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을 보내면서 화창한 가을날에,

양주에 있는 "죽산안씨 연창위 종가(竹山 安氏 延昌慰 宗家)"를 찾았습니다.

죽산안씨 연창위 종가로 들어가는 문은 따로이  없지만,

입구에 홍살문이 자리하고 있어 찾기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왼쪽에 보이는 한옥의 모습으로,

현대에 와서 사용하고 있는 죽산안씨 종가로 보여집니다.

 

 

 

종가의 솟을 외문 옆에는 개를 가두어둔 우리의 모습이 보이고,

찾아온 방문객이 낮설어 인지 마구 짓으며 주인에게 객이 왔슴을 알립니다.

 

 

 

왼쪽의 너른 마당에는 풀어놓은 개도 한마리 보이는데,

순하고 겁이 많아서 인지 다가가면 저만치 도망가 있어 가까이 올생각이 없습니다.

 

 

 

고풍스런 느낌이 한눈에 들어오는사랑채의 모습으로,

죽산 안씨 연창위 종가(竹山 安氏 延昌慰 宗家)의 사랑채 입니다.

 

 

 

조선 전기 세종의 둘째딸 정의공주(貞懿公主)의 부마인 연창위 안맹담(1415~1462)과,

아들 안종탄(安從坦: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역임)이 건립 하였다고 하는데,

안종탄이 10세 되던 해인 1500년(연산군 6)에 지었다고 전해지며  그후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하였습니다.

 

 

 

사랑채의 옆으로 내당으로 들어가는 대문위의 모습으로,

집안으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는 용도로 가시많은 엄나무가지가 걸려있습니다.

 

 

 

이곳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는데,

영조 대(1725~1776)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인해 보수와 변형의 과정을 겪었다가 2009년에 전면 보수 공사를 하였습니다.

 

 

 

사랑채의 마루위에 보이는 "면후원" 현판 이구요..

 

 

 

대문은 닫혀있으나,

사당과 마주하고 있는 작은 옆문은 열려있어 안으로 들어 갈수가 있습니다.

 

 

 

작은 옆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내당의 모습이구요,

 

 

 

대문의 안쪽 모습입니다.

 

 

 

전체적인 집의 구조는 ‘ㅁ’ 자형으로 중부 지방의 전형적인 주택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가구의 치목이나 맞춤 그리고 공간 구성으로 미루어 조선 후기의 건물로 추정이 되는데,

 

 

 

마룻바닥과 뒷간 등은 500년 전 만들어질 당시의 원형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원형이 많이 훼손되기는 하였으나 대청,

대들보, 석가래, 지붕과 초라하게 보이는 돌계단 등 주요 구조부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사대부 주택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건축물로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대부들이 누리던 호화 주택이 아닌 청백한 선비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가옥으로 평가가 되고 있습니다.

 

 

 

 

안방과 부엌사이에 마루에 대청마루의 날개모양 덛붙여둔 쪽마루의 모습도 특이 한데.

반대편에 있는 건너방 에서도 같은 모습의 쪽마루의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조선후기의 고택에서 많이 보이는 모습으로,

겨울의 세찬 찬바람을 효과적으로 막기위해 바깥은 여닫이로 안쪽의 문은 미닫이로 2중의 문구조입니다.

 

 

 

안방의 북쪽에는 좁고긴 북박이장 형태를 설치하여 겨울 북풍에 보온성을 높인 모습이고,

 

 

 

부엌쪽으로는 부엌을 들여다 보거나 크지않은 물품의 왕래를 위한 작은창과,

부엌 위에있는 당락으로 들어가는 문이 함께있는 모습입니다.

 

 

 

비교적 단출한 모습의 부엌으로,

부엌에서 뒷마당으로 나갈수있는 문의 문지방 부분의 모습이 특이 합니다.

 

 

 

안방 건너편에 있는 열린 창고에는,

바람을 일으켜 곡식의 알갱이와 쭉정이를 분리시켜주는 농기구인 "풍구"의 모습으로  "풍채"라고도 합니다.

 

 

 

안채로 들어왔던 작은문을 나서면 보이는 사당의 모습으로,

 

 

 

연창위 양효공(良孝公) 안맹담(安孟聃) (1415-1462)의 사당으로,

연창위 란 직책을 말하는 말로서 세종대왕의 부마의 벼슬(관직)이 연창위(延昌慰) 였으며,

작위(爵位,왕족에게 주는 자격)로는 군(君)과, 공(公)이 있습니다.

양효공(良孝公)이 후손을 두어 한 갈래를 형성하였으므로 연창위파(延昌慰派)라 하며,

그 종가의 이름을 죽산안씨 연창위 종가(竹山安氏 延昌慰 宗家)라 합니다.

 

 

 

관리를 잘해두어 깔끔한 모습으로 중부지역의 전형적인 가옥을 볼수있으며,

조선전기에서 출발하여 후기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살펴볼수 있는,

왕의 일가에 들었으면서도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곳으로,

양주의 문화재 "죽산 안씨 연창위 종가(竹山 安氏 延昌慰 宗家)"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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