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와 의성지역을 다녀오면서,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義城 塔里里 五層石塔)을 찾았습니다.

 

국보 제77호로 지정된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義城 塔里里 五層石塔)은,

의성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이 돼 있는 석탑으로 의성을 상징하는 문화재 이기도 합니다.

 

 

 

금성면 소재지의 낮은 언덕의 대지 위에 위치하고 있는 탑리리 오층석탑(塔里里 五層石塔)으로,

이곳은 옛 면사무소가 있었던 자리 였다고 하며 오랫동안 보수공사를 하여 두번씩이나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곳 입니다.

 

 

 

석탑의 오른쪽에는 2012년 10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5년간에 걸쳐 실시한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보수공사에서 교체한 석탑 부재를 보존처리하여 현재 위치에 전시하여 두었는데,

 

 

 

 

안내문에서는 오층석탑(五層石塔)의 입면도와 보관되어 있는 부재들을의 위치를 설명 하고있으며,

 

 

 

석탑을 수리하면서 교체한 석탑 부재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벽돌처럼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과 목조건축을 모방해서 만든 석탑의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어,

석탑 지붕돌을 구성하고 있던 부재들. 2~3층으로 돌을 깎아서 전탑처럼 보이게 만든 내용도 살펴볼수 있습니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義城 塔里里 五層石塔)은

높이 9.6m. 기단 폭 4.5m 석탑의 각 부분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1층 옥신에서 목조건물의 양식을 보이는 일종의 모전석탑으로,

신라 석탑의 초기형식을 보이는 석탑으로 초층 옥신(初層屋身)은 목조건물을 옥개석은 전탑(塼塔)을 모방한 특이한 양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목탑과 전탑 형식을 혼합하면서 전체적으로 전탑적인 외관을 갖췄고,

단층이기는 하나 기단의 형식 옥신, 옥개석의 형식 및 기단 갑석상면(基壇甲石上面)의 괴임 등이,

이른바 신라 석탑형식의 방향을 제시하여 모든 신라 석탑의 출발점이 되는 시원형식(始源形式)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단부는 14매의 장대석으로 구축된 지대석 위에 이루어져 있는데 24매의 판석으로 면석을 구성하였고,

각 면마다 우주와 2주의 탱주가 모두 별도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갑석은 8매의 판석을 결구하여 덮었는데,

부연은 표시되지 않았으며 갑석 윗면에는 1단의 굄돌을 놓아 초층 옥신을 받치고 있습니다.

 

 

 

전탑을 모방하여 만든 모전석탑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전탑이나 모전석탑처럼 1층의 남쪽 몸돌에는 불상을 모셔두는 감실을 두고 있는데 감실은 비어 있습니다.

 

 

 

탑신부는 각 층의 옥신[몸체]과 지붕돌이 각기 다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초층 옥신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초층 옥신은 각 면마다 우주가 별석으로 세워졌으며 우주는 배흘림 양식이 있고,

주두에 좌두와 그 위에 액방·형방이 이중으로 조각되어 있어 목조 건축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2층 이상의 옥신에는 각 면마다 우주 외에 중앙에 1주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습니다.

 

 

 

지붕돌은 낙수면과 1층 받침이 별석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4·5층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어 층급 받침은 초층이 4단이고 2층부터는 5단이며 낙수면은 모두 6단의 층단이 있고,

추녀는 전각에 이르러 약간의 반전을 보이고 있는데 추녀 부분에는 풍탁을 달았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고,

상륜부는 현재 노반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오층석탑(五層石塔)은 1층 몸돌의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이 위가 좁고 아래는 넓은 모습이고,

기둥 머리인 주두에 좌두가 조각되었으며 전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추녀 전각의 반전 등이 표현되어 있어,

목조 건물의 양식을 많이 따랐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석탑은 이전에 목탑과 전탑이 존재하였음을 추정하는 유력한 근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오층석탑이 있는 탑리리는 의성군 금성면 소재지로 삼한시대 진한과 삼국시대 초기에 조문국이 있었던 지역으로,

경주에서 경북 북부지방을 거쳐 죽령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삼국시대 말에서 통일신라초기에 당나라를 방문했던 사람들이 지나가던 주요 교통로여서,

주변 지역에는 당나라 산동지방 전탑의 영향을 받은 전탑이나 모전석탑 등이 여럿 남아 있는데  그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세워진 석탑입니다.

 

 

 

통일 신라 초기인 700년 전후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석탑으로

익산미륵사지석탑, 부여정림사지5층석탑과 같은 백제계 석탑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어,

우리나라 초기 석탑 양식의 형성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탑으로,

세번을 찾아 만날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삼고초려(三顧草廬)의 문화재로,

경북 의성의 국보 문화재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義城 塔里里 五層石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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