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천을 여행하면서,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산52-1에 위치하고 있는,
금수산 자락의 고찰, 제천 정방사(淨芳寺)를 찾았습니다.
정방사는 일반 사찰과 달리 산 정상의 암벽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어 차량으로 바로들어가지는 못하며,
정방사 주차장에서 차량이 다닐수있는 길을 10분정도 산책하듯 걸어서 오르면..
도로가 끝나며 사찰에서 짐을실어 올리는 용도인듯 레일이 보이며,
옆에 나있는 돌계단을 따라 조금 오르면,
마치 관문인듯 커다란 바위사이로 통로가 있어 들어가면 경내로 들어서게 되는데,
두개의 커다란 바위가 산문의 역활을 하는듯 하며,
바위 사이로 난길을 들어서면 야생 나리꽃이 반기듯 피어나 있어 산사를 찾는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정방사(淨芳寺)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물은,
정방사의 백미인 "해우소(解憂所)"로,
이곳 화장실에서 보이는 창너머의 청풍호 주변을 내려다 보는 풍경이,
"천상의 화장실" 외에 다른 표현이 없을 정도로 그 풍광이 천하에 으뜸으로,
여자용은 감히 들어가 볼수 없어 알수 없으나 남자용은 6칸으로 큰근심 1칸, 작은근심 5칸 입니다.
해우소(解憂所)에서 바라다 보이는 청풍호는,
세인의 삼라만상을 모두 잊게 할 정도로 전망이 좋습니다.
법당으로 향하는 초입에는 범종각(梵鐘樓)이 있고,
비천문 문양과 함께 정방사(淨芳寺)의 양각된 글씨가 보입니다.
범종각에서 등을 돌리면,
금수산 자락 신선봉 능선의 산 정상 암벽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는 정방사가 들어오고,
정방사(淨芳寺)는 신라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시대에 창건설도 있으며 현재는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이며 기도처로 유명 합니다.
"동국여지승람" 에는 산방사로 소개되어 있으며,
의상이 도를 얻은 후 절을 짓기 위하여 지팡이를 던지자 이곳에 날아가 꽂혀서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으며,
사전(寺傳)에 1825년 지금의 불당을 보수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아래쪽의 두 암자는 폐사되고 상암만이 제일 높은 봉우리 절벽에 의지해 남아 있다고 전하며,
1825년에 세워진 주 법당인 원통보전으로 정면 6칸 측면2칸으로 12칸의 목조 기와집 입니다.
정방사의 주법당인 원통보전 앞에서 보이는 청풍호와 주변 풍경은 별천지이며,
제천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堤川淨芳寺木造觀音普薩坐像─腹臟遺物)은,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관음보살좌상과 그 안에서 나온 유물들로,
복장이란 불교의 교리 체계를 집약시켜 구성한 상징적인 물품들을 부처상의 뱃속에 넣음으로써,
부처의 생명력과 신성성(神聖性)을 높이는 것이며,
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普薩坐像)은 정방사의 원통보전에 주불로 모셔져 있으며,
비교적 작은 규모이나 전형적인 조선 중기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머리 정면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고 신체는 비례가 알맞으며,
옷은 오른쪽 어깨를 반달형으로 덮은 형식을 보이며 손은 왼손을 들고 오른손을 내리고 있는데,
아미타삼존불의 좌협시보살로서 만든 것을 알 수 있으며,
불상은 문화재로 지정된 직후 도난당하여 현재까지 행방을 알 수 없어 현재 사찰측에서는 모습을 본뜬 모사품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법당의 벽에서는달마선사의 소림사에서 면벽9년의 정진을하는 모습의 그림이 있고,
사찰 뒤에는 법당 지붕의 3분의 1을 뒤덮은 거대한 암벽이 있으며,
절벽아래 바위틈에는 약수가 있어,
약수 옆에는 치성을 드리는 단을 둔 모습이 보이고,
절벽 틈의 석간수는 정방사의 별미로,
갈증을 잊게 할 정도로 약수가 차고 달콤한 맛으로,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나온다고 합니다.
절벽아래 약수터를 나와,
의상대 바위 아래 자리한 원통보전의 주변을 올려다 봅니다.
원통보전에서 오른쪽에는 해수관음보살입상(海水觀音普薩立像)이 청풍호를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해수(海水)는 바다물이라는 뜻이고 관음(寬音)이란 관세음 보살님의 약칭이니,
바다에 계시는 아주 큰 관세음보살님이란 뜻입니다.
