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임실을 여행 하면서,

섬진강댐의 옥정호반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양요정(兩樂亭)을 찾았습니다.

 

 

 

양요정(兩樂亭)은 임실군 운암면에 있는 "요산공원"에 자리해 있는데,

요산공원 에는 망향의 탑이 공원의 맨윗부분에서 볼수 있으며,

망향의 탑 바로 아래에는 초가지붕의 형상을 한 화강암에는 "사라지는 흔적 가슴에 새기며"라는 망향의 시비(詩碑)가 자리하고 있는데,

망향의 탑은 1961년부터 축조된 섬진강 댐으로 인해 고향을 잃은 실향민을 위하여 2007년에 세워졌습니다.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37호로 지정된 양요정(兩樂亭)으로,

성균관 진사를 지낸 양요당 최응숙(崔應淑)이지은 정자로,

정자 이름은 맹자의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에서 따 왔다고 합니다

 

 

 

정자 옆에는 양요정(兩樂亭) 이건비와 최응숙의 묘비가 서있고,

양요정의 내력을 설명한 안내 비석도 함께 보입니다.

 

 

 

양요정(兩樂亭)의 현판으로,

구한말 옥구현감(沃溝縣監)을 지낸  청풍 김규행(金奎行:1852~1895)의 예서체 글씨로, 

"양요(兩樂)"는 정자를 지은 최응숙(崔應淑)의 호이기도 합니다.

 

 

 

디딤돌을 통하여 마루로 올라 봅니다.

 

 

 

양요정(兩樂亭)은 정자 가운데에 방을 두었는데 특이하게도 방이 돌아 앉은 느낌으로,

문은 보이지 않고 그림이 있는 벽이 먼저 보여 특이합니다. 

 

 

 

정자의 환도실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은 양요당이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가마에 태우고 호종하는 그림인 "호종도" 로 보여지며..

 

 

 

호종도 윗쪽에는 하늘에 걸려 있는 붉은 해와 달이 있어 임금 전용의 도식적 그림인 일월도(日月圖)로 보이는데,

옛날에  임금이 임하는 장소라면 어느 곳이나 이 그림이 어좌 배경에 설치 되었다고 합니다.

 

 

 

양요정(兩樂亭)의 방은 마루방여서,

비바람을 피하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들였슴으로 보이고..

 

 

 

마루의 뒤쪽에서 보이는 방에는 여러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마루방의 벽안쪽에는 노송 아래에서 자연을 즐기는 모습의 그림이 보이고,

 

 

 

윗쪽에는 시종을 거느리고 어디론가 길을 떠나는 그림도 있습니다.

 

 

 

마루방의 좌,우 문틀 윗쪽의 벽면에는,

 

 

 

청룡과 황룡의 그림으로 서로 마주보게 해두었으며,

 

 

 

세 명의 노인이 한가롭게 바둑을 즐기는 그림도 볼수 있으며,

 

 

 

풍광 좋은곳에 자리한 정자가 있고,

그곳에서 산수를 즐기며 시를 읊는듯한 두사람의 모습도 볼수 있습니다.

 

 

 

양요정(兩樂亭)의 주인인 양요당 최응숙(崔應淑)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부터 선조(재위 1567∼1608) 때까지 살았던 성균진사로,

선조 37년(1604)에 임진왜란시  선조의 피난 시 호종했던 공로로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올랐는데,

3등공신인 "충근정량호성공신(忠勤貞亮扈聖功臣)"에 오른 86인중 한명입니다.

 

 

 

양요정(兩樂亭)에는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찾아들어,

정자의 아름다움을 적은 시판등이 정자 안에 많이 걸려있어 살펴봅니다.

 

 

 

정자의 마루에는 양요정기(兩樂亭記), 양요정중수기(兩樂亭중수記)외 많은 시판등이 올려져 있어,

계해년 후손인 봉신(鳳信)이 기록한 글을 가져와 봅니다.

물이 산을 안고 빙 돌아나가는 별천지에                      누정은 맑은 기운 머금고 비 갠 시내에 잠겼네.

깎아지른 바위는 쌓이고 쌓여 천 자에 달하고,               오래된 나무는 창창하니 몇 년이나 자랐을까.

동량(棟樑)은 옛 모습대로 수리하였는데,                     지팡이에 나막신 신고 산책하니 나는 신선 같네.

우리 집안 기업(基業)은 정자에 있으니,                       정히 대대로 계승하여 후손에 전해야 하리.

 

 

 

정자의 마루에서 볼수있는 편액으로, 

양요정에서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시를 짓고 올린 편액 "양요정 동유록(兩樂亭 同遊錄)"으로,

임실군수 박시순, 사인(士人) 이동의, 전주사(前主事) 이현구, 사인 최현익, 사인 최봉조, 전참봉 이현의, 진사 이병의,

사인 최봉기, 사인 최봉길 9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자의 마루에서 "옥빛 우물"이란 의미의 옥정호(玉井湖)를 내려다 봅니다.

 

 

 

지금의 양요정(兩樂亭)의 주변 경치도 절경이지만,

옮기기 전의 양요정은 산을 감돌아 흐르는 강과, 산 밑으로 낙수치는 폭포가 있었다고 하며,

섬진강 댐의 공사로 인해 양요정이 물 속에 잠기게 되자,  1965년 이곳으로 이건을 하였습니다.

 

 

 

마루에서 내려오면서 정자의 추춧돌을 보니,

원래 있었던 초석은 아니어서 이건을 하면서 옛것은 버리고 새로 다듬어서 사용한것으로 보이는데,

세것이 좋아서 인지 연유는 알수없으나 아쉬움이 남습니다.

 

 

 

양요정(兩樂亭)의 안내문에는 최응숙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난을 피해 이곳으로 낙향하여 정자를 지은것으로 되어 있으나

양요당 최응숙은 임진왜란시 선조의 몽진에 어를 호종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올랐으나,

임란 후 정세가 어지럽자 임실 입석리로 내려와 살면서 정자를 지었다고 하며 양요정에서 호종도로 보이는 그림등으로 보아 후자가 맞는듯 합니다.

 

 

 

양요정(兩樂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팔작 기와지붕으로,

정자 안에는 바람을 피하고 겨울에도 책을 볼 수 있는 환도실이 정자의 가운데 부분에 자리하고 있어 호남식 정자의 형식을 보여줍니다.

 

 

 

양요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옥빛 우물이란 뜻 옥정호(玉井湖)의 모습으로,

육지속의 섬이라는 붕어섬이 해질녘 풍경에 들어옵니다.

문화재는 제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댐의 건설로 지금은 호수를 내려다보는 절경에 있지만 예전에는 그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 자리 했었다고 하여,

옛 정취는 느낄수 없지만 풍광좋은곳에 자리하여 그나마 다행인,

전북 임실의 정자문화재 양요정(兩樂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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