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내륙의 정자 문화재 탐방길에서, 

진안을 기점으로 - 장수 - 임실 - 남원으로 이르는 코스로 길을 잡아 ,

17번 국도를 따라 전주에서 남원 방향으로 가던중 우연하게 찾게된 행운의 "육우정(六愚亭)" 입니다.

 

육우정(六愚亭)은 임실군 성수면 신촌마을의 입구 고충교 다리를 건너 앞산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지정 문화재이다 보니 문화재청이나 임실군청의 홈페이지 에서도 자료를 찾을수 없어,

애초의 방문 코스에 들어있지 않았던 곳여서 반가움이 더욱 큽니다.

 

 

 

임실의 정자 육우정(六愚亭)으로,

일명 봉산에 건립하여 이명으로 봉남정(鳳南亭)이라고도 불렀는데,

1919년 이 지역에 사는 우곡 심진표(愚谷 沈鎭杓), 우석 홍종익(愚石 洪鍾翼), 우촌 양기형(愚村 梁奇衡), 우계 노학규, 우당 이광의(愚堂 李光儀),

우천 송응진(愚泉 宋應溱)  여섯 명이 뜻을 같이하여 "해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든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는,

세한(歲寒)을 기약하며 건립하였으며 이들 6인이 이곳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며 풍류를 즐기기도 하고 면내의 중대사를 의논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이들 여섯 인물의 호는 한자로 모두 어리석을 우자(愚字)를 넣어 지었기에 육우정이라 이름한 것으로,

어리석다는 말은 정말 어리석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겸손하게 표현으로 호남 정자에서 흔이 볼수있는 표현입니다.

 

 

 

육우정(六愚亭)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암벽에는,

정자의 주인인 육우의 여섯 사람의 호와 이름을 새긴 암각서가 있어  3사람씩 두 곳에 나누어 예서체로 새겼는데,

정자 아래쪽에 우곡 심진표, 우석 홍종익, 우촌 양기형의 이름을 새겼고,

정자 입구 쪽에서 우계 노학규, 우당 이광의, 우천 송응진의 암각된 이름을 볼수 있습니다.

 

 

 


또한 정자의 주초석 아래 연못 가까운 곳에도 해서체로 새겨진 "육우정(六愚亭)"의 각자를 볼수있는데, 

각자의 시기는 기록이 없으나 정자의 건립시기와 비슷할것으로 추정됩니다.

 

 

 

정자의 옆면에 올려져있는 육우정(六愚亭)의 현판이며,

 

 

 

계원(桂苑)  민윤식(閔胤植)이 쓴 세전충효(世傳忠孝)의 현판도 함께 보입니다.

 

 

 

정자는 정면 3칸 축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의 구조로,

기둥은 자연 암반위에 높이를 맞추어 자연 그대로를 활용한듯 하고,

 

 

 

마루로 오르면 호남지방에서 많이 볼수있는 양식인,

3면에 마루를 두고 가운데 온돌방을 들인 모습으로 비바람을 피하며 글을 읽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방의 내부에는 여섯 인물의 후인들이 회합을 가지는듯 탁자의 모습이 보이고,

 

 

 

뒷벽에는 겨울을 대비한듯 격실이 자리해 있으며,

물건을 넣어두는 아랫칸 과 윗칸의 모습이 보이며  윗칸의 문은 보수가 필요해 보입니다.

 

 

 

마루위의 모습으로 팔작지붕에서 볼수있는 우물반자가 들어오고 여러 편액이 올려져 있습니다.

 

 

 

정자의 마루위에는 양기형(梁奇衡), 이광의(李光儀), 이기종, 송응주, 이기기,의 육우정기(六愚亭記)와,

홍종익(洪鍾翼)의 봉남정서(鳳南亭書), 심종균의 상량문(上樑文)과  반사원의가 올려져 있으며, 

박종열, 이한기의 차문우형운, 등 여러 편액과 시판을 볼수 있습니다.

 

 

 

마루에서 봉황소(鳳凰沼)로 이름지어진 연못과 주변풍광을 내어다 봅니다.

 

 

 

뒤쪽으로 병풍을 두른 듯한 바위가 있고, 바로 앞에는 봉황이 놀았다는 아담한 연못이 있으며..

성수산에 시작하여 오수 쪽으로 흘러가는 둔남천이 있어 정자가 자리하게 좋은곳에 자리해 있으나,

이곳도 세월의 흐름을 비껴갈수 없는지 개발의 영향으로 옛맛이 줄어든 느낌입니다.

 

 

 

이곳은 고흥군 출신의 근대의 학자이며 절의(節義)로 통하며 독립운동가였던 "삼호재(三乎齋) 송주헌(宋柱憲 1872-1950)"은,

“누정에 오르면 표연하여 세상을 버릴 만하고, 편안하여 세상을 즐길 만하며, 유연하여 서로 잊고, 은은하여 몸을 지킬 만하니,

산중의 뛰어난 곳이며, 속세 밖의 이름난 정자다.

때로는 마음 맞은 사람끼리 마주하면서, 술과 시로 호탕하게 하기도 하고, 음악으로 서로 알아주기도 한다" 라고, 

이곳에 들려 감회를 나타내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전남 담양(潭陽)출신의 독립유공자 고홍석(1900~1982)은 1940년 10월 이곳 육우정(六愚亭)의 벽면에,

연필로 "대한독립 만세, 동포여 자각하자" 라는 내용을 크게 써서 주민들의 각성을 촉구하여 투옥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육우정(六愚亭)은 조선말기 지역내 6인이 모여 결성한 친목정자로,

비지정 문화재임 에도 웹에서 관련 자료를 찾을수있어 공부가 되어 다행이지만,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경관이 훼손되고 관리가 소홀하여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속적인 보존을 위해서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 보이는 전북 임실의 아름다운 정자 육우정(六愚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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