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거창의 정자 문화재 탐방에서,

경남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심소정(心蘇亭)"을 찾았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8호로 지정된 거창 심소정(心蘇亭)은,

경남 거창군 남하면의 황강변 산기슭에 자리해 있으며,

 

 

 

심소정(心蘇亭)의 권역으로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화려한 단청의 2층 누각인 소심루(小心樓)를 먼저 만나게 되고,

 

 

 

석주위에 올려진 누각형태인 소심루(小心樓)이며,

뒤편의 언덕에 심소정(心蘇亭)이 자리해 있습니다.

 

 

 

누각의 전면에 있는 소심루(小心樓)의 현판을 올려다 보고 누각의 마루로 올라봅니다.

 

 

 

2층 누각인 소심루(小心樓)는 단청이 아주 화려하며 많은 조각들을 볼수있는데,

마루에서 올려다 보면 황룡과 청룡이 서로 마주하고 있으며,

 

 

 

황룡 아래의 보에는 호랑이의 그림을 볼수 있고,

 

 

 

청룡 아래에는 용들의 변화무쌍한 모양을 그려둔 모습이 들어 옵니다.

 

 

 

팔작지붕의 우물천정 부분에는 백학이 그려져 있고,

 

 

 

처마 안쪽의 보에는 여러 그림들을 볼수 있어,

풍광 좋은곳에 자리한 누정들이 있고..

 

 

 

산수 수려한곳에 자리한 아담한 누각에 오르는 선비와,

누구를 기다리는지 선비를 모신 동자인듯한 모습도 표현되어 있고,

 

 

 

누 마루레 올라 선비들이 모여 시(詩)를 짓고 풍류를 즐기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말을 타고 온듯 누각아래에 말이 두필 있고,

마루에는 한사람을 향하여 여러명이 집중하고 있는 모습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는 선비의 모습으로 짐작이 됩니다.

 

 

 

소심루(小心樓)는 현판 하나 뿐이고 시판이나 기문은 보이지 않지만 화려한 단청을 가진 누각으로,

심소정 건립 당시에는 없던 것으로 후대에 지은 것이라 하며,

소심루(小心樓)와 관련한 것으로는 곽종석(郭鍾錫)의 소심재기(小心齋記)가 전한다고 합니다.

 

 

 

소심루에서 심소정(心蘇亭)으로 오르는 초입에는,

"심소정전현추모비(心穌亭前賢追慕碑)"를 볼수 있는데,

정자 이름인 심소정(心蘇亭)과 비석의 심소정(心穌亭)에서 "소"의 한자가 서로 다름을 볼수 있습니다.

 

 

 

돌계단을 통하여 심소정(心蘇亭)으로 오릅니다.

 

 

 

정자로 오르면서 화려한 단청의 누각 소심루(小心樓)를 내려다 봅니다.

 

 

 

심소정(心蘇亭)으로 오르면 정자앞을 지키듯 비석이 한기 서 있어,

 

 

 

"단성현감윤공유허비(丹城縣監尹公遺墟碑)"로,

1820년(순조 20)에 세웠으며 앞면에는 "고현감화곡윤공지단(故縣監華谷尹公之壇)"이라 새겨저 있어,

"화곡(華谷)"은 정자의 주인인 윤자선(尹孜善)의 호 이며,

비석은 거북 좌대의 귀부(龜趺) 위에 설치 되어 있습니다.

 

 

 

심소정(心蘇亭)은 조선 세종 때 북벌(北伐)의 공을 세우고 단성현감을 지낸 화곡(華谷) 윤자선(尹孜善)이,

1450년에 낙향하여 은거한 곳으로,

 1459년(세조 4)에 심연재心淵齋와 심소정(心蘇亭)을 건립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수양한 곳으로,

지금의 심소정 건물은 2층 다락집으로 1757년(영조 33)에 윤자선의 외손인 완산 이씨와 박씨들이,

근처의 폐사된 청련암의 건물을 이건하여 중수한 것이라고 합니다.

 

 

 

정자의 마루아래는 지형에 따라 높이가 다른 기둥들의 모습을 볼수가 있고,

온돌방에 불을 넣는 아궁이의 모습도 들어 옵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전면에 툇마루를 두고 좌측 2칸은 대청, 우측 2칸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계자난간이 있는 누마루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홑처마 팔작지붕의 구조로 경사지에 건립되어,

평면을 수평으로 맞추기 위해 정면의 누하주를 길게 시공하여 마치 중층 누각처럼 보입니다.

