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의 문화재를 찾아,

고려의 마지막 비운의 왕인 "공양왕릉"을 찾았습니다.

 

공양왕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65-1 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이지역을 공양왕릉으로 인해서 "왕릉골" 로 불리워 지기도 하는곳 입니다.

 

 

 

사적지의 안내문이 보이고 낮은 언덕에 많은수의 분묘들이 보입니다.

 

 

 

목책으로 둘러져 있는곳이 공양왕릉임을 알수가 있는데 묘역을 새로이 단장 하는듯 어수선해 보이는 모습입니다.

 

 

 

공양왕에 대해서 설명해 두었는데,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알기쉽게 기록을 해두었습니다.

 

 

 

공양왕릉 바로위에 자리한 묘역들로,

규모로 보아 일가를 이룬집안의 것으로 보이는데,

왕릉 위에 묘역이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 한데 몰락한 왕조의 마지막 왕의 무덤여서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걷흙을 걷어내고 새로이 잔디를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어서 어수선한 분위기 입니다.

 

 

 

봉분의 작업은 마친듯해 보이며..

 

 

 

한많은 왕으로 기록된  고려공양왕릉 입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1345∼1394, 재위 1389∼1392)과 그의 부인 순비(順妃) 노씨(盧氏)의 무덤으로,

이름은 요(瑤).고려의 제20대 국왕인 신종의 둘째 아들 양양공의 7대손 이며,

정원부원군 왕균과 충렬왕의 서장자 강양공 자(滋)의 손녀 국대비 왕씨의 차남으로,

이성계(李成桂)가 실권을 맡았던 재위: 1389년 ~ 1392년로 4년간 고려의 제34대 국왕이자 마지막 국왕입니다.

폐위 후 처음에는 강원도 원주로 유배되었다가 간성으로 유배지가 옮겨졌고,

다시 삼척으로 옮겨진 뒤에 그 곳에서 왕자 석(奭), 우(瑀)와 함께 참수,또는 교살 되었습니다.

 

 

 

무덤 양식은 쌍릉 형식이며 무덤 앞에는 비석과 상석(床石)이 각각 하나씩 있고,

두 무덤 사이에 석등(石燈)과 석호(石虎) 그리고 무덤 양쪽에는 문신과 무신 상이 세워져 있으며,

석호는 고려의 전통적인 양식을 띠고 있지만, 조선 초기 태조의 건원릉(健元陵)과 태종의 헌릉(獻陵) 무덤 양식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석등은 전체적으로 왜소하고, 하대받침 위에 4각의 간석(竿石), 8각의 화사석(火舍石) 그리고 8각의 옥개석(屋蓋石)으로 되어 있으며 화창(火窓)은 2개 입니다.

또한 능 양쪽에 배치되어 있는 석인은 모두 1m 정도인데, 능에 가까운 것은 보다 작고,

손에는 아무 것도 쥐지 않고 두 손을 마주잡고 있는 형태이며 그 옆의 것은 키가 약간 크고 손에는 홀(笏)을 쥐고 서 있습니다.

 

 

 

비석은 처음부터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고려공양왕고릉(高麗恭讓王高陵)’이라는 글씨가 있는 묘표석(墓表石)은 조선시대 고종 때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공양왕고릉(高麗恭讓王高陵)’이라는 글씨가 있는 묘지의 주인을 알려주는 묘표석(墓表石)으로 보입니다.

 

 

 

공양왕의 또다른 이야기로,

개경에서 도망와 있던 공민왕 내외가 이곳의 웅덩이에 나란이 빠져 죽었고,  

왕의 죽음을 알리고 삽살개도 그곳에 빠져 죽었다고 하며,  

그때 죽은 삽살개를 기리기 위해 왕릉에 충견의 석물도 함께 만들어 세웠다고 합니다.

연못을 바라보며 머리를 조아리고 앉은 모습으로 475년 고려역사의 최후를 지켜보는듯한 충견 삽살개 석상 입니다.

 

 

 

봉분 주변으로도 잔디를 다시 입히려 준비해둔 모습입니다.

 

 

 

공양왕릉은 이곳뿐만 아니라 그의 유배지이며 사사지(賜死地)였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도 있다고 하며,

한 사람의 무덤이 두 곳에 존재하는 것은 고려 왕실의 마지막을 상징해주는 것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삼척에 있는 공양왕릉(三陟恭讓王陵)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곳의 공양왕릉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반면 강원도 삼척시의 공양왕릉은 민간에 오랫동안 구전 되었던 것으로,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삼척공양왕릉은 이곳보다 규모가 크다고 합니다.

 

 

 

왕릉위에 또다른 무덤들, 그리고 봉분의 규모나 키작게 서있는 석물등,

고양 고릉(高陵)은 고려공양왕릉이라기 보다는 조선개국과 더불어 땅속에 묻힌 고려왕조의 무덤으로 느껴지는 곳으로,

왕이 되지 않았으면 행복한 삶을 누렸을수도 있었을 고려말의 비운의 왕 "공양왕릉"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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