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유적을 살필수 있는 충남 부여 여행에서,

사비백제의 도성(都城)인 부소산성(扶蘇山城)을 찾았습니다.

 

대한민국 사적 제5호로 지정된 부소산성(扶蘇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소재하며

사비성, 소부리성 으로도 불리었는데,

부소산성 일원은 지역이 너른편이라 입구에서 반월루까지,

반월루에서 구드래나루 까지 두편으로 나누어 돌아 보기로 하고,

입구인 "매표소에서 반월루까지"를 먼저 시작 합니다.

 

 

 

부소산성(扶蘇山城)에 들어가기전,

산성의 배치도를 살펴보고 동선도 미리 보아 둡니다.

 

 

 

부소산성(扶蘇山城)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중층의 누각으로 통하게 해두어 마치 관청으로 들어가는듯 하며,

매표소에서 표를 구하여 들어갈수 있습니다.

 

 

 

입구 누각의 부소산문(扶蘇山門) 현판으로 무림(霧林) 김영기의 글씨이며,

부소산성(扶蘇山城)은 부여의 대표관광지이자 부여10경 중 하나로 역사문화관광지로서,

부여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제일 먼저 찾는 부여의 명소중 하나 입니다.

 

 

 

부소산성(扶蘇山城)은 백제의 도성(都城)이었으며 백제 성왕때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여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휘어감으며 흐르는 백마강에 접해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을 1차로 축조하고, 

그 주위에 포곡식 산성을 축조한 복합식 산성으로 동, 서, 남문 터가 남아 있으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사비성(泗沘城), 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기록 되어 있으며,

부소산성은 주위의 보조산성인 청산성, 청마산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했으며,

평시에는 왕과 귀족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는 비원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산성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되는 부소산의 남쪽에 있는 삼충사(三忠祠)로,

 

 

 

외삼문인 의열문(義烈門)을 지나면 다시 중문의 삼문을 만나게 되며,

외문과 중문 사이는 시원하고 깔끔하게 정리가 잘되어 있습니다.

 

 

 

돌계단을 통하여 중문을 올라 봅니다.

 

 

 

중문에는 충의문(忠義門)의 현판을 볼수있고,

 

 

 

중문을 지나면 정면 3칸의 팔작지붕인 삼충사(三忠祠)가 있어,

사당은1957년에 건립되었으며 세 분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매년 10월 백제문화제가 열릴 때마다 이곳에서 제향을 올리고 우국충절의 정신을 되새기는 곳 입니다.

 

 

 

삼충사(三忠祠)의 현판이며,

 

 

 

삼충사(三忠祠)는 백제말 세분의 충신을 모신 사당으로,

성충(成忠,?∼656)은 백제 의자왕 때 좌평(佐平)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가 투옥되어 곡기를 끊어 죽었고,

흥수(興首)는 나당연합군이 공격해 오자 의자왕에게 탄현(炭峴)을 지키라고 간곡하게 당부한 신하이며

계백(階伯,?∼660)은 신라 김유신(金庾信)의 5만군이 황산벌로 쳐들어오자 5천 결사대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장군입니다.

 

 

 

 

마침 사당안에는 문화해설사 분이 견학온 학생들에게 역사 강의를 하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부소산성은 2002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었고,

백제의 전설인 낙화암의 일출을 보기 위해 관광기자들이 많이 찾는 등 수려한 주변 전경과 함께,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역사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어 역사문화 교육의 산 교육장으로 추천 할 만한 곳입니다.

 

 

 

산성을 오르면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누각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1호로 지정된 영일루(迎日樓)로,

 

 

 

해를 맞이 한다는 영일루(迎日樓)의 현판으로,

영(迎)과 루(樓)자는 크게 하고 가운데 일(日)자는 작은데 산봉우리 사이에 해가 떠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하며,

부여군 홍산면 출신의 원곡(原谷) 김기승(1909~2000)옹의 글씨 입니다.

