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겨울바다를 찾아서,
경북 포항 남구의 구룡포항을 찾았습니다.
포항 호미곶에서 감포쪽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구룡포항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부두를 만들고 방파제를 쌓으면서 항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곳으로,
현재 북방파제 약 600m, 남방파제 약 400m, 물양장 약 600m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대게와 과메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구룡포의 가장큰 매력은 "푸른바다"이기에,
구룡포의 북방파제를 찾아 끝없는 수평선을 보기도 하고,
방파제에서 바다 낚시꾼들과 항을 오가는 어선들도 볼수있고,
방파제의 내항쪽에서는 청어를 손질하는 모습도 들어와,
겨울이 되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청어나 꽁치를 내다걸어,
껍질은 쭈글쭈글해지고 속살은 꾸덕꾸덕하게 말린것을 "과메기"라 하는데 겨울철의 별미로 구룡포의 특산이기도 합니다.
한쪽에는 말리고있는 반건조 오징어의 모습도 보여,
피데기라도 하는데 신선한 바닷 바람으로 피득한 수준인 마른오징어의 75% 정도로 건조시킨 오징어로,
적정수분 함유와 타우린 및 비타민을 적당하게 생성시킴으로 건오징어에 비하여 육질이 연하고 맛과 식감이 좋아 인기가 있습니다.
방파제에서 항구로 들어오면 대게를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어,
구룡포 대게는 몸통에서 뻗어나간 10개의 다리가 대나무 처럼 곧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대한민국 동해안 전역에 서식하며,
함경북도 연안의 냉수역 지대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나 현재는 일본 오끼군도 주위의 대게어장이 가장 큰 대게 어장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동해안의 빠질수없는 명물이기도 합니다.
구룡포의 한쪽에 입구를 알리는 표지가 있어,
구룡포(九龍浦) 근대문화역사(近代文化歷史)거리인 "일본인 가옥거리"가 있습니다.
이곳은 자동차가 겨우 지날 만큼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옛일본식 가옥들이 들어서 있어,
구룡포는 1910년대까지만 해도 한적한 어항 였는데,
경술국치(한일합방)와 동시에 일제의 전국적인 자원 수탈 기지의 하나로,
일본인 "도가와 와사브로"라는 수산사업가에 의해 물류기지화 어항을 건설하였는데,
1933년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곳에는 약 330여 채의 일본 가옥이 있었다고 합니다.
1923년 일제가 방파제를 쌓고 본격적인 항구를 만들어 동해의 어업을 점령했는데,
일제 강점기 수탈의 흔적으로 지금의 "일본인 가옥거리"가 구룡포에 남아 있는것 입니다.
일본인 가옥거리는 "조일통산장정"이 체결되고 난 후 일본인이 조선으로 와서 살았던 곳으로,
일식 가옥 몇채가 남아있던 것을 포항시가 정돈해서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는 곳으로,
이 곳에 살던 "하시모토 젠기치"의 집을 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비롯해,
당시의 요리집, 찻집 등이 보존되어 있고 소학교와 우체통 등이 당시 모습으로 재현되어 있으며,
당시 이 곳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모임으로 "구룡포회"가 있었다고 하는데,
1900년대 초반 한국 속에 자리잡은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엿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여,
큰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일본거리 촬영때,
이곳 구룡포 읍내 장안동 골목이 촬영 세트장로 이용 되기도 하였습니다.
예전에 일본인들이 살던 가옥을 개조해서 다른 용도로 쓰는 집도 보이고,
그 특징을 그대로 살려 일본 특유의 느낌을 한껏 느낄 수 있도록 잘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1920~30년대에는 이곳에는 일본인 1천여 명이 이주해서 살았다고 하는데
100여년 전의 시간여행으로 한국속의 일본을 엿볼 수 있는곳 이기도 합니다.
2층의 목조건물로 옛날의 잡화점이 있었던 곳으로,
광복 후 점차 사라져가던 것을 포항시가 역사의 산증거물로 보존에 나섰고,
일제 잔재인 이곳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구룡포의 "일본인 가옥거리" 입니다.
일본인 가옥거리에서 언덕위로 오르는 계단이 보이고,
가옥거리 뒷산에는 일본인들이 손수 만들었던 공원이 있습니다.
오르는 돌계단 양쪽으로 비석을 세워놓았는데 비석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일본인의 이름과 함께 영일군수 김우복, 영일교육감 임종락, 제일제당 구룡포통조림공장 하사룡, 이판길 등등..
계단과 비석에 세워진 것을 일본인에 의한 것으로,
1920년대 그들은 집단거주지를 만든 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뒷산에 공원을 꾸미고 비석에 이름을 새겨놓았었는데,
해방후 일본인들이 떠나자 시멘트를 발라 기록을 모두 덮어버린 뒤 비석을 거꾸로 돌려 그곳에 구룡포 유공자들의 이름을 새겼다고 합니다.
계단을 오르면 가장 먼저 용의 조각상을 만나게 되는데,
구룡포는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하다 1마리가 떨어졌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어 "구룡포"라 하는데
이를 상징하는 9마리의 용 동상이 있어 구룡포항을 내려다보는 이곳에서 이 지역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집니다.
공원에서 윤슬이 눈부신 구룡포 항을 내려다 봅니다.
구룡포공원은 일본 신사가 있던 곳으로,
공원 에서는 당시 구룡포 개발을 위해 힘써 어업으로 성공한 실력자이며,
우리의 귀중한 지원을 훔쳐 빼돌리는데 앞장선 일본인 "도가와 야사부로"를 기리기 위해,
일본에서 가져온 규화목으로 1944년에 세운 7m 높이의 거대한 송덕비로,
비문은 광복후 구룡포 주민들에 의해 시멘트로 덧칠돼 그 내용은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공원의 한쪽에서 볼수있는 구조물로,
뒤쪽의 "구 충혼탑 기단"은 일제의 것으로 명문을 지우고 다시새겨 충혼탑의 기단으로 사용 했던것 이며,
앞의 조각물은 "쵸우즈야"로 이곳에 있었던 신사에 참배를 하기전 손을 씻는곳이라 합니다.
공원 안쪽에서는 용왕당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은 원래 인본인들의 신사를 철거하고 1956년 세웠다가 오래되어,
2008년 새로이 한옥건물로 세워 용왕당으로 선원들의 무사고를 빌던곳으로,
용왕당은 일반적으로 여신인 "용신할머니", "용신부인"을 모시는데,
이곳은 남신인 "사해용왕"을 모셨다는데 안은 들여다 볼수가 없습니다.
용왕당 옆에는 "충혼각"이 자리해 있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산화한 포항지역 출신들의 호국 영령들의 위패를 모신곳으로 1960년 건립하였습니다.
구룡포공원에서 내려와,
구룡포에서 해맞이 공원에 이르는 "포항 해파랑길 14코스"의 시작인,
구롱포의 과학기술고 앞의 무인등대에서 푸른바다를 즐깁니다.
동해의 푸른바다를 즐기기 위해 찾았던 포항의 구룡포 항으로,
겨울바다와 함께 일본인 가옥거리와 동해안 포구의 풍경을 즐길수 있는곳으로,
고찰 오어사, 연오랑 세오녀 공원, 호미곳 해맞이 공원도 가까이 있어 찾아 볼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