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합천을 여행 하면서, 

합천군을 가로질러 흐르는 황강(黃江)변 언덕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정자 합천의 호연정(浩然亭)을 찾았습니다.

 

호연정(浩然亭)은,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문림리의 황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입니다.

 

 

 

호연정(浩然亭) 일원은,

정자 외에도 여러동의 건물이 있어 배치도를 살펴보고 들어갑니다.

 

 

 

호연정의 동쪽에 있는 정문격인 사주문(四柱門)으로,

인지문(仁智門)이란 현판이 작지만 선명하게 걸려 있습니다.

 

 

 

동쪽에 있는 출입문인 인지문(仁智門)을 들어서면 보이는 호연정(浩然亭)으로,

 

 

 

잘가꾸어진 수많은 나무들과 함께,

정자의 이름에 어울리게 가히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만 한 곳으로 여겨 집니다.

 

 

 

호연정(浩然亭) 에서는,

수많은 나무들이 있지만 유난히 배롱나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배롱나무의 깊은 뜻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같은 모습으로 보여,

선비의 나무로로 불릴 정도여서 고택의 정원이나 정자의 원림등에 많이 보이는 나무 입니다.

 

 

호연정(浩然亭)입니다.

조선 명종 때 이요당 주이(周怡 1515~1564)가 예안현감을 사직한 뒤 이곳에 자리잡아,

많은 한학자를 길러낸 곳이라 하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건물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본래의 정자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후손들이 다시 지었는데 다른 정자와는 달리 창방보[昌枋梁] 등에 흰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중수기에 숭정(崇禎)연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인조 때(1628∼1643)에 중건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정자 앞에는 풍경이 좋은 "개비리"가 있고  옆에 푸른 황강을 끼고 있습니다.

주이(周怡)가 직접 심었다는 여러 그루의 은행나무와 푸른 대나무등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는데,

이 좋은 풍광를 노래한 "호연정 12영(詠)"이 전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개비리: 犬遷,개비리의 "개"는 강가, "비리"는 벼랑을 뜻하여,

강가에 벼랑을 따라 걸을수있는 황걍변의 트레킹 코스인 "개비리 오솔길"을 지칭 합니다. 

 

 

 

호연정(浩然亭)의 현판으로,

명예와 물욕을 버린채 벼슬을 사양하고 호연히 돌아와 지은 정자라는 뜻에서 호연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호연정은 "물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마음" 나타내는 호연지기(浩然之氣)에서 나온 뜻으로 세상에 꺼릴 것이 없는 "크고 넓은 도덕적 용기"를 의미 합니다.

 

 

 

마루 안에는 또다른 글씨체의 호연정(浩然亭) 현판이 보이고,

 

 

 

정자의 대청에는 큰글씨의 "경(敬)"자 편액도 보입니다.

 

 

 

"제호연정"의 편액..

"이요당 선생 재록"편액 입니다

 

 

"입규완의"

 

"호연정기"의 편액입니다.

 

"호연정 중수기"

 

"호연정 중수기"

 

"호연정 중수 상량문"..

 

"호연정기"의 편액 입니다.

 

"호연정 중건기" 편액,

 

호연정(浩然亭)의 마루에는 이곳을 노래한 수많은 글과,

호연정 12영(詠), 호연정기, 중수기등의 수많은 편액들로 가득한데 도난을 우려해서인지 따로이 마련해 걸어둔듯 합니다.

 

 

 

 

 

호연정(浩然亭)은 조선시대 건축 장인의 천재성과 예술성을 찬란하게 보여주는 아름다운 정자로, 

기둥 대들보  나무표면이 매끈하고 뒤틀림이 거의 없으며 균열도 잔금을 제외하곤 거의 없는 편인데,

조선중기때 지어진 건축물 이지만 거의 원형보존에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정자의 기둥을 이룬 나무 중에는 둘레가 2m를 넘는 거목이 있는가 하면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느다란 나무도 보입니다.

 

 

 

놀라운 것은 대청의 윗부분인 창방을 떠받치는 나무로, 일부러 심하게 휜 나무를 사용해 두었는데..

정면과 양쪽 측면에 휘어진 나무를 써서 마치 용이 꿈틀대는 듯한 형태로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건축 자재로 사용하기 어려운 나무들을 일부러 골라서 이처럼 아름다운 정자를 지을 수 있음을 보여준 대단한 도발성이 돋보이는 건물입니다.

 

 

 

또한 호연정(浩然亭)은 건축 자재를 골라내는 일부터 자연의 흐름을 따라 주변에서 얻은 것을 그대로 이용해 지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건축물 안으로 끌어들여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려는 주인의 의중을 목수는 완벽하게 구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나무를 이용하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낸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처마밑 공포는 화려한 조각과 기단의 앞면은 화강암장대석을 만들어 기둥을 올리고,  

천정의 주두와 도리에서 이어진 부재가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며 기교를 부려 예술성과 창의력을 접목시켜 놓은듯 보여집니다. 

