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절을 앞두고 대구로 내려온 김에,

잠시 시간을 내어  경북 고령의 정자 "벽송정(碧松亭)"을 찾았습니다.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에 있는 벽송정(碧松亭)으로,

고령의 쌍림지역은 오래전부터 딸기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정자로 향하는 계단옆에는 용도를 알수없는 작은 수문이 있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알수는 없으나 겨울임에도 물을 쏟아내고 있고..

 

 

 

수문아래의 웅덩이에는 예쁜 얼음꽃이 피어났습니다.

 

 

 

벽송정(碧松亭)은 임진왜란 후,

이곳 유림들이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정신을 기리고 유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로 알려져 있으며,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벽송정(碧松亭)은 신촌리 마을 뒷산인 학산 기슭에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솟을 외문인 일각문을 들어서면 경사진 면에 축대가 있고 돌계단이 놓여져 있으며 벽송정의 현판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벽송정 규모는 소로수장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2단으로 축조된 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집으로,

평면은 6칸 규모의 넓은 마루로 구성되어있으며, 온돌방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마루의 4면은 모두 개방되어 있으며 바닥은 우물마루를 놓았습니다.

정자의 구조는 5량가의 초익공계로 막돌초석 위에 모두 두리기둥을 세워 상부구조를 받게 했으며 창방과 도리 사이에는 화반을 끼워 장식하였는데,

호남과 가까운 경북 서부지역의 마루 중심의 정자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벽송정(碧松亭)은 최치원이 가야산 해인사에 기거하면서 자주 찾았다고 전해 오고있어 그오랜 역사를 짐작할수 있습니다.

 

 

 

벽송정(碧松亭)에는 2개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정자로 오르면 바로 보이는 바깥쪽의 현판의 모습이며,

 

 

 

안쪽의 마루에 보이는 벽송정(碧松亭)의 또다른 현판 입니다.

 

 

 

마루위에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시판(詩板)이 편액되어 있고,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詩板(시판)도 편액 되어 있는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제일강산정(第一江山亭) 정자, 달성의 이노정(二老亭)"에서 소개가 되었던 영남 사림파의 핵심 인물들로 조선의 역사에 큰영향을 끼친 인물들 입니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한탄하며 즐겨찾았던 정자로,

벽송정(碧松亭) 에서는 고운 최치원의 시(詩)도 편액되어 있습니다.

 暮年歸臥松亭下   (모년귀와송정하)         늙은몸 송정아래 돌아와 누었으니

一抹伽倻望裏靑   (일말가야망이청)          바라다 뵈는 것이 푸른 가야산 뿐이로구나

 

 

 

벽송정중수기(碧松亭重修記)로 세(歲) 무오(戊午) 정월(正月) 우수절(雨水節)에,

성산(星山) 이헌주(李憲柱)가 글을 짓고, 성주(星州) 이기순(李琪淳)이 글씨를 썻다고 합니다.

정자에서 볼수있는 편액들은 오래되지 않아 보여서 도난을 우려해 모본을 올려둔듯 보입니다.

 

 

 

벽송정은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정자 안에 통일신라시대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의 시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건립 연대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벽송정은 중건후 당시 지방의 유학자들로 구성된 유림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각지의 선비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며 토론 하였던 곳이라고 합니다.

 

 

 

휘어진 나무를 올려둔 모습이 더욱 생동감있게 보여, 

멋있게 활용한 모습에서 옛선비들의 자연사상을 엿볼수가 있습니다.

 

 

 

정자의 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으로,

작은 들 너머로 묘산천과 안림천이 만나는 신촌유원지가 있으며 뒤로는 어태산 자락의 봉우리가 들어옵니다.

 

 

 

벽송정에는 신라의 최치원(崔致遠) 조선시대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등의 시문(詩文)이 남아있어,

건물의 오랜 유래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데 1920년 대홍수가 나면서 기존의 6칸 건물이었던 벽송정의 일부가 파손되어 1칸만 남게 되자,

선산김씨 문충공파 김병식의 조부가 주축이 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하며,

그 후 고령군에서 대대적인 보수를 하여 담장과 기단 등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벽송정(碧松亭)에는 고령지역 사족들로 중심이 되어 1520년대에 결성되어 500여년을 이어온 "벽송정 유계(儒契)"가 있어,

현재에도 김종직의 17세손인 김병식을 중심으로 매년 음력 4월 초 열흘날 벽송정 유계(儒契)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계원들은 150명 정도이며 과거에는 모임을 통해 한시를 짓기도 했으나 현재는 하지 않는다고 하며,

 모임을 가질 때마다 벽송정 관리 및 유지 보수에 대한 논의를 하여 벽송정을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치원(崔致遠)의 소유처(所遊處) 였으며,

영남 사림의 종장 김굉필(金宏弼)과 정여창(鄭汝昌)을 찾아 볼수가 있으며,

벽송정 유계(儒契)의 전통을 500여년 이어온 고령의 정자 벽송정(碧松亭) 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