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의 보물 문화재인,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龜尾黃桑洞磨崖如來立像)을 찾았습니다.

 

경북 구미에서는 오래전 생활하기도 했었는데,

인동에서 옥계로 넘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이제서야 찾게되어 늦은감이 없지 않은데,

보물 제1122호로 지정되어있는 문화재로  큰 바위에 고부조로 새긴 마애불상(磨崖佛像)으로 나말려초의 마애불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은 구미 2공단의 도로에서 공장너머의 산아래 자리하고 있어 쉽게 보이지 않으며,

내리막길에서 진입로를 찾을수 있기에 진,출입도 그리 수월한편이 못됩니다.

 

 

 

위치를 알려주는 주소는 경북 구미시 황상동 산90-14 이며,

높이 7.2m, 어깨폭 2.8m의 규모로  거대한 자연암벽 동남쪽의 평평한 면을 이용하여 조각한 큰규모의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입니다.

 

 

 

마애불(磨崖佛)로 오르는 계단의 양쪽에서는,

앙증맞은 표현의 돌사자상을 볼수 있는데 아마도 이곳을을 정비하면서 세운듯 합니다.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龜尾 黃桑洞 磨崖如來立像) 입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고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잘 정제되어 있으며,

귀가 길게 느리워지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있어 근엄하면서도 자비스러운 인상을 보여줍니다.

양 팔에 걸쳐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는 옷은 가슴부터 배꼽에 이르는 무늬가 양쪽 다리에 이르러,

각기 완만한 활모양의 주름을 이루면서 흘러내리게 하였으며 손은 가슴까지 올리고 있는데,

왼손은 바닥이 안을 향하게 하고, 오른손은 밖을 향하게 하여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원만한 인상, 잘 정제된 이목구비,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는 옷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나말려초의 뛰어난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금강선원에서 관리를 하는듯 하며,

공덕비의 모습이보여 마애불(磨崖佛) 주변을 정비 하며 세운듯 합니다.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앞의 바위위에,

기왓장인지 무엇인지 조각들을 모아 올려두었는데,

오래된 기왓장으로 보기엔 두께가 얇아보이고 빗살무늬가 있어서 토기의 파편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마애불(磨崖佛)의 상부의 모습으로, 

소발의 머리에 높은 육계와 비만에 가까운 팽창된 얼굴에 만연한 미소는 불교 무예인 선무도로 많이 알려져 있는,

경주 양북면의 "골굴암의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의 특징을 계승하는 연관성이 있습니다.

가늘고 긴 눈, 긴 코와 큰 입, 팽만한 뺨, 만연한 미소 등은 이 불상이 통일신라 말기 불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구조(構造) 및 양식(樣式)은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가 있고,

원만한 상호(相好)가 각 부는 정제되어 있으며 양쪽 귀가 길게 드리워지고 목에 삼도(三道)가 있어 근엄하면서도 자비스러운 인상으로,

머리부분과 양쪽 어깨부분은 원각(圓角)에 가깝도록 양각(陽刻)이 강하게 되어 있습니다.

 

 

 

얼굴은 거의 비만형에 가까운데 가늘게 뜬 눈 위에 간격을 두고 새겨진 초승달 모양의 눈썹은 작고 편평한 코의 윤곽선과 연결되었고,

작고 굳게 다문 입술 밑에는 주름진 아래턱을 표현하여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습니다.

 

 

 

수인(手印)은 양쪽 손을 들어 가슴에 올렸는데 우수(右手)는 외장(外掌)하고 좌수(左手)는 내장(內掌)하여 설법인(說法印)을 결(結)하고 있으며,

풍만한 신체 역시 비만형에 가깝고 특히 하반신을 둔중하고 비대하게 강조하고 있어 고려시대 마애불의 특징이 보이기도 하는데,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얇게 밀착되어 신체의 굴곡을 드러내고 있으며  의습선은 대체로 형식적으로 처리한 경향이 강한데, 

통견(通肩) 법의(法衣)는 양쪽 팔에 걸쳐 밑으로 길게 드리워졌으며,

 

 

 

흉부(胸部)로부터 제부(臍部)에 이르는 의문(衣文)은 양각부(兩脚部)에 이르러 각기 완만한 호형(弧形)을 이루면서 흘렀으나,

발목부분에서는 다시 큼직한 의문(衣文)으로 합쳐졌으며 하반신에 표현된 옷주름은 다리의 굴곡을 따라 형식화된 의문(衣文)을 반복하여,

시대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으며 복련(覆蓮)의 대좌 위에 새겨진 두 발은 특이하게 발끝이 바깥쪽으로 향하도록 하는,

"족안평상(足安平相))"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곳 마애불(磨崖佛)에는 전설이 있어 살펴보면,

삼국시대에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당(唐)나라에서 파견된 한신(韓信)이라는 장군이 전투에서 그만 백제군의 포로가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이 나타나 이 바위 뒤에 몸을 숨겨주어 목숨을 구하게 되자 그 은혜를 잊을수 없어 이곳 황상동 암석에 그 형체를 조각했다고 하며,

 장군은 그 여인이 부처님이라는 믿음으로 이 바위에 불상을 조각한 것이 바로 이 마애불상이라고 전합니다.

장군이 이 불상을 조각한 뜻은 신라의 통일과 불국정토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에서 앞을 내어다 보니,

금강선원과 옥계로 넘어가는 고개를 따라 구미 2공단의 공장들이 들어서 있고,

 

 

 

공장들 너머로 신라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처음 쌓았고,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가 왜적을 맞아 싸웠다고 전하는 천생산성(天生山城)의 모습도 들어옵니다.

삼국시대 때부터 낙동강 유역의 요충지 였다는  천생산성(天生山城)이 가까이 있어, 

당나라 한신(韓信)장군의 마애불(磨崖佛) 전설이 매칭이 되는듯 합니다.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의 옆면을 보면,

암면(岩面)이 고르지 못하고 균열과 박락이 심하지만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암벽 위에는 별도의 판석을 얹어 불두(佛頭)를 덮고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 야외에 노출된 불상에서 흔히 보이는 양식이기도 합니다.

 

 

 

우리주변에 가까이 있어도 눈여겨 보지않고,

먼곳으로의 답사나 여행길을 선호하는데 구미의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방문을 통해,

우리주변의 문화재부터 챙겨야 겠다는 마음이 일깨워지는,

경북 구미의 보물문화재인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龜尾 黃桑洞 磨崖如來立像)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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