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을 여행 하면서,

오대산 월정사에 이어 상원사(上院寺)를 찾았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의,

오대산(五臺山) 자락에 있는 상원사(上院寺)의 입구 이며,

 

 

 

입구를 들어서면 길옆에 높이 1m 남짓한 크기에 포개 놓은 비석같아 보이는 돌이 있어,

조선의 제 7대 왕 세조(世祖)가 목욕할  때 의관을 벗어 걸어 놓았던 "관대걸이"라고 합니다.

 

 

 

상원사(上院寺)로 들어가는 길도,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에는 비할바는 아니지만 제법 운치가 있습니다.

 

 

 

그리 멀지않은 길을 오르는 중간에는,

마치 껴안고 있는듯한 형상의 나무 모습도 보이고..

 

 

 

숲길을 조금 걸으면 계단이 보이고 사찰의 경내에 가까워 졌슴을 알게되며,

오래전에 이곳을 찾았을때는 계단의 왼쪽으로 도로가 있어,

그곳에 있는 작은 주차장을 통해 사찰의 옆쪽에서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지금은 달라진 모습입니다.

 

 

 

계단을 오르기전 오른쪽 공터앞에 비석이 서있어,

 

 

 

삼화상 부도전(三和尙 浮屠田)으로,

상원사(上院寺)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는 세분의 큰스님을 모신 부도전(浮屠田)임을 알려 줍니다.

 

 

 

계단을 오르니 한줄로 나란이 부도와 비석이 서있어,

앞에서 부터 희찬 스님, 가운데 탄허 스님, 맨 뒤쪽이 방한암 스님의 부도로,

 

 

 

만화당(萬化堂) 희찬(喜讚)스님의 부도로,

 

 

 

스님 의 법명은 희찬(喜贊·喜燦), 법호는 만화(萬化), 속명은 장인찬(張寅燦)이며,

1922년7월1일 평남 덕천군 풍덕면에서 출생하여 향리에서 서당 공부를 하고, 풍덕간이학교를 졸업하였고,

1939년(18세) 오대산 상원사에 입산 탄허스님을 은사로 출가 하였습니다.

그해 8월22일 한암(漢岩)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이후 한암, 탄허대종사 회상에서 수행 하였으며,

1945년 상원사 원주, 1949년 노사인 한암스님 시봉을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1950년 상원사에서 한암스님을 모시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1951년 한암선사가 열반하자 시자(侍者)로서 열반을 목도 하였고'

1953년 상원사 주지, 1955년 월정사 주지에 취임하였으며, 1956년 탄허스님을 도와서 오대산에 수도원을 개설 하였습니다.

1965년 월정사 대웅전 중창시 목재 벌채로 수차례 입건 구속되는 진통을 겪으며 1969년 월정사 대웅전이 준공되었으며,

1970년 다시 세 번째 월정사 주지에 취임하여 보장각, 천왕문, 진영각, 서당, 용금루, 해행당, 설선당 등을 준공 하였고,

1981년 월정사 회주로 추대되었으며, 1982년 상원사에서 수행정진하다가 1983년12월11일 세수 62세, 법랍 44세로 입적 하였습니다.

 

 

 

가운데 있는 탄허당(呑虛堂) 택성(宅成) 대종사의 부도이며,

 

 

 

탄허(呑虛,1913~1983) 큰스님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승려이자 학자로,

전라북도 김제 출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간산(艮山)이며 속명은 김금택(金金鐸)으로 법명은 택성(宅成·鐸聲), 법호는 탄허(呑虛)로,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이며, 둘째 아들로 태어 났으며,

불교에 입문하기 전 기호학파의 최익현(崔益鉉) 계통에서 한학(漢學)을 수학하여 도학(道學)에도 상당한 경지를 이루었으며,

1934년 22세에 오대산 상원사(上院寺)로 출가하여 3년간 묵언(默言) 참선의 용맹정진으로 수행했으며 15년간 오대산 동구 밖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월정사(月精寺) 조실(祖室)과 오대산 연수원장으로서 승려들을 지도했고,

1964년에서 1971년까지 동국대학교 대학선원장을 역임하였고 1967년 조계종 초대 중앙역경원장을 지내면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한글 번역 작업에 직접 투신하여 『한글대장경』을 간행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동양 철학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던 탄허는 해외의 석학들을 위해 일본 도쿄대학의 동양학 세미나에서 화엄학에 관한 특강을 하였고,

국립타이완대학교의 심포지엄에서 비교종교에 대한 특강을 하여 세계적인 석학으로 추앙 받았습니다.

