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을 여행하면서,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를 다녀왔습니다.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는 1980년부터 수몰 대상지역 안의 문화유적을 지표·발굴 조사 하였으며,

1983~1985년에 중요 문화재를 청풍문화재단지 및 주변 지역으로 이전하여 보존 관리하고 있는곳으로,

 

 

 

청풍(淸風)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물이 번성했던 곳으로 많은 문화 유적을 갖고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마을이 문화재와 함께 수몰될 위기에 있어,

 충청북도청에서는 1983년부터 3년간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원형대로 현재 위치에 이전, 복원하여,

충주호변에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를 조성 했습니다.

 

 

 

청풍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조성된 청풍명월의 본향 청풍문화재단지는 2016올해의 관광도시에 선정되었으며,

이곳에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선돌 등의 거석문화재와 민가·향교·관아 등을 나누어 복원·배치 했으며,

고가(古家) 내에는 생활유품 1,600여 점을 옛 풍속대로 전시해 놓았습니다.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의 문화재 등은 다양하고 많은 편여서,

한곳에 남기기에는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문화재들이 있어,

보다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 개별로 나누어 살펴 보기로 하며,

고택과 누각, 관청등은 별도로 나누고 이곳에는 문화재단지의 단편적이고 일반적인 부분만 묶어 보았습니다.

 

 

 

청풍문화재단지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으로,

문화재 단지로 이건하여 이곳에 복원한 고가들을 배경으로 "황초와우"와 "연자방아"가 있어,

황초와우는 제천, 단양지역의 한우로 신선하고 유익한 약초로 키운 이지역의 한우브랜드 입니다.

 

 

 

연자방아를 끌고 있는 소에 관한 전설이 안내문에 있어,

옥황상제와 인간 세상과의 전령으로 소가 뽑혔는데,

옥황상제가 사흘에 한번 식사를 하도록 하라고 인간에게 전하도록 했으나,

건망증이 심한 소가 그 지시를 "하루에 세 번씩 하라는것으로" 잘못 전달 하였고,

이로 인해 인간은 끼니를 채우기 위해 9배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는 인간에게 커다란 고통 였으며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준 대가로 소는 죽을 때까지 인간을 위해 일만 하고,

죽은 뒤에는 고기와 가죽까지 헌납하며 잘못을 사죄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자방아를 지나 금병헌으로 가는길목에는 "황금 두꺼비 바위"가 있어,

누런 두꺼비 입을 만지면 복을 받아간다고 하니 웃고 있는듯한 두꺼비의 커다란 입에 손을 넣어 봅니다.

 

 

 

"김중명과 호랑이"라는 조형물로,

김중명(1614~1685)은 청풍 김씨로 자는 이회 였으며,

아버지 김전은 병자호란 당시 빙고의 별제 벼슬을 지내던 사람으로,

남한산성으로 임금을 문안하려고 급히 가던 길에 청병을 만나 싸우다가 장열하게 전사하였으며 후에 호조참판으로 추증 받았습니다. 

김중명은 부친의 시신을 메고 양주 금촌까지 가서 장사를 지냈으며,

그 후 인조 을유년 무과에 올라 선전관에 발탁되었으며 과거에 급제한 후 성묘 갔던 길에 묘 뒤에 숨어있던 큰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는데..

 

 

 

따라온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하자,

김중명이 말에서 내려 고함을 크게 지르며 곧장 나아가  발로 그 호랑이를 차서 죽여 버리니 그 용맹에 탄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문을 들은 효종이 김중명의 힘을 시험해보려고 부르자,

중명은 모래흙 세 포대를 가져다 양쪽 겨드랑이에 한 포씩 끼고  나머지 한 포는 등에 지고 대궐 밖에서부터 전각까지 걸어오니,

임금이 매우 장하게 여겼으며,

그후 날로 총애가 깊어진 중명은 병마절도사의 벼슬에 까지 오르게 되었으나,

기해년에 효종임금이 승하하자 팔뚝을 어루만지며  “나의 일은 이제 모두 끝났구나!”라고 크게 울부짖더니,

결국은 청풍고을의 백치로 물러나 살다가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출처 : "매산집"(조선문신 홍직필(1776~1852)의 유고집 

 

 

 

김중명과 호랑이 조형물을 지나면,

청풍문화재단지에는 석물군 43점이 전시되어 있어 그중 비석군으로,

수몰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등을 한곳에 모아 놓았는데 옛 도호부 시절의 부사나 군수의 송덕비와 선정비, 열녀문, 공덕비 등이 있습니다.

 

 

 

1985년 12월 23일 문화재 단지 개장 기념으로,

선돌형태로 높이 8m, 둘레 85Cm의 크기로 세워둔 청풍명월(淸風明月)의 비로,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을 지닌 "청풍명월"은 양반 고장의 온화한 심성과 청풍명월의 본고장 임을 상징하며,

 

 

 

문화재 단지의 석물군(石物群) 가운데 고인돌도 볼수있어,

수몰이전 옛 청풍, 수산, 덕산, 한수지역에 산재 되어있는 고대사회의 장의(葬義) 풍속 무덤인 지석묘 5점으로,

남한강변의 거석문화에 대한 변천등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하였는데,

 

 

 

이곳의 고인돌에는 흔치 않은 하늘의 별자리를 새긴 성혈(星穴이 새겨져 있어,

성혈은 묻힌 사람의 영생불멸을 기원하여 새긴 것으로 보이며 별자리의 위치로 추측 됩니다.

 

 

 

석물군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는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이 있으며,

여래입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하트 소나무"를 볼수있어,

 

 

 

사랑품은 하트 소나무로,

청풍문화재단지 산책로에는 특이하게도 연리지, 하트 품은 소나무, S라인 벚나무 등 소소한 볼거리가 많은것도 특징이며,

 

 

 

사랑품은 하트 소나무 등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워서,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물 546호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堤川勿台里石造如來立像)의 전각으로,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던 청풍강 옆 대광사(大光寺)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던 입상으로,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 읍리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 하였으며,

 

 

 

이 불상은 높이가 341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10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이며 불신이 경직되어 보이지만,

풍만한 인상과 세밀한 조각 수법이 돋보이며 단아한 모습의 석불입상으로,

석조여래입상 앞에 놓여 있는 검고 둥근 돌은 "소원돌"로 불리는데,

본인의 나이만큼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으로 돌리면서 기원을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불상의 얼굴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코와 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인 인중(人中)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고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르키고 있으며,

옷은 양어깨를 덮은 법의인 통견의(通肩衣)를 걸치고 안에 속 내의를 받쳐입고 있으며 배에서 매듭을 지어 V자형으로 겹겹이 대좌까지 내려왔습니다.

 

 

 

문화재단지에는 여름의 시작임을 알리듯 배롱나무꽃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문화재단지 곳곳에는 전망 좋은곳에 초가지붕의 쉼터가 있어,

 

 

 

청풍대교와 함께 산으로 둘러쌓인 충주호의 아름다운 전경을 즐길수 있으며,

 

 

 

호반의 시원한 물분수가 더위를 날려버릴듯 합니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의 본향(本鄕)이라고도 불리는곳에 자리하여,

수몰지의 유물과 문화재들을 적절한 위치에 이전, 복원해두어..

원래 있었던 곳의 정취는 찾을수 없지만 하나의 단지에 모아두고 있어,

어린이들의 문화교육에도 좋으며 여유롭게 우리의 다양한 옛 문화를 살필수 있는곳으로,

충북 제천의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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