전체적으로 부재가 장식적이며 두 가지의 건축양식을 혼용해 쓰고 있어 건물구조에 변화가 다양해 특이함을 보여줍니다.

 

 

 

호연정(浩然亭)의 주인 주이(周怡)의 아호 "이요당(二樂堂)"은,

지자요수(知者樂水),인자요산(仁者樂山) 에서 인용한 것이라 하는데,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知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니

知 者 動     仁 者 靜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사람은 정적이며

知 者 樂     仁 者 水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즐기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즉, 지혜로운 사람과 어진 사람을 물과 산에 견주어 설명한것 입니다.

 

 

 

정자 주변에 주이(周怡)가 손수 심었다는 큰 나무들은 자연과 함께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겠다는 그의 뜻을 보여줍니다.

앞뜰을 통해 내다보이는 낙동강 지류 황강의 풍경은 그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워나감에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풍경을 보여주며,

자연에 묻혀 살아가려 했던 옛 선비의 뜻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자재로 비범한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그 가운데에 가장 무난한 나무를 심었던 옛 사람의 심미안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정자의 뒷면은 창을 내어 두었고 자연기단석위에 정자를 올렸으며

뒷뜰에도  넉넉한 공간이 있어 나무를 심어 가꾸었습니다.

 

 

 

정자앞 왼쪽에 있는 이요당(二樂堂) 주이(周怡)의 비각(碑閣)으로,

조선중기의 문신 주이(周怡, 1515~1564)의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사안(士安). 호는 이요당(二樂堂)으로,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서장관으로 중국 연경에 가서,

정도(正道)가 용납되지 못하는 현실을 분송(盆松)에 비유한 시를 지어 명성을 떨쳤다고 하며,

성균관 학정·전적을 거쳐 낭관을 지냈고, 춘추관 기주관,·예안현감을 거쳐 강원도·평안도·충청도 등의 도사를 역임하였는데,

그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조정에서 여러 차례 교리로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이요당(二樂堂) 주이(周怡)의 비(碑) 이며,

당숙(堂叔)인 주세붕과 퇴계 이황과도  교류를 하였다고 전해져 오며,

당숙인 주세붕이 어릴적부터 총명했던 주이를 무릎위에 앉혀서 "네가 장차 우리 집안의 가둥이다"라고 하였다고 전합니다.

퇴계 이황이 신재집(愼齊集)을 교정하다가 잘못된것이 있으면 제자를 시켜 "글 가운데 적당하지 않는 부분이 있거든,

예안공(禮安公,이요당 주이를 일컬음)과 상의하여 처리하라"고 하였다 하니 이요당의 뛰어난 학식을 가늠할수가 있습니다.

 

 

 

호연정 곁에있는 세덕사(世德祠)로 별도의 담장을 두른 모습입니다.

 

 

 

세덕사(世德祠) 담장앞에도 노거수 배롱나무의 모습을 볼수가 있고..

 

 

 

세덕사(世德祠)는 조상의 위패를 모셔 놓은 사당입니다.

 

 

 

호연정(浩然亭)의 뒤편에도 별도의 담장을 두른 영모사(永慕祠)가 있으며,

 

 

 

영모사(永慕祠)는 상주 주씨 시조의 위패를 모셔 놓은 사당 입니다.

 

 

 

호연정(浩然亭)에서 중문인 협문을 넘으면 관리사인 돈목사(敦睦舍)가 있으며,

 

 

 

돈목사(敦睦舍)의 현판으로,

돈목사(敦睦舍)는 종훈 중 하나인 돈목단결(敦睦團結)에 따서 지은 이름 입니다.

 

 

 

호연정 서쪽 돈목사(敦睦舍) 뒤쪽에는 추원재(追遠齋)가 있어,

 

 

 

추원재(追遠齋)는 종훈(宗訓)의 추원보본(追遠報本)에서 따온 이름으로.

추원보본(追遠報本)은 "조상의 덕을 추모(追慕)하여 제사를 지내고,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恩惠)를 갚는다" 란 의미 입니다.

 

 

 

추원재(追遠齋)를 돌아보고 호연정(浩然亭)으로 되돌아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정자는 협소한 계곡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경우가 많은데,

호연정(浩然亭)은 먼곳을 조망할수 있는 누각(樓閣)처럼 경관을 넓게 볼수 있는 곳에 자리해 있느데,

이를 통해 이요당 주이(周怡)의 자연관을 볼 수 있으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른다"는 명칭과도 잘 어울리는 곳이라 할수있습니다.

 

 

 

아름답고 빼어난 멋의 정자 건축물과 여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오를 배롱나무꽃의 향연..

배롱나무꽃이 만발하는 한여름에 다시 찾고싶은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정자 합천 호연정(浩然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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