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맞아 서울 은평구의 금성당(錦城堂)을 찾았습니다.

금성당은 은평구의 구파발 지역으로 신개발지인 은평 뉴타운 인근에 있습니다.

 

금성당(錦城堂)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전통적 당집으로,

금성대군(錦城大君)을 주신(主神)으로 모신 굿당 입니다.

 

 

 

입구에서 금성당(錦城堂)의 배치를 살펴 봅니다.

 

 

 

신당인 이곳에는 샤머니즘박물관이 함께 있어서 쉽게 볼수없는 색다른 유물들을 만날수가 있습니다.

 

 

 

19세기 서울ㆍ경기지역 민간 무속신앙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민속문화재이며,

금성대군(1426~1457)의 영혼을 위무하려고 세운 굿당으로서 무신도와 각종 무구류(巫具類) 등이 잘 보존되어 있는 등,

그 희귀성과 건축사적 중요성도 대단히 높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조선후기 전형적인 신당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금성당(錦城堂)은 마을 주민들과 무당이 굿을 하는 공공시설로 지어진 것이며,

건축연대는 1880년대 초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많은 굿당들이 사라진 현 상황에서 굿당의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금성당은 매우 중요한 건축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신을 모신 신당과 굿당을 관리하는 시봉자가 생활하는 안채가 있고 신당 앞에는 아래채가 있는 330여 평의 대지에 3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二"자형의 서쪽에 익랑이 붙어있어서 신당은 ‘ㄷ’자형을 이루며 동쪽에 역 ‘ㄱ’자의 안채가 붙어있는 형상의 배치입니다.

 

 

 

 

 

"은평 역사한옥 박물관"에서 볼수있는 무신도와 각종 무구류의 모습으로,

진품은 "서울역사박물관"에 이전 보존 되었있다고 합니다.

 

 

 

금성당의 대표 유물이었던 무신도인 "금성도"는 고 만봉(萬奉) 스님의 제자인 불화작가 조영희씨가 최근 복원해두었다는데,

이곳에서는 목.금 평일에만 개방을하고 있으며 봄부터는 주말에도 볼수있다고 하나,

방문객이 많은 휴일에 개방하지 않는다니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참고로 "금성도"의 원본과,

불화작가 조영희씨가 복원해 내부에 있다는 금성도를 살펴봅니다.

 

 

 

전국의 무속신앙에서 금성대군을 신격화하였는데,

특히 서울과 경기지역의 많은 무당들이 그를 영험한 신으로 모셨는데 금성당도 그 중에 하나로,

서울에는 진관외동(구파발) 외에 망원동(노들)과 월계동(각실점)에도 금성당이 있었으나 도시개발로 인해 사라지고,

지금은 유일하게 진관외동의 금성당만이 남았습니다.

구파발에는 다시 아랫금성당과 윗금성당이 있었는데 지금의 금성당은 아랫금성당 입니다.

내부의 제단 위에는 각각의 신령님 몫으로 되어 있는 소반, 촛대, 마지그릇이 놓여 있으며 천장에는 종이 달려 있고,

천장 대들보 아래쪽에는 여러 해 묶은 명두와 함께 여러 개의 전이 붙어 있다고 하는데 볼수가 없습니다.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여섯째 아들로  단종의 숙부인 동시에 세조의 아우이기도 합니다.

수양대군(세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여러 곳에 유배를 보내는 과정에서 단종을 영주 순흥으로 옮길 때,

금성대군은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나이 32세에 사사 됐었는데 과거 영주 순흥 두렛골에서는,

금성대군의 충의를 기려 대동놀이가 매년 치러졌으며 무속신앙에서도 그를 영험한 신으로 모시며 마을 곳곳 금성당을 짓고 당굿을 행했다고 합니다.

 

 

 

금성당의 대문채를 마주하는 오른쪽의 부엌의 내부는 다행이 관리하시는 분의 배려로 볼수가 있었는데,

 

 

 

부엌의 문옆에는 무속의 기물로 보이는 토기들이 자리해있고,

 

 

 

부엌안에는 여러가지 기물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연등처럼 보이는 종이배가 보이는데 용선(龍船)으로 보입니다.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도 하며 오구굿에서 망자가 저승 갈 때 타고 가는 배를 상징하는데 대나무 가지를 이용하여 작은 배를 만들고,

오색의 종이를 오려서 붙인 다음  겉면에 용의 그림을 그려 붙였습니다.