1983년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方山窟)에서 세수(世壽) 71세, 법랍(法臘) 49세로 입적 하였습니다.

 

 

 

왼쪽에 자리한 방한암 선사(方漢巖 禪師)의 부도로,

 

 

 

방중원(方重遠: 1876~1951)의 법호는 한암(漢巖)이며, 본관은 온양이며,

흔히 방한암 선사로 불리며, 박한영사와 경허성우와 함께 근세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승려로 한국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법명은 중원(重遠), 법호는 한암(漢巖), 속성은 방(方)씨로 1876년 강원도 화천군에서 태어나 9세에 서당에서 공부했으며,

22세에 금강산 장안사에서 수도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성주 청암사 수도암에서 경허성우의 설법을 들었고 30세가 되던 1905년에는 양산 통도사 내원선원의 관실이 되었으며,

1910년에 맹산 우두암에서 수도했고 개오의 경지에 들었습니다.

금강산 지장암, 서울의 봉은사를 돌다가 50세 때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가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한번도 동구 밖을 나가지 않았으며,

1951년 가벼운 병을 얻은 지 1주일 만에 76세로 입적하였는데,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신 뒤 가사 장삼을 정제하고 선상에 단정히 앉아 참선하는 듯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방한암(方漢巖) 선사(禪師)의 유명한 일화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 게릴라군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월정사에 불을 질러 태운 국군이 상원사까지 태워 없애려 했을 때,

승려들에게 절을 불태워야 하니 하산하라고 권하는 군인들 앞에서 가사를 갖추어 입고 법당에 정좌해,

"내 몸을 함께 태워 부처께 공양하겠다"며 하산을 거부하여,

군인들이 하는 수 없이 절의 모든 문짝을 떼어 쌓아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내어서 절이 불타는 것처럼 보이게 한 뒤 철수했고,

그리하여 상원사는 불타지 않고 보존될수 있었습니다.

 

 

 

삼화상 부도전(三和尙 浮屠田)을 돌아보고,

사찰로 오르기 위해 다시 계단앞으로 돌아 왔습니다.

 

 

 

상원사(上院寺)는 신라 705년에 성덕왕이 진여원(眞如院)으로 창건하고,

이후 고려 1376년에 영암이 중창하여 상원사가 되었으며,

 

1464년(세조 10) 왕이 이곳에 행차했다가 문수보살을 배알한 후 고양이 덕분에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건졌다고 하는 일화가 전하는데,

 

이로 인해 다음해에 중창하고 전답을 하사했으며 이것을 영산부원군 김수온(金守溫)에게 기록하도록 하였고,

 

1469년(예종 1)에 세조의 원찰이 되었으며 1904년에 선원을 개설하고 1907년에 수월화상이 주석하면서 선풍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굽어진 계단을 오르다 보면 우뚝 서있는 "청풍루"를 만나게 되고,

 

 

 

청풍루 아래를 지나는 가운데,

"이 뭣고?" 화두가 씌여진 반사경을 볼수 있는데..

 

 

 

이곳을 들여다보면 천정에 있는 "문수보살 36 화현도"가 투영되어 들어 오는데,

사찰에서 물에 비춰진 그림자로 수행자들에게 끊임없이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음에 이르기를 묵언으로 촉구하는 영지(影池)를 떠오르게 합니다.

 

 

 

청풍루를 나서면 다시 돌계단이 보이고,

 

 

 

계단의 왼쪽에 어린 부처님상이 있어 문수보살을 표현한것으로 보여지는데,

문수보살(文殊菩薩)은 불교의 대승보살(大乘菩薩) 가운데 하나로 지혜를 완전히 갖춘 보살로서,

석가모니불의 지덕과 체덕을 맡아서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돕기 위해 나타난 보살이며,

우리 나라에 문수신앙을 최초로 전한 이는 자장율사이며 신라의 경흥대덕(憬興大德)이 문수의 경책을 받은 일이나,

연회국사(緣會國師)가 문수보살을 친견한 이야기,

신라의 태자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이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한 오방위신앙을 정립시킨 기록이 있으며,

경순왕이 문수보살의 화신인 줄 모르고 공양 올리기를 꺼린 설화, 문수보살과 함께 수도했던 고려 고승 3인에 얽힌 설화..