 

 

 

누각의 한쪽에 나있는 나무계단을 통하여 마루로 올라 봅니다.

 

 

 

부소산(扶蘇山)은 백마강 변에 자리잡은 106m 높이의 부여의 진산(鎭山)으로,

동쪽의 봉우리를 영월대(迎月臺)라 하고 서쪽의 봉우리를 송월대(送月臺)라 이르는데,

백제왕들은 영월대에서 떠오르는 달을 맞았고 송월대에서 지는 달을 보았다고 하며,

영월대는 해를 맞는 곳이기도 하여 영일대(迎日臺)라고도 하였습니다.

고종 8년(1871)에 당시 홍산 군수 정몽화가 지은 집홍정(集鴻亭)이라는 홍산 관아문루(官衙門樓)를 이곳에 옮겨,

"영일루(迎日樓)"라 개칭하여 부르고 있으며 이곳에서 계룡산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 보았다고 합니다. 

 

 

 

마루에 오르면 볼수있는 "인빈출일(寅賓出日)"의 현판으로,

"삼가 공경하면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는 서경의 요전에 나오는 귀절로,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서체로 청양 사람 정향(靜香) 조병호(趙柄鎬)의 글씨로 전하며,

 

 

 

한글로 씌여진 편액도 볼수 있습니다.

 

 

 

영일루의 마루위에서 보이는 용의 조각으로,

 

 

 

황룡으로 보이는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습니다.

 

 

 

영일루(迎日樓)의 마루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음 일정을 향해 길을 잡습니다.

 

 

 

지금의 영일루(迎日樓) 건물은 1964년 홍산관아의 문루를 옮긴 것라 합니다.

 

 

 

영일루에서 멀지 않은곳에 군창지(軍倉址) 동편유적이 있어,

1915년에 불에 탄 쌀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부소산성 군창지(扶蘇山城 軍倉址)충남 문화재자료 제 10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명 "만리창" 으로도 불렸던 유적지로,

 

 

 

부소산성 군창지(扶蘇山城 軍倉址)는 백제 시대에 군량을 비축하였던 군창지로,

지금도 1,300여 년 전의 탄화된 곡식의 알갱이가 나온다고 하며,

1981년, 1982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건물의 배치는 "ㅁ"자 모양으로,

가운데 공간을 두고 동서남북에 창고를 지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이곳에 건물을 세워 백제시대부터 자리 잡은 군창지를 다시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산책하듯 다시 가다보면,

 

 

 

부소산성 반월루를 만나게 되는데,

 

 

 

부소산성의 테뫼식 산성과 포곡식 산성이 만나는 등성이에 있는 반월루(半月樓)는,

1972년에 지은 2층누각으로 이곳에서는 부소산성 토성을 가장 아름답게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반월루(半月樓)의 현판은 임자년(壬子年) 김종필(金鍾泌) 전 국무총리의 글씨로,

임자년이면 1972년이며 얼마전 타계한 김종필(金鍾泌)씨는 이곳 부여 출신입니다. 

 

 

 

반월루는 지은지 오래지 않아 비지정 문화재 이지만,

백마강(白馬江)이 반달 모양으로 끼고 도는 부소산(扶蘇山) 남쪽 마루의 풍광 빼어난 곳에 자리해 있으며,

 

 

 

마루에에서 볼수있는 한글과 한문이 혼용된 반월루기(半月樓記)의 편액으로,

1972년 건축당시의 부여군수 정찬경(鄭燦璟)의 글 입니다.

 

 

 

반월루(半月樓)의 마루에서는, 

부여 시가지(市街地)와 백마강의 전경(全景)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전망대 못지않은 풍광을 보여 줍니다.

 

 

 

사비백제의 도성(都城)인 부소산성(扶蘇山城)을 찾아 ,

입구인 "매표소에서 반월루까지"를 돌아 보았습니다.

반월루에서 구드래나루 까지의 일정은 별도로 올리며 아래를 클릭 하시면 찾아 보실수 있습니다

http://gotn.tistory.com/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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