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 암굴에 자리한 특이한 누각으로,

전북에 남아있는 정자 중에 가장 으뜸이라 평가받고 있는,

진안의 "수선루(睡仙樓)를 찾았습니다.

 

수선루(睡仙樓)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으로,

마령면 강정리 월운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약 1㎞ 남짓 거슬러 올라간 천변의 산기슭 암굴에 위치해 있습니다.

 

 

 

수선루(睡仙樓)로 오르는 초입에는,

구산서원과 구산사가 자리해 있는데 구산사를 먼저 들러봅니다.

 

 

 

구산사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구산사의 현판으로 송재성님의 글씨입니다.

 

 

 

구산사는 단종조에 예판을 지낸 퇴휴제 송보산,

세종때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단종복위에 가담했던 백촌 김문기,

그리고 월계 송림.. 세분을 배향하는곳이라 합니다. 

 

 

 

구산사 옆에는 세운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 비석과 무덤의 모습이 보입니다.

 

 

 

구산사앞을 지나 수선루(睡仙樓)로 오르는 길을 잡습니다.

 

 

 

돌계단의 모습이 보이고  바위틈에 숨은듯 자리한 수선루(睡仙樓)가 있습니다.

 

 

 

수선루는 1686년(숙종 12)에 연안 송씨 4형제 송진유(宋眞儒), 송명유(宋明儒), 송철유(宋哲儒), 송서유(宋瑞儒) 등이 건립하였습니다.

1884년(고종 21)에 후손 송석노(宋錫魯)가 중수하였고,

1888년(고종 25) 연재 송병선(宋秉璿) 등이 다시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6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정자는 자연암굴을 이용하여 이층으로 세워져 있고,

이층 중앙에 수선루(睡仙樓)의 현판이 보이고 1층의 문을 통하여 들어갈수있게 되어 있습니다.

 

 

돌계단을 반원으로 돌아서 올라가면 수선루(睡仙樓)에 이르게 됩니다.

 

 

 

수선루(睡仙樓) 입니다.

자연 암반 속에 지은 2층의 누정 건물로 맞배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전통 기와를 사용한 건물입니다.

정면은 전통 기와를 사용하였으나 배면의 지붕은 석판을 사용하였고,

정면은 겹처마이나 배면은 홑처마 지붕으로 지형에 맞추어 들였슴을 알수 있습니다. 

정면의 향 우측에 출입구가 있고 가운데 칸이 마루 칸이며 왼쪽에는 방을 들였으며 왼쪽 방의 아궁이는 건물 뒤편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행이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넓지않은 공간에 앞에는 암벽이 막아 서있고,

왼쪽으로는 마루로 오르는 계단이 보입니다.

 

 

 

마루로 오르는 계단옆 암벽의  아랫쪽에는..

 

 

 

돌틈 사이에 샘이 있어 갈증을 달랠수도 있습니다.

 

 

 

샘의 윗쪽에서는 바위에 송씨수선루(宋氏睡仙樓) 라고 붉게 암각된 글씨도 보입니다.

 

 

 

누각의 마루의 모습이 보이고..

 

 

 

마루로 오르지 않고 위로 올라오니 공간은 좁아지고,

수선루(睡仙樓) 맞배 지붕의 모습이 발아래 있습니다.

 

 

 

수선루(睡仙樓)의 마루에 오릅니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아담한 규모의 마루로,

여러명이 앉아서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을 정도 입니다.

 

 

 

수선루(睡仙樓)의 현판으로,

잠잘 수(睡), 신선 선(仙)의 글로 현판을 올렸습니다.

 

 

 

수선루(睡仙樓)의 명칭은,

목사 최계옹(崔啓翁)이 연안 송씨 네 형제가 갈건 포의(葛巾布衣)하며 우애가 두텁고 학문이 높았다고 하며,

80세가 넘어서도 조석으로 이 정자를 오르내리며 바둑도 두고 시도 읊는 풍류함이,

진나라 말년에 전란을 피하여 협서성의 상산(商山)에 은거한 4호(四晧)의 네 신선이 이라는,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용리 선생(用里先生), 기리수(綺里秀) 등의 기상과 같다 하여 수선루(睡仙樓)라 명명했다고 전해집니다.

