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의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 "후산리 고가(後山里 古家)"를 살펴봅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청풍후산리고가(淸風後山里古家)는,

제천 후산리 고가(堤川 後山里 古家)라 불리기도 하며,

 

 

 

후산리고가(後山里古家)를 들어서면 기와집을 배경으로,

초가로 이은 흙 담장에 " 싸리문" 으로도 불렀던 잡목의 가지를 엮어서 만든 문짝을 단 "사립문"이 있어,

옛날 시골의 정취를 물씬 풍겨 주며..

 

 

 

후산리고가(後山里古家)는 구한말인 19세기에 지어진 "ㄱ"자형의 팔작 기와집으로,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하여 동남을 향하고 있으며 대청의 우측에 2칸 크기의 건너방과 툇마루를 높이 하고 그 밑에 함실 아궁이를 두고 있고,

대청은 좌측으로 웃방이 있고 웃방에서 동쪽으로 꺾어 대청의 좌측으로 후퇴를 후보하여 제사방으로 꾸미고 있어,

전체적인 내부의 배치가 특이하며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산리고가(後山里古家)는 원래 제원군 후산리의 류영선 소유의 고가(古家)이었으나,

충주댐 수몰로 인하여 청풍문화재단지 내로 옮겨 복원한 주택이며 제헌의원 류홍열씨 후손 류영선씨가 거주했던 고가(古家)로,

원래 이 건물 배치는 후산리(後山里)에서 가장 높은 곳 위치하여 뒤쪽에 산을 등지고 좌우(左右)가 능선으로 둘러 쌓였으며,

북서쪽에 본채가 위치하고 맞은편 행랑채를 통한 문으로 출입하였으나 본채만 남아 이건 하였으며,

사랑채를 별도로 구성하지 못한 후산리 고가는 나름대로 사랑채의 용도를 꾸며 내었는데 사랑채의 옆으로 두 곳의 문을 내고,

그 앞에 넓은 툇마루를 놓았다는 점이 색다르며 툇마루는 처마를 길게 빼어 마루 끝과 처마 끝이 일직선상에 놓이게 하였으며,

툇마루는 사랑방의 옆면 전체를 모두 낮게 깔아 이곳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가(古家)의 마루 한쪽에는 닭이 알을 낳을수 있게 짚으로 만든 "알둥지"의 모습을 볼수있고,

 

 

 

대청 마루에서 오른쪽의 방을 들여다 봅니다.

 

 

방안에는 실을감는 기구인 물레와 천을 짜는 기구로 보이는 커다란 "베틀"이 보이고,

 

 

 

사랭채로 보이는 옆방에서는 횟대의 모습을 볼수있어,

닭과 같은 날짐승이 오르는 대를 횟대로 알았는데,

옷을 걸어두기 위해 걸어서 설치한 나무도 "횟대"라고 하는것을 새삼 알게 됩니다.

 

 

 

안채의 평면은 중앙에 2칸 통칸의 넓은 대청을 만들고 여기에 우물마루를 둔 모습이며,

 

 

 

대청 뒤편 한쪽에 조상의 위패위패(位牌)를 안치하는 제청(祭廳)을 따로 들여두어 특이한데,

 

 

 

대청 한쪽에 조상의 위패(位牌)를 안치하고 있는 제청을 만들고 있는 것이 특이하며,

가구 구성에서 대량 위에 일반적인 제형대공을 설치하지 않고 정성을 많이 드린 접시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도록 하고 있는 등,

조선시대 이 지역 사대부가의 건축 양식이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전형적인 주택 건축으로 큰 의의를 찾을수 있습니다.

 

 

 

후산리고가(後山里古家)에서는 방과 마루등에서 전시되고 있는 여러 종류의 민속품들을 볼수 있으며,

 

 

 

후산리고가(後山里古家)의 부엌은 한 칸 정도의 규모로 달아 내었는데,

 

 

 

후산리 고가의 부엌은 남 다른데 그저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칠 만한 것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엌에 상당한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부엌문 위에는 창처럼 끝을 만든 살창을 내고 있으며,

 

 

 

부엌이라는 것이 부녀자들의 공간이다 보니 나름대로 세심한 부분까지 정성을 쏟은 듯하며,

부엌에 난 까치구멍이 색다른데 일반적으로 살창으로 구성하는 까치구멍이지만 윗방의 다락 아랫부분에도 까치구멍이 나 있습니다.

 

 

 

그리 큰규모는 아니지만 후산리고가(後山里古家)의 부엌은,

필요한 요소에 배치가 잘되어 있는 모습이며,

 

 

 

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추구했고,

조선조 말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민가 가옥의 구성을 보이고 있는 후산리 고가는 사용하기에 편안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수몰 전에는 사람이 거주했으나 청풍문화재단지로 이건 하여서는 거주는 하지 않지만 사람 내음새가 나는 고가(古家) 입니다.

 

 

 

안방쪽에서 열려있는 문을 통하여 보이는 사랑채의 모습으로,

사랑방의 앞쪽으로만 툇간을 달아 내었는데 이는 사랑방에 손님들이 찾아들 것을 대비해 비를 피하며 불을 자주 땔 수 있도록 하기 위함으로 보이며,

 

 

 

 

건넌방은 윗방이 있어 겨울철에는 불을 자주 땔 필요가 없지만 사랑방의 경우는 다른데,

겨울철에도 사랑방에 손님이 찾아들면 방을 따듯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며,

이렇게 한데 부엌을 툇간으로 달아낸 것과 사랑방의 옆면 전체를 모두 낮게 깔아 넓은 툇마루를 내어,

이곳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기도 한 것으로 보여 특이한 구조입니다.

 

 

 

고가(古家)의 뒤편에도 옛사람들의 생활도구들을 많이 볼수있으며,

그리 넓지 않은 후산리고가(後山里古家)는 조금은 답답하게도 여겨 지지만,

오밀조밀한 구성에서 아늑한 분위기를 찾을수 있습니다.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에서 찾을수 있는,

조선말기에 지어진 고가(古家)로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주택 건축이지만,

대청의 제청, 부엌의 구성과 사랑채 등에서 특이함을 찾아 볼수 있는 청풍후산리고가(淸風後山里古家)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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