 

 

 

심소정(心蘇亭)의 평면은 좌측부터 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포 양식은 장여수장집이지만 마루와 툇마루 부분에는 2익공처럼 장식해 놓았고,

 상부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5량가이며 단청이 시문(施紋)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정자의 규모와 내외부의 공간구성이 주변의 자연경관에 잘 조화된 목조와가 건물입니다.

 

 

 

시원한 초서체의 "심소정(心蘇亭)" 현판으로 "마음을 되살리자"는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마정자의 마루에는 심소정에서 강학하였던 교우(膠宇) 윤주하(尹胄夏)가 찬한,

심소정원운(心穌亭原韻) 시판을 비롯하여 기문과 시판들을 볼수있어,

 

 

 

심소정중수운(心蘇亭重修韻)의 편액이며,

 

 

 

또다른 심소정중수운(心蘇亭重修韻)이 하나더 있습니다.

 

 

 

심소정운(心蘇亭韻)의 편액도 볼수 있으며,

 

 

 

심소정기(心蘇亭記)의 편액이 있습니다.

 

 

 

팔작지붕의 천장인 연등천장이 보이고, 

두 기둥 위를 가로지른 대들보 위에는 작은 서함(書函)이 설치되어 있어,

 

 

 

일반적으로 정자에서 볼수 없었던 서함(書函)으로,

시회(詩會) 같은 모임을 위해 종이나 벼루, 먹 등 문방용품과 서책들을 넣어 두는 용도로 보여 지는데,

일종의 작은 다락이라 할수있는 서함(書函)으로 심소정(心蘇亭)의 특징중 하나 입니다.

 

 

 

심소정(心蘇亭)은 1919년 지방 유림들이 모여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를 의논한 곳이며,

현 거창 초등학교의 전신인 "창남의숙(昌南義塾)"을 세워 교육하던 곳으로,

 파리장서사건은 1919년 김창숙(金昌淑) 등이 주동이 되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던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탄원서(獨立歎願書)를 보냈다가 발각된 사건으로,

 

 

 

3 1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의 유림(儒林)대표 곽종석, 김복한 등 137명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유림단 탄원서를 작성 서명하여 이를 김창숙이 상하이(上海)에서 파리의 만국평화회의에 우송 하였으나,

일경(日警)에게 발각되어 곽종삭 이하 대부분의 유림대표가 체포되었으며,

일부는 국외로 망명 하였고 그 후 곽종석 김복한, 하용제 등은 감옥에서 숨지고 그 밖의 인사들도 일경의 고문에 못 이겨 죽거나 처형 되었습니다.

 

 

 

심소정(心蘇亭)의 마루에서 아래에 있는 소심루(小心樓)를 내려다 봅니다.

 

 

 

심소정(心蘇亭)은 황강과 대곡천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낮은 구릉의 서남쪽 계곡부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으며,

경사지에 위치하기 때문에 계단상으로 대지를 정리하여 높은 곳에 심소정을 낮은 곳에는 소심루(小心樓)를 두었는데,

수경관이 좋은 황강을 직접 바라보지 않게 자리하여 지은 것이 특이 합니다.

 

 

 

정자에서 내려와 멋들어진 소나무 아래로 황강이 흐르고,

그 너머로 멀리 거창(居昌) 읍내의 모습이 들어 옵니다.

 

 

 

정자 주변을 한바퀴 돌아 봅니다.

 

 

 

심소정(心蘇亭) 곁에 있는 노거수 소나무에는,

꽃의 모양이 하늘을 나는 제비처럼 생겨서, 또는 제비가 돌아오는 삼짇날에 꽃이 핀다는..

제비꽃이 자리잡고 피어있어 눈길을 잡습니다.

 

 

 

황강변 산기슭에 자리잡아,

형식과 공간구성, 기법 등이 교과서 같이 적용된 정자 문화재로 한옥의 백미를 보여주며,

화곡(華谷) 윤자선(尹孜善)의 유허를 살필수 있는곳으로,

경상남도 거창의 정자 문화재, 심소정(心蘇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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