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으로의 여행길에서,

세종특별자치시의 나성 독락정(羅城 獨樂亭)에 이어,

독락(獨樂)의 또다른 정자인 "옥천 독락정(沃川 獨樂亭)"을 찾았습니다.

 

충청북도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617번지에 위치한 "옥천 독락정(沃川 獨樂亭)"으로,

 

 

 

독락정(獨樂亭)으로 들어가는길의 오른쪽에는,

초계주씨(草溪周氏) 시조(始祖)의 비(碑)가 서있어,

"초계주씨 시조 임학사휘황위령비(草溪周氏 始祖 林學士諱璜慰靈碑)" 비문의 글을 볼수있습니다.

 

 

 

그외에도 집안의 비석으로 보이는 또다른 비석들이 있으며,

초계주씨의 사당인 영모사(永募祠)가 자리해 있어 매년 음력 10월 5일 제사를 모신다고 합니다.

 

 

 

독락정(獨樂亭)으로 들어가는 문은 정자옆에 나있으며, 

이 정자로 인해 마을의 이름도 독락정(獨樂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자로 들어가는 문은 담장을 따라 가면 보이고,

 

 

 

사주문을 들어서면 정자의 뒷마당으로 들어섬을 알게되는데,

노거수 은행나무와 소나무가 담장을 두고 나란히 서있으며,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된  "옥천 독락정(沃川 獨樂亭)"의 뒷모습이 들어옵니다.

 

 

 

독락정(獨樂亭)은 충청북도 옥천군 안남면(安南面) 연주리(蓮舟里)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로,

절충장군 중추부사(折衝將軍 中樞府事)를 지낸 초계주씨(草溪周氏) 주몽득(周夢得)이  낙향하여,

1607년(선조 40)에 세운 정자로 금강과 병풍의 바위산의 어울림이 있는돗에 자리하여 많은 선비들이 찾던 곳이라 합니다.

 

 

 

"홀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라는 의미의 독락정(獨樂亭) 현판으로, 

1668년(현종 9년) 당시 군수였던 심후(沈候)의 글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방이 자리한곳의 쪽마루 앞에 디딤돌이 있어 마루에 오릅니다.

 

 

 

앞에 쪽마루를 두고 두칸의 방이 왼쪽에 자리해 있는데,

 

 

 

문이 닫혀 있어 방의 내부는 들여다 볼수없으며,

방옆에 자리한 쪽마루는 한단 높게 올려둔 모습입니다.

 

 

 

독락정(獨樂亭)의 마루에는 많은 시판과,

입재(立齋) 송근수(宋近洙:1573-1635)의 율시기문(律詩記文)인 독락정기(獨樂亭記)등이 편액되어 있는데,

일부는 나무 모서리가 떨어져나간 모습이 보여 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독락정(獨樂亭)의 마루에서 앞을 내어다 봅니다.

정자의 뒤쪽에는 층암절벽 바위산이 병풍처럼 솟아 있고,

앞쪽에는 금강(錦江)이 흐르고 산들은 용이 춤을 추는듯 하여 많은 선비들이 찾았던 곳으로 전하며,

 

 

 

독락정(獨樂亭)의 삼면은 담장을 둘렀으나 전면은 축대를 올려 담장을 대신하고 담장을 두르지 않아 트인 풍광을 즐겼을 텐데,

이제는 농업기반공사가 관리하는 독락정 양수장이 앞을 막고 있어 정자와 금강 사이를 가로막는 방해꾼이 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건물은 금강의 물을 퍼 올려 안남 일원의 저수지와 물이 부족한 마을에 물을 공급하는 시설이라 합니다.

 

 

 

독락정(獨樂亭)은 안남천과 금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해 있어,

우리조상들은 물과 물이 만나는곳인 합수(合水) 지점을 길지로 여겨 정자를 둔곳이 많으며,

정자의 이름을 합강정(合江亭)으로 현판 한곳도 여러곳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독락정(獨樂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양 측면은 툇마루를 설치하기 위해 내부를 4칸으로 만들었었으며,

두칸의 방과 마루를 둔 구조로 처음에는 정자로 지었지만 후에 유생들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학당으로 사용하여 서원 구실을 하였습니다.

1772년(영조 48)에 중수하였고, 1888년(고종 25)과 1923년에 다시 보수하였으며, 1965년에 문중에서 다시 고쳐 지어 보전해오다가,

1965년 초계주씨 독락옹파 문중에서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자의 뒤편에도 쪽마루를 두어 뒤편에서도 방으로 들수있으며 방사이의 이동도 편하게 해두었습니다.

 

 

 

독락정(獨樂亭)의 주인 주몽득(周夢得)은,

부친인 주명신과 더불어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고  이괄의 난을 진압 한후 57세에 독락정을 세웠는데

절충장군 중추부사(折衝將軍 中樞府事)에 올랐다고 합니다.

 

 

 

독락정 주변에는 둔주봉에서 본 한반도 지형도 유명한데,

한반도 지형을 좌우로 바꾸어 놓은 형상으로 서쪽편이 서고동저형태를 띠고 있어 영월의 한반도 지형을 따를수는 없으나 다녀 옴직합니다.

홀로 즐기기 위해 지었지만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고 후에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강학의 공간으로 승화 되었던,

금강의 정자 "옥천 독락정(沃川 獨樂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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