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의 정자 문화재 탐방에서,

길안의 만휴정(晩休亭), 도산의 고산정(孤山亭)과 더불어,

안동을 대표할만한 빼어난 정자 문화재, "백운정(白雲亭)"을 찾았습니다.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인 백운정(白雲亭)으로 가는 길은 단 하나뿐여서,

반드시 임하보조댐을 건너야 하는데 출입이 자유롭지 않고 철문으로 막혀있어 허락을 받고 통과해야 하는데,

임하댐의 보조댐 경비원에게 허락을 받고 건너가야 합니다.

 

 

 

임하보조댐을 건너지 않는 또 다른길도 있어,

임하면사무소에서 길안천을 건너 임하면 임하리 임하2리 마을앞 길안천 뚝방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반변천(半邊川)을 가로지르는 임하보조댐이 보이며 철망 휀스를 따라 가면 백운정(白雲亭)에 이르게 되는데,

정상적인 길이 아닌 까닭에 겨울철 외엔 찾기 힘들기에 추천하지 못합니다.

 

 

 

길을 따라 오르면 정자의 뒷면에 있는 주사(主舍)의 모습을 먼저 만나게 되고,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5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백운정(白雲亭)으로,

 

 

 

정자 앞에는 310세를 넘긴 노거수 회화나무와,

 

 

 

315세를 넘긴 향나무가 강을 향하여 누운듯 자리하고 있어,

두그루의 노거수는 모두  안동시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백운정(白雲亭)은 구봉(龜峯)  김수일(龜峰 金守一)이,

그의 부친 청계(靑溪) 김진(靑溪 金璡)으로부터 부지를 얻어서 1568년(선조원년)에 창건한 정자로,

백운정(白雲亭)은 퇴계 이황의 수제자인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학문을 연마하던 정자이며,

반변천 강 언덕 위에서 내앞마을과 개호송 숲이 조망되는 지점에 자리해 있습니다.

 

 

 

정자 옆에는 이곳을 정비하고 세운듯한 오래지 않아 보이는 비석 한기가 서있고,

 

 

 

백운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며 누마루는 동향으로 반변천을 굽어보게 배치 하였으며,

뒤쪽에 ‘ㄷ’자형 주사가 연접되어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누마루 4칸을 두어 계자각 헌함을 돌렸고 서편에 2칸통의 온돌방을 배치 하였습니다.

 

 

 

주사(主舍)는 서쪽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2칸통의 온돌방과,

주방의 양단에서 동쪽으로 익사를 돌출시켜서 정자와 함께 "口" 자형의 배치로 되어있어,

 

 

 

중문을 통하여 주사(主舍)로 먼저 들어가 봅니다.

 

 

 

주사(主舍)로 들어가는 중문에 걸린 조양문(朝陽門)의 현판으로,

퇴계 이황의 글씨이며 진본은 국학진흥원에 보관되어 있으며..

"조양(朝陽)"은 "지도자가 나타나면 그에 걸맞는 영재들이 따른다"는 의미로,

시경(詩經) 권아(卷阿)에 나오는 "봉명조양(鳳鳴朝陽)"에서 그 의미를 찾을수 있습니다.

 

 

 

판재로 된 중문인 조양문(朝陽門) 금속 장석의 문양이 눈에 들어 오고..

 

 

 

주사(主舍)는 서쪽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2칸통의 온돌방과,

주방의 양단에서 동쪽으로 익사를 돌출시켜서 정자와 "口"자 형의 배치로 되어 있고,

온돌방의 동측에는 안마당쪽으로 개방된 마루 1칸과 그 옆에 고방 1칸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리 크지 않는 아담한 규모의 주사(主舍)의 마루중 하나 이며,

 

 

 

주사(主舍)의 온돌방은 비교적 밝은편 입니다.

