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는 여행지로 경남 의령을 택하였습니다.

의령(宜寧)의 한자 뜻을 풀어보면 말 그대로 "마땅히 편안한 곳"이라는 마음에 쏙드는 지명이며,

의령의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생가(生家) 찾았습니다.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에는 "입산문화역사마을"이 있으며,

역사마을 안에서 수월하게 백산 안희제 생가를 찾을수 있습니다.

 

 

 

생가의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작은 화단이 보이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안채와 사랑채 2동이 서있는데 목조와가와 초가의 모습으로, 

조선 후기 주택의 특징을 보여주는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 입니다.

 

 

 

사랑채는 의외로 초가로 지어져 있으며 안채 정면에 안채와 같이 동향으로 배치하여,

대지가 좁지 않은데도 안채와 바짝 붙어 있으며 정면 4칸의 전후 툇간으로 구성된 3량 초가집으로 안채처럼 남쪽 옆면에 마루를 두었습니다.

 

 

 

 

사랑채의 동쪽면에는 "이랑"인듯 올려 둘수있는 장치가 있고,

나무문이 하나보이는데 짐작컨데 "고방"으로 보여지지만 용도가 굼굼합니다.

 

 

 

사랑채의 온돌방 모습으로 필요시 관리인이 쓰기도 하는듯 한데,

초가는 사랑채의 역활 보다는 집사또는 아랫사람등 집안일을 도우는 이의 거처로 보이기도 합니다.

 

 

 

초가로된 사랑채의 처마의 모습으로,

홑처마의 끝 부분에 대나무를 역어 앞으로 나오게 보강 하였으며 갈대를 깔고 그위에 볏짚으로 얶은 이엉을 올린 모습입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구조로,

실내는 왼쪽에서부터 마루, 방, 대청 2칸, 방, 부엌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마루방의 위에 보이는 백산고가(白山古家)의 현판으로 은초(隱樵) 정명수의 글씨라고 하며..

 

 

 

 

남쪽의 마루방 위에도 선반과 현판이 보입니다.

 

 

 

중앙에 자리한 마루의 모습으로,

"백산상회"의  안희제(安熙濟)로 더 많이 알려진 그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그는 무역상이 되었고 벌어들인 돈은 상해로 보내져 독립운동자금으로 쓰여 졌는데,

백산 안희제(安熙濟)는  백범 김구, 백암 박은식과 더불어 삼백(三白)으로 불리던 독립운동가 중 한사람 입니다.

 

 

 

독립운동의 선봉장인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는 1885년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민중계몽을 위한 교육구국운동에 투신하여 1907년 창남학교를 창설하고 1908년 의신학교를 창설,

1907년 윤상은(尹相殷)과 함께 구명학교(현 부산구포초등학교)를 설립,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같은 해 고향인 의령에 의신학교를 설립하였고 다음해인 1908년에는 창남학교를 설립하여 신학문 보급에 힘썼습니다.

27세때 만주에서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소련으로 망명하여 독립순보를 간행하였고,

30세에 1914년 부산에서 무역회사인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설립하여 독립운동 자본금을 마련하였는데,

백산상회는 표면적으로는 해산물과 농수산물을 구매, 위탁하는 무역상이었으나,

실은 독립운동자금 조달과 국내연락망 구축을 위한 독립운동기지 였습니다.

독립운동자금의 원활한 조달을 위해 국내에 서울 대구 원산 인천 등 18개소,

국외에 중국 안동, 봉천, 길림 등 3개소의 지점 및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보냈습니다.

1919년 11월, 백산은 부산에서 백산상회 주주들과 영남지역 지주들이 중심이 되어 "장차 독립운동을 위한 인재양성"을 위하여,

우수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국내 및 해외유학을 시키기 위해 장학재단인 ‘기미육영회(己未育英會)’를 조직하였습니다.

1926년 언론창달을 위해 시대일보를 인수하였고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금되었고,

1943년 만주대종교단 사건으로 구금되었다가 출옥 4시간만인 1943년 9월 2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루에서 왼쪽의 남쪽 마루가 있는쪽 방의 모습이며,

 

 

 

마루에서 오른쪽에 자리한 방은 여러칸으로 규모가 더크며,

 

 

 

방에서 뒤쪽으로 또다른 방이 연결되어 있으며..

 

 

 

뒷방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또다른 방이 딸려있는 조금은 복잡한 구조 입니다.

 

 

 

안채의 마루에서 보이는 마을 입구쪽의 모습이며..

 

 

 

동향으로 있어 남측면이 남향으로 1칸 마루가 사랑의 역할을 하는 구조로,

평면도 전후 툇간이 발달하여 겹집 형식으로 발전하여 기능이 다양한 방이 필요하지만,

별동(別棟)을 만들지 않고 한 건물 안에서 처리한 조선 후기 주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채의 오른쪽에는 장독대가 자리해 있습니다.

경남 의령은 의병장 곽재우와 한말의 독립 운동가이자 애국지사인 백산 안희제, 삼성 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 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걸출한 인물들이 태어난 곳으로,

백산 안희제의 일대기를 MBC에서 1982년 6월 21일부터 1982년 9월 14일까지 드라마로 방영 되기도 했으며,

2011년에는 안희제의 삶을 다룬 창작 오페라로 공연되기도 하였습니다.

 

 

 

 

나라 안에서 상업과 무역으로 정보와 부를  독립을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어렵고 힘들었던 암흑기에 부자의 진정한 삶의 모습을 보여줘 귀감이 되었던 인물 였습니다. 

의병장 곽재우 유적지,  탐진안씨종택, 그리고 "상로재"가 인근에 있어 두루 돌아볼만 하며,

같은 의령 출신으로 25살의 차이는 있지만 고 이병철 회장과 역력히 비교가 되는 "백산 안희제"의 생가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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