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맞아 강화를 다녀 오면서, 

강화로 들어오는 갑문 이기도한 "갑곶돈대(甲串墩臺)"를 찾았습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인 갑곶돈대(甲串墩臺)로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으로 강화도의 8경중 강화 2경인 갑곶돈대는,

좁은 강화 해협의 언덕에서 적의 동태를 정찰하기 쉽고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적들을 포격하기 쉬웠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강화의 군사 요충지 였습니다.

 

 

 

갑곶돈대(甲串墩臺)로 들어가며 안내도를 살펴 봅니다.

가장 가까운 8번 "매표소"와,  6번 "금속활자 중흥 기념비", 7번의 "비석군"이 있고,

1번 "강화 전쟁박물관" 이며, 5번 "갑곶리 탱자나무", 3번 "강화 갑곶돈"과 2번 "이섭정" 정자 이며 4번이 "포대" 입니다.

 

 

 

경기도 인천시 강화군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섬으로,

38년간 임금을 품고 있었던 고려의 임시 도읍 였으며 외적의 침입에 시달리면서도,

마침내 그 자리를 지켜 내었던 역사의 땅으로 수많은 역사 유적이 있는곳 입니다.

 

 

 

매표소를 들어서면 오른편에는 나란히 늘어선 비석들이 보이고,

이곳은 비석군으로 조선시대 선정을 베푼 유수, 판관, 경력, 군수의 선정비,

자연보호의 일환으로 세운 금표와 인조14년 청나라 침입시 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강흥업, 구원일, 황선신을 기리기 위한 삼충사적비 등 67기의 비석이 모여 있습니다.

 

 

 

비석군을 지나면 왼쪽으로 "강화 전쟁박물관"이 자리해 있는데,

박물관은 돈대와 이섭정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찾기로 합니다.

 

 

 

설 다음날 아침부터 내린 눈덕분에 강화도 일원은 하얗게 덮여 있습니다.

 

 

 

간간히 내리는 눈으로 그리추운 날씨가 아녀서,

눈꽃의 풍경도 즐기며 산책하듯 느린걸음으로 돌아 봅니다.

 

 

 

돈대로 가는길의 벤치에는,

앙증맞은 눈사람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방문객들을 살피고 있고..

 

 

 

솜을 올려 놓은듯 눈꽃이 운치를 더해줍니다.

 

 

 

갑곶돈대(甲串墩臺) 입니다.

갑곶돈은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며,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입니다.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 (甲比古次)라 부른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고려 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 라며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는곳 입니다.

 

 

 

갑곶돈대(甲串墩臺)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후 부터,

조선 인조 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돈대로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습니다.

고종 3년(1866)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 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가  10월에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게 패하여 도주 하였으며,

이때 강화성 내에 있던 강화동종을 가져가려 하였으나 무거워 가져가지 못하고,

성내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등을 약탈하고 조선궁전 건물은 불질렀습니다.

또한 프랑스의 침범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멈추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나 오히려 더 큰 박해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었는데,

프랑스 함대를 물리친 조정은 이후 피비린내 나는 병인박해의 발단이 되었으며,

1871년 신미양요때 박상손·우윤집·최순복 등이 순교한 장소 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때 쓰였다는 대포로,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불랑기"로 연속 사격이 가능한 화기였다고 하며,

 

 

 

곁에 있는 "소포"는 사정거리가 300m에 이르는 화기 였다고 합니다.

 

 

 

돈대 아래로 김포와 강화 사이의 해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고려떼에는 이곳 해협을 건너지 못해 몽고군이 되돌아가기를 여러 번 했다는 곳입니다.

 

 

 

갑곶돈대가 모든 외세의 침략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어서,

조선시대에 와서는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에 의해 수많은 침탈을 당했고,

고종 3년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의 극동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기도 하였으며,

일본의 전권대신 구로다가 상륙하여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역사의 아픔이 있는곳이기도 합니다.

 

 

 

돈대의 성벽위 내린눈에 손도장으로 기념을 남겨 봅니다.

 

 

 

2층으로된 팔각 정자 "이섭정(利涉亭)" 입니다.

 

 

 

이섭정(利涉亭)의 현판이며..

 

 

 

이섭정(利涉亭)은 1398년(태조7) 강화부사 이성이 세웠으나 무너진지 오래 되었는데,

1976년에 다시 복원하였다고 하는데 고증할 자료가 없어서인지 조선초의 옛모습을 볼수없습니다.

조선초 편안한 시기에 여기 정자를 지은 이유는 전망이 좋은곳이기 때문으로 보이며 세월이 좋을 때는 풍류를 즐겼을 곳이기도 합니다.