 

 

 

단청은 새롭게 칠해졌으며 연목에는 연화머리초, 연목마구리는 3태극, 부연은 녹화머리초를 사용하였고 주두는 녹화 결련금으로 베풀었습니다.

 대들보는 연화머리초에 인휘로 구성되었고 머리초와 머리초 사이의 계풍에는 금문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번안하여 올렸습을 볼수 있습니다.

 

 

 

마루에서 단을 하나두고 자리해있는 방을 들여다 봅니다.

 

 

 

어느정자에서 볼수있듯 마루쪽의 문은 걸쇠로 문이 올려져 있고..

 

 

 

방에는 벽을 돌아가며 벽면에는 산수화, 화조화, 화병화, 백학, 호랑이 물고기, 매화 등의 민화의 모습으로 채워져 있슴을 볼수있습니다.

 

 

 

누 마루로 다시 내려옵니다.

 

 

 

마루끝에는 난간을 두지 않은 부분이 있어 정자의 또다른 공간으로의 통로를 위해 비워둔 모습이 보이고,

 

 

 

마주한 암벽에는,

붓으로 쓴듯 한자가 씌여져 있으나,

따로이 설명이 없어 알아볼수는 없습니다.

 

 

 

난간대 너머의 모습으로 이곳은 또다른 활용 공간으로 사용한듯 보여집니다.

 

 

 

수선루(睡仙樓)중수기 편액이 보이고,

편액 윗쪽으로 작은 그림이 있어 대들보 위쪽의 왼쪽 벽면에는 흰 수염을 가진 선비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과 함께,

4명의 인물이 보이는데 연안 송씨 4형제를 그린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마루에는 시판과 중수기등 7여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송원의 행초서(行草書)편액과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의 예서편액 또 송원의 수선루(睡僊樓) 행서 편액 등 3점이 있으며,

송내희(宋來熙) 등이 쓴 누정기(樓亭記) 편액 등은 개성이 독특하여 서체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한글로 풀어놓은 중수기가 있어 수선루(睡仙樓)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마루에서 앞을 내어다 봅니다.

 

 

 

세월의 흐름탓인지 강은 조금 멀어져 있으나,

봄에는 봄바람이 좋고 전망이 좋아 봄의 생동을 빠짐없이 볼 수 있다 하며,

여름에는 바람이 시원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제격이며 겨울에는 눈 덮인 산천이 일품으로..

수선루(睡仙樓)에서 내려다보면 섬진강 줄기가 눈에 들어오며,

아늑한 자연에 감싸인 수선루는 위층과 아래층이 엇비스듬하게 맞물린 자유로운 모습에서 전북지역 최고의 정자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자연을 그스르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여 자리한 모습을,

수선루(睡仙樓)에서 볼수 있습니다.

 

 

 

기둥의 장식이나 결구의 모습등에서 조선후기의 양식임을 볼수가 있어,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졌으나 고종때 송석노, 송병선이 중수하면서 조선후기의 양식으로 고쳐졌음을 알수있습니다.

 

 

 

정자의 방문을 들어올린 걸쇠의 모습으로,

여름의 시원함을 문을들어 올림으로 극대화 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볼수있습니다.

 

 

 

마루에서 내려와 수선루(睡仙樓)에서 나옵니다.

 

 

 

수선루(睡仙樓)를 나와 내려오면서,

무엇인가에 이끌린듯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속에서 그곳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연과 더불어,

옛 송씨 4형제가 도의를 연마하며 즐겼던 곳으로,

전북 진안의 빼어난 정자 문화재 수선루(睡仙樓)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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