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지역의 문화재 탐방 길에서,

젓갈로 유명한 강경의 죽림서원(竹林書院)을 찾았습니다.

 

그리 크지않는 홍문(紅門)을 앞에 두고있는 죽림서원(竹林書院)으로,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금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으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5호로 지정되어 있는 아담한 규모의 서원(書院) 입니다.

 

 

 

서원(書院) 입구에는 비석 한기가 서있어 "원장금석민공기기공비" 이며,

 

 

 

서원의 정문인 유도문(由道門)을 들어서면,

힘차게 씌여진 죽림서원(竹林書院)의 현판을 볼수 있으며,

참고로,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과 전남 장성에도 같은 이름의 죽림서원(竹林書院)이 있습니다.

 

 

 

솟을 삼문의 이름인 유도문(由道門)의 현판으로 송재성(宋在晟)의 글씨이며,

유도문(由道門)이란 "도가 시작되는 문"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유도문(由道門)을 들어서면,

아담한 규모의 죽림서원(竹林書院)이 들어오는데,

1626년(인조 4)에 이이(李珥)·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세운 황산사(黃山祠)가 그 기원으로,

1663년(현종 4)에 중건하였으며 1665년(현종 6) ‘죽림’이라 사액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으며,

이때 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까지 배향하였으며 이어 1695년(숙종 21)에는 송시열(宋時烈)을 추가 배향 하였으며,

창건 때에는 지명을 따서 황산서원(黃山書院)이라 하였는데,

서원에 제향된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의 6인이 모두 문묘(文廟)에 배향된 유현(儒賢)이라 하여,

육현 서원(六賢書院)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유허지(遺墟地)에 제단을 마련하여 향사를 계속하여오다가,

 

1910년 국권상실과 함께 중단되었고 그 뒤 1946년 지방유림이 옛 제단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삼문 안쪽에서 오른쪽에 있는 헌장당(憲章堂)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앞면 열은 퇴간이고 뒷면 열은 온돌방을 두었으며,

1고주 5량가 구조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측면에는 박공으로 처리를 하였습니다.

 

 

 

헌장당(憲章堂)의 현판으로 역시 송재성(宋在晟)의 글씨이며,

"본받음을 모범으로 삼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강학 공간인 헌장당(憲章堂)의 마루에는 중수기(重修記)를 포함해 2기의 편액이 올려져있고,

 

 

 

헌장당을 마주하고 있는 서재는 수직사를 겸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외삼문 쪽 1칸은 부엌, 나머지 2칸은 온돌방이며,

1고주 5량가 구조로 홑처마 우진각 지붕이며 기둥머리는 민도리집 구조 입니다.

 

 

 

제향 공간인 죽림사((竹林祠)로 낮게 한 단을 조성하여 신문(神門)을 두었는데 ,

이곳은 1653년(효종4년) 송시열과 윤선거((尹宣擧)가 만나 주희(朱熹)의 사상을 비판하고 개혁적 사상을 가진 윤휴를 두고 논쟁을 벌였던 곳으로,

윤휴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사서의 경전을 주희와는 다르게 해석을 내렸는데,

주희의 해석만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송시열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였고 그때문에 송시열은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았지만,

윤선거는 경전의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윤휴의 학문이 높다고 평가 했는데 이때문에 두사람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림사((竹林祠) 왼쪽에도 건물한채가 있어 관리사 인듯 하며,

 

 

 

사당 앞 좌우에는 공적비와 중건비 등이 있어,

왼쪽에는 죽림서원중건비(竹林書院重建碑)와 황산서원지비(黃山書院之碑)가 서 있으며,

 

 

 

건너에는 죽림서원묘정비문(竹林書院廟廷碑文)이 있어,

죽림서원 마당 안에 있는 희생을 묶어 두던 돌에 새겨진 비문으로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송광식(宋光拭)이 글씨를 썼으며,

죽림서원에 조광조(趙光祖), 이황(李滉), 이이(李珥), 김장생(金長生), 성혼(成渾) 등 다섯 현인을 배향하게 된 경위를 문답체 형식으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사우인 죽림사(竹林祠)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앞면 열은 퇴칸이고 뒷면 열은 내부 공간으로 꾸몄다고 하며, 

1고주 5량가 구조에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측면에는 풍판을 달아 두었으며,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의 6인을 배향하고 있다고 하나 닫혀있어 안은 들여다 볼수 없습니다.

 

 

 

죽림사((竹林祠)의 현판이며,

충청남도 남부 공주목에 속하였던 논산은 거의 서인계, 또는 노론계의 일색이었는데 죽림 서원의 경우,

영남학파인 조광조와 이황, 기호학파의 거유인 노·소론의 이이와 성혼, 노론의 조종(祖宗)인 김장생과 송시열이 함께 제향되어 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로 이황이 어떠한 연유로 서인 및 노론의 대표 인물들과 함께 제향될수 있었는지,

학문적 논리로 파당을 중시하였던 그시대를 보아서도 이례적 입니다.

 

 

 

사당 앞에는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유허지(遺墟地)에 제단을 마련하여 향사를 계속하여 왔던 유허로 여겨지는 단소가 보입니다.

 

 

 

죽림사((竹林祠)에서 나오면서 보면,

강학 공간의 동·서 양재는 마주보고 있어 형태가 다른 서원들과는 다른데,

보통 동,서 양재는 수평, 수직을 맞춰 대면하고 있는데 이곳은 서재가 사선으로 틀어진 채로 배치되어 있어,

이는 고종 때 훼철당한 뒤, 후에 복원하면서 대지의 조건에 따라 배치하려다 현재의 형태가 나온 것으로 추측되며..

그로인해 배치 형태가 질서 정연하지 못합니다.


근자에 너른터에 크게 복원된 서원(書院)들에 비해,

작은 규모의 아담해 보이기까지 한 죽림서원(竹林書院)으로,

서원 뒤편으로 대나무숲이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기호학파의 서인계열의 주자학으로  윤휴의 새로운 해석을 비판하여 동조한 윤선거 와는 사제의 인연을 끊고,

사문난적으로 몰아죽음에 이르게 하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던곳인,

강경의 죽림서원(竹林書院)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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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95 | 죽림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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