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문화재를 찾아,

번동의 "창녕위궁재사(昌寧尉宮齋舍)"를 찾았습니다.

 

창녕위궁재사(昌寧尉宮齋舍)는,

번동의 "북서울 꿈의 숲" 공원내에 있어서 위치를 찾기에도 편하며 주차에도 수월하며,

공원내 에서는 "달빛 품은 월영지"와, 북서울을 한눈에 내려다 볼수있는 전망대가 있으며 아트센터와 미술관까지 있어서 돌아볼만 합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인 창녕위궁재사(昌寧尉宮齋舍)의 입구로,

이곳은 재사로서 뿐만 아니라 구한말 애국지사의 숭고한 영혼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재사(齋舍)란 묘소나 사묘 옆에 지은 집으로 재사는 묘소와 가까운 산중에 건립하며,

또는 마을과 떨어져 독립적으로 건립하는데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묘 아래에 건립된 재실이 많았으며,

영남지방에서 가장 많이 볼수있는 건축물 이기도 합니다.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 40호 창녕위궁재사(昌寧尉宮齋舍)입니다.

등록문화재(登錄文化財)란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을 위한 가치가 커 지정ㆍ관리하는 문화재를 이름 입니다.

 

 

 

재사(齋舍)의 마당 앞에는 후문격인 협문으로 되어 있으며,

정문인 삼문은 왼쪽으로 비켜서 있습니다.

 

 

 

마당 한켠에서 볼수있는 석조물들로,

옛날 이지역이 궁의 관리나 내시들의 무덤들이 산재해 있었다고 하니 그와 관련된 유물들로 보입니다.

 

 

 

재사를 들어서면 건물의 성격과 부합될 수 있도록 대나무숲을 조성하여,

전통적 분위기를 연출해두어 여름과 가을에는 뛰어난 경관을 보여 줍니다.

 

 

 

이곳은 원래 인조(仁祖)때 반정공신으로 영의정을 지난 신경진(1575~1642)의 별장이었으며,

순조때 이요헌(李堯憲)의 소유였던곳으로 "복온공주" 묘소로 정하여진 이후 재실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마당의 오른쪽으로 사랑채 쪽으로 솟을 삼문의 문간채가 보이고..

 

 

 

사랑채의 쪽마루에 앉아 잠시 쉬어 갑니다.

 

 

 

문살의 아랫부분을 투명창으로 내어 앉아서 바깥을 볼수있게한 모습이 보이고..

 

 

 

사랑채의 아궁이는 취사보다는 불을 넣기위한 구조 입니다.

 

 

 

이곳의 주인 김병주는 본관이 안동이고, 자는 정구(定九)이며, 시호는 효정공(孝定公)입니다.

\1830년(순조 30)에 부마가 되어 창녕위에 봉해졌으나 복온공주가 가례 이후 2년도 채 안되어 세상을 떠났는데,

 

자식이 없자 형 김병교(金炳喬)의 아들인 김도균(金道均)을 후사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김도균(金道均) 역시 자식이 없어서 제사는 손자로 승중(承重)한 김석진(金奭鎭, 1843~1910)에 의해서 행하게 되었습니다. 

김석진(金奭鎭)은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官)을 지냈는데,

1907년(고종 44)에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뒤 이곳으로 들어와 거주하며 왕실 친적으로서 전국 유생들의 뜻을 모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뒤 1910년 한일합병후 일제가 주는 남작 작위를 거절하고는 이곳에서 순국자결 하였습니다.

 

 

 

1832년에 복온공주가 세상을 떠난 뒤 무덤이 이곳 주변에 자리하였고,

이어서 김병주의 무덤도 위치하면서 재사가 건립되었으나 그 뒤 무덤은 용인으로 이장되어,

김병주의 재사로 건립된 부분을 안채로 삼았고 사랑채는 다른 곳에서 옮겨 세운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6·25전쟁으로 재사와 행랑이 파괴되어 1955년에 다시 지었습니다.

 

 

 

사랑채의 뒷마당을 통하여 안채로 들어가 봅니다.

 

 

 

재사(齋舍)인 안채의 모습으로,

현재의 건물은 재실인 안채, 별채인 사랑채, 대문간채 등이 남서향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안채 부엌 남쪽의 대청마루는 이전에 재실로 사용된 공간으로,

김석진, 김영한(金?漢), 김윤동, 김문현 등 4대조의 신위를 봉안하였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원래의 모습과 많이 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 말기에 건립된 궁집의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 입니다.

 

 

 

너른 대청을 가운데 두고,

 

 

 

왼쪽으로는 두칸의 방을 들였으며..

 

 

 

마루의 오른쪽엔 한칸반의 방이 들어선 모습이 보입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ㄱ"자형 구조로 되어 있는데,

5개의 도리로 지붕 가구를 구성한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집의 뒷산을 벽오산(碧梧山)이라고 하는데,

조선 철종(哲宗)의 왕비 철인황후(哲仁皇后)가 김석진 선생에게 "벽오산(碧梧山)"을 친필로 하사하여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재사(齋舍)인 안채의 뒷쪽으로 나있는 문 아래에는 길게 쪽마루가 나있어 눈길을 잡습니다.


복온공주와 부마인 김병주의 재사 였으나,

구한말 김석진(金奭鎭)의 순국자결한 곳으로 숭고함이 남아있는,

서울 번동의 문화재 창녕위궁재사(昌寧尉宮齋舍)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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