 

 

 

이섭정(利涉亭)에 오르면,

강화대교와 함께 건너의 김포시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입니다.

 

 

 

정자에서 염하와 멀리 광성보와 대명항 방향 으로의 모습입니다.

 

 

 


이섭정 위쪽에는 비각 같아 보이는 건물이 보이는데,

 

 

 

포를 쏘는곳인 포대입니다.

사정거리 700m에 이르는 홍이포의 모습으로 "붉은 오랑캐의 화포" 라고도 불렸다고 하는 큰위력의 대포로,  

이주변은 1977년에 옛터에 새로이 옛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고 하며..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 들은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 하던 것이라 합니다.

 

 

 

포대에서 강화해협을 다시한번 내려다보고..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을 잡습니다.

 

 

 

강화 해협으로 들어오는 샛강과 그너머로 선원면 방향으로의 눈덮인 풍경으로,

 

 

 

눈이 내린 덕분에 하트모양의 화단의 꾸밈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강화 전쟁박물관"으로 (구)강화 역사관 입니다.

 

 

 

박물관 방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천연기념물 제78호인 갑곶리 탱자나무로, 

탱자나무는 4월이면 잎보다 지름 3~5cm의 흰꽃이 먼저 피고 열매를 맺는데 가을이면 노랗게 탱자열매가 익습니다.

이 탱자나무는 사기리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9호)와 함께,

강화도가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 됨을 입증하는 귀중한 탱자나무 입니다.

 

 

 

갑곶리의 탱자나무는 사기리 탱자나무의 나이와 비슷한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2.12m의 크기로,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강화도에 성을 쌓고 성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라며,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집 또는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많이 보아온 친숙한 나무입니다.

 

 

 

박물관의 입구에는 청년 소나무가 눈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구)강화역사관은 강화도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들의 역사교육으로도 좋은곳 입니다.

 

 

 

산성과 돈대를 축조할때의 모습을 재현해 놓아 이해를 쉽게 해두었는데,

 

 

 

각자의 하는일과 표정을 살펴보면 재미있게 해두어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강화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것은 고려의 몽고항쟁으로,

이를 떼어놓고 강화를 이야기 할수 없을것 입니다.

 

 

 

말을탄 기마의 몽고의 장수와,

이에 맞서는 고려 장수의 모습의 재현도 볼수있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위쪽의 "팔만대장경"과

"청자상감마상배"는 고려 14세기경 찻잔으로 높이가 높아 도도한 느낌을 주는데,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보다는 마음의 허전함을 비울 수 있는 경지를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윗층의 전시실로 올라 봅니다.

 

 

 

2층 전시실의 입구에 보이는 "검차"의 모습으로,   

검차는 수레의 전면에 설치된 방패에 검을 꽂아 만든 무기로서 고려시대부터 사용하였던 무기로,

 검차는 평지에서 4명의 병력이 운영하였으며 수레 맨 앞에는 나카로운 칼을 꽂아 공격하였고,

호랑이의 얼굴 모양을 한 방패를 설치하여 적의 말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기병의 돌격을 막는용도인 검차로 이동시에는 두개의 바퀴로 멈출때에는 보조바퀴를 내려 고정하여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2층 전시실의 모습으로,

이곳에서는 조선에서 근세에 이르는 전쟁관련 유물들을 볼수가 있습니다.

 

 

 

옛 의복과 문서, 서적등이 전시 되어있고,

 

 

 

전쟁 무기 전시실에는 옛날 총기와 함께,

 

 

 

조선의 도검 두자루의 모습도 보입니다. 

전쟁터에서 실제 사용된 전투용 칼인 흑"칠황동장만자문환도"와

당상관 이상의 고위직 고관들에게 하사 되었다는 의전용인 "주칠은장신수문옥구보도"가 있습니다.

 

 

 

시대를 따라 차례로 따르다 보면 한국전쟁 부분이 나오고,

 

 

 

6.25전쟁의 모습을 마무리 함으로 전쟁역사 박물관의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전시관을 나오는 말미에는,

한자루의 창과 옛날 군복을 비치해두어 포토존으로 다녀간 기념을 남길수도 있게 해두었습니다.

 

 

 

강화도를 기점으로하는 우리의 역사를 살펴 볼수있는 곳으로, 

갑곶돈대의 영산홍은 4월말에 개화해 5월 초순까지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고 하니,

연산홍이 만발하는 따뜻한 봄날에 다시 찾아야 겠습니다.

함박눈으로 운치있는 여행으로 기억에 남을 강화의 "갑곶돈대(甲串墩臺)"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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