 

 

 

정자 뒤쪽과 마주한 곳의 주사(主舍)는 크기는 작지만 고방과 마루, 부엌과 마구간까지 있어서,

 

 

 

주사(主舍)의 큐모에 비해 큼직한 부엌을 들여다 보고,

 

 

 

주사(主舍)에서 정자로 향하는 쪽의 모습으로,

부엌의 전면쪽 서측(우측)에는 마구간이 한간 돌출하여 있고,

동측(정자 쪽)으로는 장서실과 마루방 1칸씩이 배열되어 있으며,

 

 

 

중문인 조양문(朝陽門)의 반대편에 이요문(二樂門)이 있어,

주사(主舍)로 들어가는 정문 격으로 보이며..

 

 

 

이요문(二樂門)또한  중문인 조양문(朝陽門)과 함께 퇴계 이황의 글씨이며,

논어의 "지혜로운이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이는 산을 좋아한다"라는,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에서 따온것으로 물도 산도 즐거운 백운정(白雲亭)이라는 의미 입니다.

 

 

 

1608년(선조 41)에 편찬된 경상도 안동부(지금의 안동시)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 누정조(樓亭條)에는,

“판서에 증직된 김진이 세우고, 그의 아들 수일이 옛 제도에다 늘려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귀봉 김수일은1528년 정자가 있는 1555년(명종 10)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향리(鄕里)에 남아  1583년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수학(修學)과 후학양성(後學養成)에 힘썼습니다.

 

 

 

정자의 마루로 오르는 섬돌위에는 흰 고무신 한켤레가 자리하고 있어,

사람이 기거하고 있지않은 이곳 백운정(白雲亭)에 온기를 느끼게 해줍니다.

 

 

 

정자의 루상부의 가구는 5량가로 종량위에 제형판대공을 얹었는데 그 몸에 첨차를 직교로 끼워 장식하였으며,

온돌방에서 누마루쪽으로 난 사분합문은 근년의 보수시에 문 높이를 원래보다 낮추어버린 듯하며,

주두에 결구된 보아지나 기타 목조의 세부에서 건립 당초에 어울리는 고격을 엿보이지 않아,

아마도 후대의 관리나 보수시에 개체된 것으로 보입니다.

 

 

 

마루위 천정에는 팔작지붕과 늘 함께하는 우물천정과 서까래 등이,

빚바랜 푸른색의 단청과 함께하여 더욱 고즈넉하게 여겨지며,

 

 

 

마루 안쪽에 올려져 있는 "백운정(白雲亭)" 현판으로,

조선 중,후기의 문신으로 남인 실학파의 초석을 닦은 인물인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 90세에 썻다는 전서체 글씨로,

"구십노인서(九十老人書)"라고 부기되어 있으며 진본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되어 있고 이곳에는 복각(復刻)된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백운정이란 당나라 적인걸(狄仁傑)의 시구에서 따온 것으로 "저 흰 구름 아래 부모가 계신다(登高山望白雲思親在其下)"라는 의미 입니다.

 

 

 

정자의 마루에는 백운정중수기(白雲亭重修記)를 비롯하여,

청계의 원운(源韻)과 약봉, 귀봉, 학봉, 운천, 표은, 동악 이안눌 등 이름난 문장가들의 시편들이 올려져 있으며,

 

 

 

정자의 방과 마루사이에는 문짝 네개가 죽 잇달아 달린 넌출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어,

 

 

 

네개의 문짝 모두를 접어 들어올려 열수있게 만든 큰 문으로,

정자의 바깥 풍경을 방안까지 들여올수 있도록 해두었으며,

 

 

 

두칸이 연결되어 있는 온돌방은,

사방으로 나있는 크고작은 문들로 밝은 편이며 정리도 깔끔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자의 온돌방에서 뒤편에 연결되어 있는 주사(主舍)로 바로 통하는 작은 문이며,

 

 

 

이요문(二樂門) 방향으로 나가는 문도 두짝의 넌출문으로 되어 있으며,

문위에는 또다른 작은 창도 나있어 눈길이 갑니다.

