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제공한 천혜의 요새로,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를 찾았습니다.

 

호로고루(瓠蘆古壘)를 들어서면,

주차장 너머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거대한 비석과 "호로고루 홍보관" 입니다.

 

 

 

"북에서온 광개토대왕릉비"로 안내 되어있는 거대한 비석으로,

서기 414년 고구려 제19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아들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로,

사면에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높이 6.39m, 너비 1.35~2m에 달하는 한국 최대의 비석으로 고구려의 성장과 발전등,

고구려의 위상을 살펴볼수있는 귀중한 비석으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 : 지금의 지안 현 퉁거우)의 동쪽인 국강상(國岡上)에 있는,

광개토왕릉 동쪽편에 세워졌으며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라는 광개토왕의 시호(諡號)를 줄여서 "호태왕비" 라고도 합니다.

이 비석은 2003년 남북평화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에서 제작해 남한에서 전시된 실물 크기 비석 입니다.

 

 

 

비석 곁에는 2016년에 개관한 호로고루 홍보관으로,

 

 

 

홍보관에서는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와 배경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잘알지 못했던 고구려의 한부분을 알수 있습니다.

 

 

 

호리병에 견주어 "호로고루"에 대한 설명을 볼수있고,

 

 

 

고구려의 유물로 우리가 흔이 "절구"로 알고있는 "돌확"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곳의 돌확은 문을 달아 열고 닫는 역활을 하는 용도로 쓰여졌슴을 알수 있습니다.

 

 

 

옛날 호로고루(瓠蘆古壘)를 지켯을 고구려 군사의 모습도 볼수 있어서,

 

 

 

홍보관은 고구려유적인 연천 호로고루를 통해 고구려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임진강의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와 함께 조성이 되었는데,

호로고루를 돌아보기전에 살펴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적 제 467호로 지정된 호로고루는 자미성(紫微城), 미성(眉城), 이잔미성(二殘眉城)으로도 불리우며,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는 임진강에 접한 현무암 천연절벽 위에 있는 호로고루는 남한지역에 얼마 되지 않는 고구려 유적으로서,

발견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는데 이 성은 고구려가 남진을 하기위해 육로로 내려오는 최단 코스로 남진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으며,

성을 접해 흐르는 임진강과 주변의 풍광이 어우러져 훌륭한 면모가 보이는곳 입니다.

 

 

 

안내문에서 볼수있는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의 모습으로,

호로고루는 얕은 구릉 위에 축조된 성으로 삼각형 모양을 띠고 있으며 전체 둘레는 401m 입니다.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가 위치한 지역은 삼국시대에 북진과 남진을 하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에 걸친 삼국의 전투기록이 남아 있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성벽, 목책유구, 지상건물터, 지하식 벽체건물터, 우물터 등이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 출토되었는데 특히 고구려 유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임진강 북안에 자리한 연천 호로고루는,

현무암 대지 위에 구축되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호로고루는 독특한 고구려 축성기술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지상성벽인 동벽을 구축함에 있어 성벽의 기저부와 중간부분은 판축(版築)을 하고,

성벽 내외부는 석축으로 마감하였는데 체성벽 내부에서 기둥홈이 있는 내벽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목주(木柱)를 활용하여 성벽 내부의 석축을 쌓은 후 체성벽을 덧붙여 쌓았으며,

체성벽 바깥쪽에는 보축성벽을 쌓은 후 보강토를 쌓은 복잡한 공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토성과 석성의 장점을 결합한 축성공법은 중국 집안의 국내성(國內城)과 평양의 대성산성(大城山城) 및 남한의 고구려보루에서도 확인되는,

고구려의 특징적인 축성공법으로 기둥홈은 평양의 대성산성과 연천 당포성에서도 확인되었는데,

호로고루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축성공법과 관련된 구조라는 것이 명확하게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성벽은 지반을 평탄하게 다진 뒤 1m 정도 높이로 흙을 다진 위에 성벽을 쌓아 올렸는데,

성돌의 재료는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으로 약 1.8m 정도 높이로 쌓았으며,

성벽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위해 외벽 아랫부분에 한 겹 더 덧대어 쌓은 보축성벽 기법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 안쪽에서 보이는 호로고루(瓠蘆古壘)의 모습이며,

 

 

 

호로고루로 흘러드는 임진강의 상류 방향의 모습이며,

 

 

 

호로고루에서 마주한 임진강의 모습으로,

얕아 보이는 강 건너에는 군사 훈련을 하고 있는듯한 모습도 보입니다. 

 

 

 

임진강의 북안에는 주요 길목마다 고구려성이 구축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호로고루는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는 감조구간(減潮區間)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배를 타지 않고 임진강을 도강할 수 있는 최초의 여울목에 접하여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되어,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호로하 부근에서 벌어진 고구려와 신라, 신라와 당나라의 전투기록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슴을 볼수 있고

조선시대에도 이 지역은 호로탄(瓠蘆灘)이라 하여 장단을 통해 개성으로 들어가는 주요 길목이었으며,

호로고루에는 조선시대 중기까지 장단군의 치소(治所)가 있었던 중요한 곳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호로고루를 천천이 한바퀴 돌아보고,

 

 

 

성벽 위로 올라가 봅니다.

 

 

 

호로고루의 집수시설이 있던곳의 모습으로,

이곳에서는 고구려 기와가 다량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인들이 만든 기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당시에는 기와가 왕궁이나 사찰 등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한 건물에만 사용되었던 건축자재였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호로고루는 다른 성들보다 그 위계가 매우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성 안에서 출토되는 와당, 토기, 다양한 동물 뼈들을 통해,

이 유적이 단순한 군사적 기능을 뛰어 넘어 당시 고구려인들의 정신적 부분까지도 다스리는 성스런 장소 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위에 오르면 장남면 소재지인 원당리쪽 까지도 멀리 조망이 되며,

 

 

 

삼각형 모양의 지형을 만들어준,

장남면 소재지 쪽에서 시작하여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샛강이 지금은 둑으로 막아둔 모습입니다.

 

 

 

성벽에서 내려와 임진강변을 거닐어 봅니다.

 

 

 

여울로 되어있어 물이 깊지않아,

여름철에는 놀이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곳으로도 여겨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몇 안되는 고구려의 유적지로,

자연이 제공한 천혜의 요새로 고구려의 최전방 전선였던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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