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의 정자를 찾아,

영양군 영양읍 대천리의 삼구정(三龜亭)을 찾았습니다.

 

영양 대천리에 있는 삼귀정(三龜亭)에 이르니 때이른 함박눈이 내리고,

삼구정은 용계가 만년에 지내던 곳으로,

용계(龍溪) 오흡(吳潝: 1576~1641)은 퇴계선생 문하인 간재(艮齋) 이덕홍의 제자이며,

광해조 때 간신 이이첨의 목을 벨 것을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자 비분강개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고향인 대천리 반월산 아래 초가 정자를 짓고 은거 하였던 곳입니다.


 
그 후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되고 맞은편 강둑에 다시 정자를 세워 만년의 강학처로 삼았는데,

또한 정자 옆에는 사명대(思明臺)라는 대를 축조하고 주변에 송, 죽, 매를 가꾸면서 절의를 세워,

청나라에 항거하며 끝까지 복종하지 않았고 나라에서는 용계의 절의를 가상히 여겨 호조좌랑 벼슬을 내렸으나 결단코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침략자는 물론, 그들에게 항복한 조정(朝廷)의 부름까지 단호하게 거부한 철저한 절개가 남아있는 삼귀정(三龜亭) 입니다.

용계의 저서로 용계선생 문집이 있습니다.

 

 

 

용계의 아버지인 문월당(問月堂) 오극성(吳克成)은 선전관으로 근무하다가,

선조 임금에게 발탁되어 군기의 요직을 맡아 육전의 난제 해결과 황간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웠고 그로 인해 훗날 황간현감을 지내기도 하였고

문월당의 아우 오윤성은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거제도 앞바다에서 전공을 세운 인물로

오윤성은 영양에서 유일하게 해전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운 장군으로 꼽힙니다.

 

 

 

건물의 규모는 외부에서 보아도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을 가지고 있는데,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볼수는 없습니다.

 

 

 

삼귀정은 청나라에 항거한 두 형제의 절개가 살아 숨쉬는 곳으로 전하며,

삼귀정 앞에는 정자를 등에 업은 듯한 형상의 세개의 거북바위가 엎드려 있어 삼귀정(三龜亭)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정자를 고치면서 터를 돋우는 바람에 거북바위는 땅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고 하며,

정자 앞에는 동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동천과 반변천이 합류되는 곳으로 좋은 풍광을 보이는 곳입니다.

 

 

 

용계의 항거정신이 돌아볼수 있는곳 삼구정(三龜亭)으로,

머지 않은곳에 있는 청계정과는 깊은 연관이 있어서 함께 돌아보심이 좋을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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