 

 

 

백운정(白雲亭)의 주인인 구봉(龜峯) 김수일(金守一, 1528~1583)은,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의 둘째 아들이며  퇴계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55년 생원시에 합격한후 누차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고,

향리인 임하현(臨河縣) 부암(傅巖)에 백운정(白雲亭)을 짓고 유연자적하며 집안 자질과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으며,

56세 때 유일(遺逸)로 자여도 찰방이 제수되어 은혜에 감사하려고 상경하였다가 여저(旅邸)에서 병사 했습니다.

유고 귀봉일고가 있으며 사빈서원(泗濱書院)에 제향 되었습니다.

 

 

 

백운정(白雲亭)의 마루에서 앞을 내려다 봅니다,

임하 보조댐 방향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시원하며..

 

 

 

강 너머로 보이는 개호송(開湖松)은 내앞마을의 풍수형국을 완성하기 위해 수구막이로 조성된 마을숲으로,

개호송(開湖松) 강변송림, 백운정(白雲亭)과 함께 집성촌인 내앞마을 등을 포함하여  2007년에 명승 제26호로 지정 되었는데,

백운정과 백운정 앞에 있는 개호송 숲 일원은 뛰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경승지이나 지역민인 안동 사람들도 잘 모르는 명소이기도 하여,

여름이나 겨울에는 캠핑 마니아들이 찾는 빼어난 경치의 캠핑장이 되기도 합니다.

 

 

 

구봉(龜峯) 김수일(金守一)이 정자에 올라 감흥을 노래한 시(詩)한편을 가져와 봅니다.

縣城西北洛江湄 (현성서북락강미)     고을 성 서북 낙동강 물 가

靑 開成小閣危 (청 개성소각위)         푸른 산 언덕에 우뚝한 작은 정자 지었네

才子乘閒來讀易 (재자승한래독이)     재자들은 한가한 틈에 와서 주역을 읽고

大兄携酒坐吟詩 (대형휴주좌음시)     대형은 술을 가져와 앉아 시를 읊조리네

雲收遠壑山如畵 (운수원학산여화)     구름 거둔 먼 산골짝은 그림 같고

風定深潭水似砥 (풍정심담수사지)     바람 멈춘 깊은 연못 물은 숫돌같이 고요하네

向夕微瀾搖朗月 (향석미란유랑월)     지난 밤 약한 물결 일어 밝은 달 흔들리는 모습이여

絶勝神女弄珠時 (절승신여롱주시)     절승지에서 신녀가 구슬을 으르고 노는 때였네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내앞(川前) 마을 반변천(半邊川) 건너편 연화봉 자락 부암(傅巖) 위에 자리잡아,

청계의 둘째 아들 귀봉(龜峯) 김수일(1528~1583)이 1568년(선조 1년) 부친이 내 준 터전에 창건한 정자로,

백운정에서 내려다 보면 언덕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반변천과 주변 풍광이 눈길을 시원하게 합니다.

 

 

백운정 위치는 풍수에서 가히 정자를 세울만한 높은 언덕과 구비돌아가는 물,

그리고 먼 원경으로 문필봉이 보이고 백로가 날아드는 명당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이곳 일대는 임하구곡(臨河九曲)으로 하는데 백운정(白雲亭)이  제1곡(曲)에 해당하며, 

임하 앞이 반변천이라 임하구곡은 반변구곡(泮邊九曲) 이라고도 합니다.

 

 

 

후학 양성에 매진했던 구봉(龜峯) 김수일(金守一)의 정자로,

가고 싶어도 접근성이 어려워 벼루고 벼루어 찾은 곳으로,

안동에는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이름난 정자가 많지만,  

만휴정(晩休亭), 고산정(孤山亭)과 더불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정자 "백운정 (白雲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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