불경에 이르기를,
관세음 보살님은 바닷가 외로운 곳(海岸孤絶處)에 상주하신다고 하며,
우리나라 바닷가의 유명사찰인 강화 보문사, 낙산사, 남해보리암, 부산의 해동용궁사등에서 볼수있는데,
청풍호가 "내륙의 바다" 라고 불리는 점을 감안하면 이곳에 해수관음보살입상이 있는 것도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해수관음보살입상을 지나 오솔길의 산길로 길을 잡으면,
집채만한 큰바위앞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지장전이 있어,
지장전(地藏殿)의 현판이며,
지장전(地藏殿)에서 내려다 보이는 청풍호와,
호반을 빙 둘러선 산들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지장전(地藏殿) 안에는 기도 하시는 분이 계시고,
일반적으로 법당에는 부처님 후면엔 탱화로 조성이 되어있는데,
이곳은 자연 암벽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을 그려두어 후불탱화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나쁜 꿈에 시달리는 자 등의 구원자로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자의 영혼을 모두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하며,
지장보살은 삭발 승려로, 다른 보살에게서 찾기 어려운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성불(成佛)을 포기한 보살로,
불교의 궁극적인 이상은 성불이고 모든 중생의 성불은 부처가 보장하였지만 지장보살만은 예외 입니다.
지장보살(地藏菩薩)상이 우리 나라에서는 석장(錫杖)을 짚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는데,
이는 "연명지장경(延命地藏經)"에 근거를 두었다고 합니다,
지장전 옆에는 소각장으로 보이는 벽돌로된 구조물이 있어,
본당이 아닌 작은 전각 옆에 소각장이 있어 의아한데 발원문등을 소각하는 곳으로 여겨 집니다.
정방사(淨芳寺) 창건에 읽힌 의상조사와 지팡이의 설화가 전해오고 있는데,
"신라시대 의상대사의 문하에는 여러 제자가 있었다.
그 중에 정원(淨圓)이라는 제자가 십여 년이나 천하를 두루 다니며 공부를 하여 세상사가 모두 무상(無常)함을 깨닫고,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펴고자 스승을 찾아 다녔다.
수소문 끝에 스승이 원주에 있는 어느 토굴에서 수행하고 계심을 알고 대사를 뵈러가니, 스승은 큰 반석에 앉아 정진을 하고 계셨다.
정원은 스승 앞에 나아가 절을 하고 여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고자 하옵니다" 스승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정원이 다시 여쭈었다.
"십여 년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을 하다 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간을 떠나지 않았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정원이 이렇게 말씀 드리고 다시 삼배 합장 하니,
그제서야 스승인 의상대사께서 "너의 원이라면 이지팡이의 뒤를 따라가다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지어 불법을 홍포하여라,
산 밑 마을 윤씨 댁을 찾으면 너의 뜻을 이루리라" 하셨다.
정원이 고개를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니 스승께서 던진 지팡이(석장)가 하늘에 둥둥 떠서 남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며칠동안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뒤를 따르니 지금의 정방사 자리에서 멈추어서는 것이 아닌가.
산세는 신령스러워 흡사 범왕궁(梵王宮)의 자리와도 같았다.
정원은 즉시 산 밑 마을의 윤씨 댁을 찾아 그 뜻을 전하니,
주인은 "어젯밤 꿈에 의상이라는 스님이 흰구름을 타고 우리 집에 오셔서 "내가 그대의 전생(前生)을 잘 알고 있고 불연(佛緣)이 있어 말하는 것이니,
내일 어떤 스님이 오거든 절 짓는데 도와 주길 바라오" 하더니 구름을 타고 가셨습니다" 하였다.
이러한 인연(因緣)으로 창건(創建)된 사찰은 정원스님의 "정(淨)" 자와 아름다운 산세를 지녔다는 뜻의 "방(芳)"자를 써서 정방사(淨芳寺)라고 하였다."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정방사를 돌아보고 왔던 길을 통하여 내려가는길을 잡습니다.
정방사(淨芳寺)가 있는 금수산은,
얼음골 계곡으로 유명한 "능강계곡"이 있는곳 입니다.
색다른 경험을 할수있는 해우소(解憂所)가 있고,
사찰의 전각 어디에서나 청풍호를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금수산 자락의 고찰 제천 "정방사(淨芳寺)"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