동해안 별신굿에서는 용선을 굿하는 기간 내내 굿당에 매달아 놓고 마을사람들이 이 종이배에다 돈을 넣고 빌기도 했다고 합니다.


*주관적인 의견으로 오류가 있으면 정확한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부엌의 가마솥 두껑위에는 양초곁에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을 모신 정화수가 보이고,

 

 

 

무속의례에 사용하는 지화(紙花)외 여러가지 도구가 보이는데, 

이곳에는 "양종승" 박사가 모아 온 무신도, 신복, 부적, 점구, 제기, 명두, 악기, 촛대향로, 부채, 방울, 창검, 지화, 설경 등,

국내 무속현장에서 쓰인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짚과 새끼줄로 만든 동물로 보이는데 용도를 알수 없습니다.

 

 

 

금성당을 돌아나오면 안채가 있는데,

여염집으로 보면 사랑채로 보일수 있는 구조입니다.

 

 

 

안채는  "ㄱ"자형 구조로 굿당을 관리하던 시봉자가 기거 하던곳으로,

 

 

 

마루위에는상을 올려둔 모습도 보입니다.

 

 

 

조선시대 무악재에서 구파발에는 굿당이 많았다고 하는데,

 한양으로 들어오던 중국 사신들이 거치는 곳이 바로 구파발였는데

해로운 악을 다 없애는 의미에서 입성하기 전 굿을 올렸다고 하며 금성당은 국가가 지원하던 신당이었습니다.

이곳 구파발 금성당은 개발이 되어 아파트가 들어설때까지 굿당을 운영해온 당지기가 거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말 개성 만신들이 구파발에 집결하여 한양굿의 토대가 완성되었고,

이곳 구파발 아랫금성당에는 원래 금성님, 맹인도사, 맹인삼신마누라, 삼궁애기씨, 중불사, 창부광대씨, 별상님, 말서낭, 칠성님 두분, 용장군님,

육대신마누라, 용궁부인, 삼불제석, 부처님, 삼불사할머니 등 총 16점의 무신도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맹인도사, 맹인삼신마누라, 삼궁애기씨, 중불사, 창부광대씨, 별상님, 말서낭, 삼불사할머니 등 8점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오래전에 도난당하였는데 금성당의 본당과 하당에는 신복을 비롯하여 악기, 촛대, 잔, 칼, 명두 등 여러 귀물(鬼物)이 있다고 합니다.

 

 

 

안채의 뒤쪽으로 돌아가 보면 많은 장독들을 볼수가 있으며,

 

 

 

안채의 뒷마당을 통하여 금성당의 뒷마당까지 들어갈수 있습니다.

 

 

 

안채의 굴뚝 곁에도 장독과 무구인듯한 물품들이 보이고,

 

 

 

나이드신 어머님들이 보시면 탐내실만한 옛날 장독들도 많이 있습니다.

 

 

 

안채와 금성당의 뒷마당을 따라 길게 이어진 장독들의 모습으로,

 

 

 

금성당의 뒷마당 끝에 이르면서 크고 작은 다양하고 많은 장독들을 볼수가 있습니다.

 

 

 

금성당의 옆에도 무속에서의 부적의 형상과 조각품을 볼수가 있는데,

 

 

 

은평구에서는 매년 이곳 금성당에서"금성대군 충의제"를 개최 하고 있는데,

국태민안 금성당굿은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의 원혼을 달래고 추모하며 그의 충의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큰 굿입니다.

금성당굿은 신앙의례이지만 굿 자체의 연회성과 지역민 전체의 축제성을 지니고 있어,

주민들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치유하는 힐링의 마당으로 이끌어 나간다는 취지로 줄타기, 택견 등,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통 공연을 시작으로 ‘금성대군 충의제’와 부적만들기, 연만들기 등 다양한 문화 체험이 열린다고 합니다.

 

 

 

현대화의 영향등으로,

요즈음에 와서는 귀한 모습이 되어버린 신당과 무구들을 볼수있는 곳으로,

목,금요일에만 개방을 하여 많은이들이 볼수없는 제한이 있어 아쉬움이 컷었지만,

관리인의 도움으로 일부만이라도 볼수있어서 다행였던 곳으로,

한번쯤은 다녀 옴직한곳으로 은평구 구파발의 금성당(錦城堂)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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