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 장마가 기승을 부리는 7월에 이른아침에 큰비를 보고난후,

경기도 시흥의 관곡지(官谷池)를 찾았습니다.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 관곡지(官谷池)는 그리 크지 않은 연지이며,

고구려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 강이식(姜以式) 장군을 시조로 하는 진주 강씨(晉州 姜氏) 통정공파(通亭公派)의 인물인,

강희맹(姜希孟)과 관련있는 유적 이기도 합니다.

 

 

 

연성문화제와 관련해서인지, 항상 개방을 해두는지는 알수없으나..

관곡지 일원은 일부 개방이 되어 들어갈수 있어 오래지 않아 보이는 기념비가 먼저 보이고,

 

 

 

잘꾸며진 정원에는 여러점의 조각품들도 보입니다.

 

 

 

안동권씨화천군파의 재사(齋舍)로 보이는데 설명문이 없어 알수 없으며,

재사(齋舍)등 여러 건물의 문은 열려 있으나 외부인은 들어갈수 없습니다.

 

 

 

강희맹(1424(세종 6)∼1483(성종 14))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뛰어난 문장가이며 공정한 정치를 하여 세종과 성종 때 모두 총애를 받았던 인물로,

 1447년(세종 29) 18세에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했고 1468년 남이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진산군에 봉해졌습니다.

1473년 병조판서가 되고 1482년에는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부지런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공정한 정치를 했고 박학다식하다는 말을 들었으나,

자기 공을 자랑한다는 비방도 들었습니다.

소나무 및 대나무 그림과 산수화를 잘 그렸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 일본의 오쿠라 문화재단에 <독조도>가 남아 있습니다.

 신숙주 등과 함께 <세조실록>, <예종실록>을 편찬했고 세조 때 <경국대전>의 편찬과 ,

사서삼경의 언해, 성종 때는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등의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저서로는 농업에 관한 <금양잡록>, 해학을 모은 <촌담해이> 등이 전하고 있습니다.

 

 

 

관곡지를 관리하는 권만형(權曼衡:강희맹의 사위) 후손들과  관련된 건물들로 보이는데,

대부분 문이 걸려있어 내부는 들여다 볼수가 없습니다.

 

 

 

재사를 지나면 그리 크지않은 정자가 보이는데 은휴정(恩休亭) 입니다.

정조 21년(1797)에는 정조가 수원 현륭원(顯隆園)을 행차하는 길에,

 안산 관아(安山官衙, 안산시 수암동 256)에 유숙할 때 안산관내의 선비를 대상으로 과거를 실시하면서,

 어제(御題)로 시제(詩題)를 <강희맹이 사신으로 중국 남경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당에서 붉은 연꽃씨를 채취해 왔는데

그로부터 안산군의 별호를 ‘연성’ 이라고 했다>로 정할 만큼 관곡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은휴정(恩休亭)의 현판으로,

"임금의 은혜로 휴식을 얻게 되다" 라는 의미로 정조임금과 관련 있는곳임을 일러줍니다.

 

 

 

정사각형의 정자인 은휴정(恩休亭)에는 오르지 못하게 되어있어, 

천정의 구조만 고개 내밀어 들여다 보고,

 

 

 

정자 아래에 있는 관곡지(官谷池)로 내려가 봅니다. 

강희맹(姜希孟) 은 고위 관직에 있으면서 농업의 발전을 연구하였고,

세조 9년(1463) 중추원부사로 진헌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남경에 있는 전당지(錢塘池)에 들러,

국내에 없었던 전당홍(錢塘紅) 연꽃씨를 가지고 귀국하여 이곳에 처음 심었는데, 

꽃의 색은 희고 꽃잎은 뾰족하며 꽃의 끝부분은 담홍색을 띠는 연꽃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3년 뒤인 세조 12년(1466)부터 안산군의 별호를 연성(蓮城), 즉 "연꽃의 고을"이라 불렀습니다.

선비사상인 "전원지방"을 상징하고 있는 사각에 하나의 섬이있는 이 연못은,

강희맹 선생의 사위인 권만형(사헌부감찰) 가(家)에서 대대로 관리되어 오고 있으며,

옛 지명과 연계하여 '관곡지'로 불리며 55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연못 입니다.

