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의 문화재를 찾아,

음성 원남의 충효정(忠孝亭)을 찾았습니다.

 

충효정은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2리에 위치해 있는데,

네비에도 명칭 등록이 되어있지않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지번으로 찾기도 힘드는데,

상당2리 마을회관이 있는 큰마을에서 윗동네로 올라가는 어귀에 있으며 노거수 느티나무 아래 농지에 홀로 서있어 찾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충효정(忠孝亭)의 원래 이름은 피금정(披襟亭)으로 약 300년 전에 세워졌다고 전하는데, 

피금정이란 "더운 여름날 온몸에 땀이 흘러 정자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으로 옷깃을 헤친다"는 뜻으로,

"피금정"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하당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교실난을 해결하고자 정자를 헐어 교실 짓는 목재로 사용하고 빈터만 남아있던 것을,

마을 사람들에 의해 1990년 4월 18일 옛 양식을 재현하여 다시 세우고 "충효정" 이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990년 정자를 다시 세우면서 세운 기념비가 서있고,

 

 

 

충효정(忠孝亭)은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처마 깊이 90㎝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2층 누형식으로 된 목조 전각입니다.

내부를 통문(通門)의 대청으로 꾸며 합판마루를 깔았고  창호는 정면 2칸·측면 1칸을 모두 개방하여 경관을 즐길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기둥의 간격은 정면과 측면을 모두 2.43m로 등간(等間)을 이루어 분할하고 있으며 높이 11㎝의 다듬돌 기단상에 25㎝ 높이의 원형의 주춧돌을 놓고,

다시 그 위에 팔각형으로 다듬은 높이 91㎝의 주형주초석(柱形柱礎石)을 놓아 누(樓)를 만들고 있으며,

그 위에 주경(柱俓)이 27㎝인 원형주를 세운 구조입니다.

 

 

 

충효정(忠孝亭)의 현판이며..

 

 

 

천정에 보이는 1990년 재건한 충효정(忠孝亭)의 상량으로

기둥 위의 공포는 무출목(無出目)의 일익공 계통의 가구수법을 보이고 있으나,

외부로 돌출된 이익공(二翼工)과 일익공(一翼工)의 우설(牛舌)이 주두(柱頭)와 맞물려 있어야 하는데 주두(柱頭) 밑의 기둥에 물려 있고,

대량(大樑)의 단부(端部)에 부착되어 있어야 될 봉두(鳳頭) 역시 주와 물려 있는 등,

전체적으로 익공 양식에서 벗어난 형태로 결구되어 잇는데 이는 확실한 고증 없이 1990년에 다시 지으면서 생긴 문제로 보입니다.

가구(架構)는 전·후·평주(平柱) 위에 대량(大樑)이 결구되고 있는 형식으로  대량 상부에 높이 18㎝의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종량(宗樑)을 받치도록 하고 있으며 종량(宗樑) 상부에는 높이 65㎝의 제형대공(梯形臺工)을 세워 옥개의 하중을 부담하고 있는 5량 집입니다.

 

 

 

 


기둥 윗부분의 바깥부분은 장식으로  멋을 내려한 모습이 보이고..

 

 

 

정자에서 보이는 풍광으로,

보덕산이 내려온 끝자락에 상당2리 마을의 윗쪽에 있는 상당교회와 주변 모습이며,

 

 

 

36번 국도에서 충효정으로 들어오는길의 모습으로 멀리로는 오성산이 조망됩니다.

 

 

 

정자의 마루에서 반기문 생가가 있는 방향으로의 모습으로,

이곳에서 반기문 총장의 생가까지는 2km 남짓한 거리에 있습니다.

 

 

 

고식을 제대로 따르지 않아,

고 정자의 모습은 퇴락 되었지만 선비들의 풍류를 즐기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마을주민 누구라도 느티나무 그늘의 시원한 바람을 즐길수있는 정자로 남아 남다른 의의가 있다고 사료되는, 

음성의 정자 충효정(忠孝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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