세조의 병을 고쳐 준 문수동자의 설화, 문수동자의 경책을 들은 환우화상 이야기, 땡추로 변화한 문수보살,

하동 칠불암의 문수동자 설화 등 많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문수전(文殊殿) 앞에는 근자에 세운 오대보탑 (五臺寶搭)이 서있어,

상원사에 세워졌던 영산전 앞 오층보탑이 세월을 먹고 훼손되어 지금에 이르러,

인광 스님이 화엄사상을 담아 현대적 해석으로 구상하여 경주 남산 화강암으로 2년 여 세월을 다듬어 2012년 6월 23일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오대보탑 (五臺寶搭)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본래 주인공(一)으로 탑과 마주보며 하나 되어 둘(二)이 없게 되고,

三, 四로(3~三寶物을 모심, 4~四角) 몸을 불려(四方에 너비 3m 45cm) 五, 六(5~五臺, 五層, 6~일층 몸통에 六化現像)으로,

하늘을 잇는 높이(5m 67cm)를 만들며 불보살상 칠존(7~비로자나불, 석가세존사리. 오대보살상) 으로,

세계를 장엄하고 팔방연연화좌(八方蓮花座)로 하늘을(8~팔부신장) 담아 구단경계(9~九段境界)로 척량을 바로 새우니,

찰나에 둥근 마음의 달(10~영)이 된다는 발원을 중심으로 구상 하였다고 합니다.

 

 

 

상원사의 주불전 격인 문수전(文殊殿) 앞마당에는 석가탄신일을 맞을 연등으로 화려하며,

 

 

 

문수전(文殊殿)의 현판이며,

전해오는 이야기로 세조는 피부에 고름이 생기다가 문둥병으로 이어 졌는데,

전설에 의하면 단종의 모친인 현덕왕후의 원혼이 세조의 꿈에 나타나 내 아들을 죽인 원수라며 침을 뱉은 이후로 병증이 심해졌다 하며,

어의들도 치료를 못하자 그는 그 치료를 위해 온천욕을 즐겨 다녔으며 아산의 온양온천 등에 행궁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오대산 상원사 문수보살상 앞에서 100일 기도를 마치고 몸이 가려워 혼자 목욕을 하는데 근처에 동자승이 있어서 등을 밀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네가 나가서 행여나 사람을 만나더라도 상감 옥체에 손을 대고 흉한 종기를 씻어드렸다는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더니,

동자승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기를,

"잘 알겠습니다. 상감께서도 후일에 누구를 보시던지 오대산에 가서 문수동자를 친견했다는 말씀을 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현재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에는 세조가 보았다는 목조 문수동자상이 있습니다.

 

 

 

문수전(文殊殿)에는 국보 제221호로 지정된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平昌上院寺木造文殊童子坐象)"이 있어,

1466년에 제작된 높이 98cm의  문수동자상은 상원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주처(住處)임을 증명하는 역사적 산물로 이 상은 세조가 직접 친견하였다는 오대산 문수동자의 진상(眞像)을 조각한 목조좌상으로,

동자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보물 제793호)에 의하면 세조의 딸인 의숙공주(懿淑公主)와 그의 남편인 정현조가 득남을 빌기 위하여,

오대산 문수사에 문수보살상 등 8구의 보살상과 나한상 등을 조성하여 봉안했다고 되어 있어,

어느 때인가 상원사로 옮겨진 것으로 보이며 서대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목각의 대세지보살상(大勢至菩薩像)이 오른쪽에 함께 봉안되어 있습니다.

 

 

 

목조문수동자좌상(平昌上院寺木造文殊童子坐象)의 보물 제793호 복장유물로,

세조는 화공을 불러 그가 본 모습의 동자상을 그리게 하여, 그것을 기본으로 나무로 동자상을 조각한 다음,

그 속에 피부병을 고쳐달라는 간절한 염원으로 그가 입었던 피고름이 묻은 저고리와 그타 복장물을 넣고 상원사에 보냈는 데,

이것이 오늘의 국보 221호 목조문수동자좌상이라 합니다.

1984 년 그 복장유물들이 발견되어 일괄로 보물793 호로 지정하여 월정사 성보 박물관에 보존 관리하고 있는데, 

“KBS 역사 스폐샬”에서 이 피 묻은 저고리를 주제로 방송하기도 하였습니다.

 

 

 

문수전(文殊殿)으로 오르는 계단옆에는 고양이상인 묘석상(猫石像)이 있어,

세조(世祖)가 상원사에 도착하여 법당에서 부처님에게 예배를 올리려고 하는데,

고양이가  나타나 세조의 용포자락을  물고 끌어 당겨 밖으로 나가려고 하므로 이상하게 여겨, 

법당을 수색하니 암살지들을 찾아내게되어 화를 면하였다고 하며,

고양이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생각으로 상원사를 중창 했으며 전국사찰에 고양이를 보호하도록 명을 내리고,

고양이를 사육하는 비용으로 따로 전답을 내려 최근까지 서울강남의 봉은사 밭을 묘전이라 불렀다고 하며, 

속설에 의하면 "공양미"란 말도 고양이를 위한 쌀이란 말이 변하여 생겼다는 설도 있습니다.