 

 

 


관곡지(官谷池)는 강희맹의 사위인 권만형의 집 가에 있어,

대대로 권만형의 후손 소유가 되어 관리 되어오고 있으며,

현재 시흥관내의 연성초등학교, 연성중학교 등 교명과 연성동의 동명 및 시흥시의 문화제 명칭인 《연성문화제》라는 이름은 이 못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관곡지의 규모는 가로 23m, 세로 18.5m의 크기로, 

이 연못은 조선 전기의 농학자인 강희맹이 세조 9년 명나라에 다녀와 중국 남경에 있는 전당지에서 연꽃 씨를 채취해,

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관곡에 있는 연못에 씨를 심어 재배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안산군의 별호를 1466년 세조 12년부터 ‘연성(蓮城)’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관곡지의 연꽃은 다른 연꽃과는 달리 꽃은 색은 희고, 꽃잎은 뾰족한 담홍색을 지니고 있는게 특징으로,

아래에 있는 연꽃단지보다 꽃이 많이 보이지 않아 이곳은 개화가 늦어 보입니다.

 

 

 

그 뒤 관리를 하지않아  수초(水草)가 성(盛)하여 못(池)이 폐(廢)해지자,

헌종 10년(1844)에 안산군수에 부임한 권용정(權用正)이 이듬해 봄에 하중동의 장정들을 동원하여 못을 파냈는데,

여름이 되자 연꽃의 잎이 중국 전당의 것과 같이 두 줄기가 자라났다고 하며,

이에 못을 관리하기 위하여 하중동 주민 중에서 여섯 명의 연지기(蓮直)을 두고 여섯 명 중 혹 누락자가 생기면 즉시 하중동 주민으로 대체했는데,

이들 연지기에는 각종의 노역(勞役), 부역(賦役), 포세(布稅), 양곡세(糧穀稅)를 제외시켜 주고 오직 못만을 관리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은휴정(恩休亭)에는 정조대왕이 참석하고 초시를 시행한 구전이 전해오며,

원래 안동권씨 화천군파 화릉군 묘소위에 있었으나 멸실되어 현재 150여 미터 아래에 재실을 신축하면서 새로 건립하였습니다.

 

 

 

은휴정(恩休亭)과 관곡지(官谷池) 사이를 지나면,

시흥의 연꽃테마파크를 조망할수있는 전망대가 있어서..

 

 

 

경기도 시흥시가 2017년 7월 22일(토)부터 23일(일)까지 이곳 하중동 연꽃테마파크 일원에서 연성문화제를 개최하였는데,

시흥시가 주최하고 시흥문화원이 주관해 온 연성문화제는 올해로 26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지름 15~20cm의 흰색과 연분홍색 꽃이 4만여㎡ 규모의 연꽃단지에 가득 피어 오른 모습이 보입니다.

 

 

 

관곡지를 경계하는 협문을 나서 연꽃 테마파크로 들어갑니다.

 

 

 

연밭을 지나다 보면 호조벌 디딜방아의 모습도 보이고..

 

 

 

이곳의 연은 잎이 크고 긴줄기가 특징인데,

연꽃의 꽃말은 "순결" 또는 "청순한 마음"이라 하며,

꽃잎을 떨구고  연밥을 남겨 씨앗이 영글고 나면 또다른 멋을 지닌 존재감으로 남습니다. 

 

 

 

참고로 연과 수련의 차이점을 살펴봅니다. 

수련과 연꽃은 같은 연못에서 자랄 뿐 식물의 모양과 생장이 근본적으로 다른데,

연(蓮 lotus)은 잎과 꽃이 수면에서 30센티-1미터 이상 올라와서 자라며 꽃이 진 뒤에는 벌집처럼 생긴 연밥속에 5-20 여개의 씨앗을 맺고,

땅속줄기는 1년에 5 미터이상 자라며 끝에는 연근이 형성되어 식용으로 이용되며 묵은 뿌리는 흙이되는 1년생식물이고,

수련(睡蓮 waterlily)은 잎과 꽃이 거의 수면에 붙어서 자라고 꽃을 피우며 아침에 꽃이 피고 오후에는 수면을 한다고 수련(睡蓮)이라고 부르는데.

씨앗은 물속에서 익으며 땅속줄기는 1년에 50센티 정도 자라며 땅속줄기는 매년3-7개정도의 새싹으로 번식을 합니다.

 

 

 

시흥 하중동 "연꽃 테마파크" 한쪽에는 수련의 모습도 볼수 있는데, 

수련은 연꽃에 비해 잎이적고 수면 가까이에 피는 특징이 있습니다.

 

 

 

도로와 연꽃단지 사이의 법면에는 다양한 야생화와 약초등을 심어놓아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 하는데,

그증에 "노랑숙근 코스모스"의 모습입니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관곡지(官谷池)와 은휴정(恩休亭)의 전당홍(錢塘紅)연꽃과 ,

연꽃단지에서 볼수있는 무안 백련, 향백련, 홍련 등 여러 종의 연꽃의 향연에  20여종의 다양한 수련,

도로의 법면을 활용해 기꾸어 놓은 야생화와 약초등을 다양하게 즐길수 있어 추천할만한 곳으로 남은,

경기도 시흥의 관곡지(官谷池)와 연꽃테마파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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