다.

 

 

 

배롱나무는 백일홍으로도 불리우며 중국에서 들여온 꽃나무로,

꽃이 오래 핀다고 하여 백일홍 나무라 하였고, 세월이 지나면서 배기롱나무로 변했다가 지금의 배롱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꽃도 예쁘지만 줄기의 모양도 구불구불 자연스럽게 보여 조경용으로 많이 심는나무인데,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울창하게 배롱나무숲이 조성이 되어있습니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의 정자로,

 

 

 

 


명옥헌(鳴玉軒)이라는 현판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글씨라고 하는데,

두 연못 사이를 흐르는 물속 바위에  송시열의 시귀절이 새겨진 "명옥헌 개축" 이라는 글이 있는데, 

지금 명옥헌 현판에 걸려있는 글씨는 이 글을 그대로 모각한 것이라고 합니다.

 

개축이란 명옥헌이 처음 세워진 해로 1673년을 말하며,

명옥헌(鳴玉軒) 계곡사이로 수량이 풍부했을 때에 “물이 흐르면 옥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하여 지어진 이름 입니다.

 

 

 

홑처마 이지만 팔작지붕의 날개를 받쳐주는 처마기둥이 주련과 함께 나란이 보이고..

 

 

 

다듬었으나 다듬지 않고 세운듯 보이는 초석과 디딤돌입니다.

 

 

 

정자곁에 서있는 낮은 굴뚝의 모습도 정겹습니다.

 

 

 

명옥헌은 뒤에서만 들어갈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정자의 한가운데에 방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 ㅁ자 마루를 놓은 형태로 소쇄원의 중심건물인 광풍각과 유사한 평면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형식은 호남 지방 정자의 전형으로  방이 있는 정자에서는 별서의 주인이 항상 머무를 수 있고, 공부를 하거나 자손들을 교육할수도 있도록 되어 있는데..

명옥헌은 이와 같이 은일자의 거처나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기에 알맞은 구조를 지녔습니다.

 

 

 

명옥헌(鳴玉軒)으로 올라 봅니다.

 

 

 

마루에 올라 가운데에 자리한 방을 들여다 보고..

 

 

 

정자의 규모나 유명세에 비해 현판은 몇되지 않습니다.

 

 

 

정자의 규모나 유명세에 비해 현판은 몇되지 않습니다.

 

 

 

천정에는 팔작지붕에서 많이 보이는 우물반자 장식의 모습도 보이지않지만,

 

 

 

굳이 마루가 아니더라도,

방문을 열고 방에서 내다보이는 원림(苑林)의 풍경으로도 황홀경 입니다.

 

 

 

명옥헌 원림의 연못은 네모난 형이며 가운데 섬은 둥근형 인데,

조선시대 정원에 많이 나타나는 방지원도(方池圓島)의 모습으로,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여긴 선조들의 우주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호남에서는 정자를 짓더라도 거기에 주저앉아 자연을 가꾸고 살집으로 만든 반면,

영남은 장쾌한 자연 속에 거주하기보다는 간헐적으로 휴식과 학습할 목적으로 정자를 지어진게 많습니다.

그래서 영남의 누정은 계곡과 강변의 경승지에 세워졌었고, 호남의 누정 혹은 원림은 생활현장에 세워진 것이 특징인데,

목적에 의한점도 있겠지만 산세등 지형적인 영향도 가미가 되었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연못의 주변에는 정원의 경계부에 소나무가 줄지어 자라고 있어 담장 역할을 대신하며,

배롱나무, 느티나무 등이 잘 배식되어있어 호남지방  별서정원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곳 입니다.

 

 

 

가운데에 방이 있고 사방에는 마루가 놓여 있는데,

마루에 앉으면 눈앞에 펼쳐진 정원과 배롱나무꽃의 풍경이 그윽하고 수려한 곳입니다.

 

 

 

정자의 왼쪽으로 흘러 들어오는 개울의 모습도 자연스럽습니다.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에서,

유독 명옥헌 만이 원림 (苑林)이라고 쓰고 있는데,

사전(辭典)에 원림은 '집터에 딸린 숲'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림(園林)은 동산, 계곡, 길, 숲 등을 자연 상태로 두고 적절한 위치에 집과 정자를 배치한 고려시대의 전통 정원으로,

경관이 좋은 곳에 약간의 쉼터를 짓고 나무와 돌을 정돈하는 정도로 꾸몄을 뿐, 자연의 질서를 심하게 흐트러뜨리거나 조작하지 않았습니다.

즉 자연경관이 주인이고 인공 경관은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 속에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관념이 깃들어 있어서,

대표적인 원림으로 장흥의 부춘정 원림, 담양의 독수정 원림과 소쇄원, 화순의 임대정 원림 등이 있습니다.


원림에는 원림(苑林)과 원림(園林)이 있는데 명옥헌 원림은 원림(苑林)이고 독수정원림은 원림(園林)으로 표기 하는데, 

원림(苑林)과 원림(園林)의 차이는  원(苑)과 원(園) 차이인데,

사전에서는 둘을 혼용해서 쓰고 있지만 담장이 있으면 원림(園林)으로  담장이 없으면  원림(苑林)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명옥헌 원림(苑林)을 제외하고 모두 원림(園林)을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원림이라 이름 붙은 것은..

담양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 담양 독수정원림(獨守亭園林), 장흥 용호정원림( 龍湖亭園林)과 부춘정원림(富春亭園林), 보길도 윤선도원림( 尹善道園林),

화순 임대정원림(臨對亭園林), 순천 초연정원림(超然亭園林), 담양 소쇄원(瀟灑園), 예천 초간정원림(草澗亭園林) 장성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 등이 있으며,

명옥헌 원림(苑林)을 제외하고 모두 원림(園林)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정원에 관한것을 자료에서 찾아봅니다.

자연을 함부로 해하여 완전히 해체한 다음 새로운 정원을 꾸미는 것은 중국의 정원이요,

지나치게 오리고 도려내어 전혀 새로운 정원을 만드는 '성형정원'은 일본의 정원이다.

원림은 공간을 집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집터에 딸린 숲이나 계류, 계곡까지 공간을 확대한다.

담 또는 인공 너머 자연을 그대로 정원으로 끌어들이려는 생각이 원림에 잘 드러나 있다.

원림은 자연이 주인이고 사람은 단지 자연을 빌린 객에 불과하다.

이렇기 때문에 빌린 사람은 주인인 자연을 함부로 해하거나 도려내거나 오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우리의 자연에 대한 태도다.

이런 자연에 대한 태도에 의해 중국과 일본, 한국의 정원의 특징이 드러난다.

 

 

 

차창 너머로 바라만 보다가 그냥 지나칠뻔 했던,

다행이도 비가 그친 덕분에 다녀올수 있었던 배롱나무숲속의 무릉도원과도 같은,

원림에 대한 또다른 느낌을 안겨주었던,

담양의 아름다운 원림 명옥헌(鳴玉軒) 원림(苑林)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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