 

 

 

문수전앞 왼쪽에 동정각(動政閣)이 있어,

 

 

 

국보 제36호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으로,

높이 167㎝, 입지름 91cm의 크기로 신라 성덕왕 24년에 평사 피각군이 명하여 만들어진 동종이며,

현재 우리나라에 전하고 있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725년에 제작되었으며,

한국종의 형식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뛰어난 주조기술과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우수한 종 입니다.

원래 어느 절에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경상북도 안동의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안동 누문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 국명에 의해 상원사로 옮겼다고 합니다.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의 정상에는 용뉴와 용통이 있는데, 용뉴는 용의 입부분과 발끝이 종과 연결되어 있고,

용통의 표면에는 앙련과 복련을 장식하고 그 사이에 연화무늬와 당초무늬를 조각했으며 종의 몸체는 배가 약간 불룩하고 밑부분이 좁아지는 형태로,

종어깨(鐘肩)와 유곽 및 종입구(鐘口)에 문양대를 돌렸는데 연주무늬(連珠紋)를 가장자리에 돌리고,

그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반원의 테두리 안에 주악비천상과 당초무늬를 장식 했으며,

종어깨에 붙여서 배치한 4개의 유곽 안에는 각각 연화좌 가운데에서 돋아난 유(乳)를 9개 배치했으며 유의 표면에도 꽃무늬를 장식 했습니다.

 

 

 

종의 정상에는 약동하는 용이 조각되어 있고, 그 옆에는 연꽃이 조각된 음통이 붙어 있으며,

용뉴 좌우에는 70자에 달하는 명문이 해서체로 음각되어 있는데,

첫 머리에"開元十三年乙丑三月八日種成記之"라고 되어 있어 신라 선덕여왕24년(725)에 조성 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은 아름다운 종으로서 청아한 소리 또한 이루 비길 데 없다고 하며,

음통이 있는 용뉴 아래 종신은 약간 길쭉하게 배를 불리다 끝에서 안으로 살짝 오무라 든 형태가 이상적인 비례감과 안정감 있는 조형미를 이루었고,

풍부한 량감과 함께 세부적인 묘사 수법이 사실적이며,

 

 

 

종 몸체의 서로 반대되는 2곳에는 구름 위에서 공후(空篌)와 생(笙)을 각각 연주하는 비천상을 2구씩 양주했는데,

하늘 위로 날려올라가는 천의의 율동적인 선과, 악기를 연주하는 자연스러운 자세의 양감 있는 표현은,

통일신라의 조각이 지닌 사실미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은 현재,

종 입구에 작은 균열이 생겨 수리를 거친 뒤 모작품을 만들어 사용하며 이 종은 치지 않고 보존하고 있습니다.

 

 

 

동정각(動政閣)에는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곁에 동종(銅鐘)의 비천상 모형을 볼수 있고,

 

 

 

동종(銅鐘)을 대신하여 같은 크기의 모작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잠시 눈을 돌려 상원사(上院寺)에서 내려다 보이는 오대산(五臺山)의 풍광을 감상 하고,

 

 

 

강원도 깊은 산중의 높은곳여서 인지,

뒤늦게 피어난 백목련이 더욱 화사하고 깨끗해 보입니다.

 

 

 

종무원 숙소및 기도객들의 숙소로​ 이용되는 건물이라는 백련당(白蓮堂)으로,

 

 

 

백련당의 누각 만화루 아래에는 달마상이 있어,

 

 

 

인도에서 왔다는 달마선사의 이국적인 얼굴 형상을 자꾸만 들여다 보게되고,

 

 

 

백련당(白蓮堂)앞 작은 화단에서는 서정적인 모습도 볼수 있습니다.

 

 

 

백련당 옆에는 갈증을 달래주는 상원사의 지혜수를 마실 수 있는 곳인 수곽(水廓)이 자리를 잡고 있어,

 

 

 

시원하게 갈증을 보낼수 있고,

 

 

 

백련당을 지나와 보니,

오래전에 상원사를 찾았을때 이길로 들어왔던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는 길을 잡습니다.

 

 

 

오대산(五臺山)의 중대(中臺)의 깊은 산중에 자리잡아,

문수신앙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살펴볼수 있으며,

현존하는 오래된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을 찾을수 있었던 상원사(上院寺)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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