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의 정자 문화재 탐방에서,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화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취석정(醉石亭)을 찾았습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3호로 지정된 취석정(醉石亭)으로,

 

 

 

취석정(醉石亭)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조광조(趙光祖)의 제자였던 노계(蘆溪) 김경희(金景熹)가,

1546년(명종 1)에 건립한 것으로 사화(士禍)를 겪으면서 이곳 고향으로 낙향하여 정자를을 짓고,

이곳에서 시문과 산수를 즐겼던 곳입니다.

 

 

 

취석정(醉石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2고주 5량집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구조로,

정면과 측면을 각각 3칸으로 만들어 모두 9칸인데 가운데 1칸을 방으로 꾸미고 주변은 마루를 둘렀으며,

출입은 양 측면에 섬돌을 하나씩 두고 이를 통해 오르도록 하였는,

 마룻바닥 주위에는 4면으로 연잎을 조각한 계자난간(鷄子欄干)을 설치 하였습니다.

 

 

 

취석정(醉石亭)으로 들어서면,

정자 주변으로 크고 작은 돌들이 여러개를 볼수있어..  

 

 

 

취석정(醉石亭)의 취석이란 말은,

옛날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한가로이 세상을 살 때 술이 취하면 집앞 돌팍위에 잠들기도 했다는 도가에서 비롯 되었으며,

"사람이 욕심없이 한가롭게 생활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취석(醉石)"이라는 이름은 중국 도연명(陶淵明)의 시에서 인용한 것으로,

바위의 모습 또한 자연스러워 마치 취한 듯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바위의 한쪽에서는 "취석정(醉石亭)"이라암각된 글자를 볼수 있습니다.

 

 

 

정자의 담장 너머 왼쪽 아래에는 노계(蘆溪)가 흐르고,

 

 

 

노동저수지의 전경도 저만치 들어 옵니다.

 

 

 


취석정(醉石亭)은 건물을 제외한 주변의 바위와 담,

그리고 나무들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조성된데 비하여 건물은 대칭으로 만들어 인위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러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지려는 의도가 보이는데,

가운데에 폐쇄가 가능한 방을 배치하고 방을 에워싸는 마루는 창호를 달지 않아 개방된 공간이 되어,

내부의 방과 외부의 자연공간이 마루공간으로 완충되도록 계획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취석정(醉石亭)의 현판이며,

 

 

 

주춧돌은 자연석을 이용 했슴이 보이고, 디딤돌을 통해서 마루로 올라 봅니다. 

 

 

 

마룻바닥은 지면에서 1자 반 정도 높여 우물마루를 깔았고,

가운데 배치한 방의 창호는 모두 띠살문을 달았는데,

전후면은 이분합문(二分閤門) 이고  양 측면에는 삼분합문(三分閤門)을 달았슴을 볼수있고..

 

 

 

기단은 생략하고 커다란 자연석으로 덤벙주초를 놓은 다음 기둥은 원주와 방주를 혼용 하였는데,

외진주(外陣柱)는 원주이고 방의 사방에 세운 기둥은 방주입니다.

기둥머리에서는 창방을 기둥 사이에 걸고 주두(柱頭)를 놓은 다음 그 위에 장여와 주심도리를 걸었으며,

주심도리는 단면이 굵은 굴도리를 사용했고 창방과 장여 사이는 조금 사이를 띄워 소로를 2∼3개씩 끼웠습니다.

 

 

 

방의 양 측면에 있는 삼분합문(三分閤門)의 모습으로,

크기 때문인지 세짝의 넌출문인 들문을 달아두어 특이 합니다.

 

 

 

방의 천장은 반자로 하고 마루는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으로 처리 하였는데,

사방이 큰문으로 되어있어 배부는 밝은편으로 취석정(醉石亭)은 정자 가운데를 온돌로 꾸민 독특한 양식의 건물로,

조선시대 정자문화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취석정(醉石亭)의 마루위에는,

전라북도 순창 출신인 조선 후기의 학자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취석정기(醉石亭記)"와,

유학자 거창신씨 경당(絅堂) 신사범(愼思範, 1525~2010)이 지은 "근차 취석정  운(謹次 醉石亭韻)"등 여러 편액들을 볼수 있고,

 

 

 

취석정(醉石亭)의 마루에서 담장 너머로 흐르는 노계(蘆溪)의 모습이 보이고,

 

 

 

노동저수지로 향하는 노계(蘆溪)와 낮은 산세의 모습도 들어옵니다.

 

 

 

정자의 마루에서 보이는 노동저수지는 고창읍 노동리와 고창읍 덕산리를 연결하는 준계곡식 저수지로,

문수산 북쪽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유입되어 수질이 좋으며,

고창읍에서 가까워 고창군민들의 조깅 코스로 이용되고 있으며 산책 장소와 낚시터로도 유명합니다.

 

 

 

취석정(醉石亭)은 한때 퇴괴되어 빈터로 남아 있다가,

현재의 건물은 1871년(고종 8)  옛터에 후손들이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 유학자 김경희(金景熹:1515∼1575)의 자는 용회(用晦)이고, 호는 노계(蘆溪)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으로,

부친은 효행으로 의릉참봉(義陵參奉)을 지낸 김기서(金麒瑞)이며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의 문인으로,

1534년(중종 29)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하였으나 을사사화 이후 과거를 단념하고,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호동(虎洞) 노계(蘆溪)에 은거하여 제자를 길렀는데,

1546년(명종 1)에 취석정(醉石亭)을 짓고 정자(鄭滋), 이만영(李萬榮), 송인수(宋麟壽), 심광언(沈光彦), 양응정(梁應鼎) 등,

제현(諸賢)들과 더불어 학문을 논하고 경서를 연구하였습니다.

"성리언행(性理言行)" 등의 저서가 있으나 전해지지 않으며 문집인 "노계집(蘆溪集)"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노계김선생유고(蘆溪金先生遺稿)"는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고창(高敞) 전동사(典洞祠)와 노산사(蘆山祠)에 배향되었으며 묘소는 고창군 고수면(古水面: 옛 고사면(古沙面)에 있습니다.

 

 

 

고창 지역의 누정 중에서 빼어난 정자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며  담장 안에는 아직 훼손되지 않은 고인돌 7기가 있고,

담장 밖으로도 3기의 고인돌이 있어 옛 선사 유적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곳으로,

전북 고창의 정자 문화재인 "취석정(醉石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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