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을 여행하면서,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의 모습을 살필수 있는 곳으로,

금남루(錦南樓)와 금병헌(錦屛軒)을 찾았습니다.

 

문화재 단지에서,

관아인 금병헌으로 들어가기전 조선후기의 누각인 금남루(錦南樓)를 먼저 만나게 되고,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된 "제천청풍금남루(堤川淸風錦南樓)로,

관청으로 들어가는 3개의 문으로 되어있어 가운데 문은 부사가 출입했고 양쪽 문은 평민이 출입했다고 하며,

2층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사방이 트여 있습니다.

 

 

 

금남루(錦南樓)는 청풍부의 아문으로,

순조25년(1825)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처음 세우고 현판도 걸었으며,

고종7년(1870)에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동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玄仁福)이 각각 중수하고 1956년에도 보수 하였습니다.

 

 

 

금남루(錦南樓)의 전면에는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의 현판이 걸려 있어,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이라는 현판은 건물을 세울 당시에 부사 조길원이 썼다고 하며,

 

 

 

누각의 배면에는 "금남루(錦南樓)"의 현판이 올려져 있습니다.

 

 

 

청풍부 청사의 정문으로 사용했던 제천 청풍 금남루는 어칸의 폭을 양 협칸보다 넓게 하였으며,

건물은 장대석 외벌대로 기단을 만들고 팔각의 방추형 장초석을 놓은 다음 원기둥을 세웠고,

1층과 2층의 기둥 연결 방식은 각 층이 별도의 기둥으로 구성된 층단주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멀리있는 적의 동정을 살피는 망루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금남루(錦南樓)는,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조성으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 하였으며,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높은 돌기둥 위에 세운 2층누각의 다락집으로,

관청의 정문이라는 상징성과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이 잘 표현된 지방 아문(衙門)이라는 건축사적 의의가 큰 건물 입니다.

 

 

 

금남루를 지나면 마당을 앞에둔 금병헌(錦屛軒)이 보이고,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4호 "제천 청풍 금병헌(堤川 淸風 錦屛軒)"으로,

제천 금병헌은 옛 청풍부의 중심 건물로서 부사가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동헌(東軒) 건물로,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좌측 3칸은 방으로 우측 3칸은 대청마루로 구성 하였고,

대청마루 옆의 방 1칸에는 앞 툇간을 마루로 만들어 대청마루와 연결 하였습니다.

 

 

 

마루앞 처마 아래에서 볼수있는 "금병헌(錦屛軒)"의 현판이며,

 

 

 

금병헌(錦屛軒)의 너른 마루에는,

근엄한 표정의 청풍부 부사가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모습이며,

 

 

 

대청 마루의 안쪽에는 청풍관(淸風館)이란 현판이 걸려 있으며,

이곳은 일명 명월정(明月亭)이라고도 불리웠다고 하며..

 

 

 

동헌(東軒)의 뜨락과 마당에는,

실물크기의 인형을 배치 해두어 옛 관청 업무의 일부를 알기 쉽게 해두었습니다.

 

 

 

청풍은 삼국시대에 "사열이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때 청풍현이라 하였으며,

고려 충숙왕 때 "지군사"가 되었고 조선 세조 때에는 "군"이 되었으며,

현종 초에 "도호부"로 되었으며 고종32년에 다시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국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풍면이 되었습니다.

 

 

 

대청마루는 전면과 측면 툇간에서 벽체를 구성하지 않고 개방되어 있으며,

측면 2칸과 배면 벽체는 마루 윗면에 머름을 구성하고 판벽과 당판문으로 막았으며,

중방과 창방 사이의 벽체는 회벽으로 막았고 배면의 대청마루와 방 1칸 외부에는 툇마루를 달고 계자 난간을 설치하여 방으로 통하도록 하였으며,

 

 

 

마루로 통하는 문은 넌출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으로 되어있어,

관청의 분합문은 팔각의 장식문양이 들어있어 눈길을 잡고 있으며, 

 

 

 

활짝 열어둔 방에는 수령이 행차때 사용하는듯한 가마도 볼수 있는데,

청풍부에는 객사(客舍) 55칸, 아사(衙舍) 37칸과 기타의 부속 채가 있었다고 하며 아사 37칸 중에는,

 치소인 관수당(觀水堂)을 비롯하여 한벽루, 응청각, 명월정, 팔영루가 있었고,

객관의 서헌(西軒)인 매월헌 등이 있었다고 하며,

 제천 청풍 한벽루는 관수당 동편 남한강변 벼랑 위에 객사와 나란히 있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숙종7년(1681)에 부사 오도일(吳道一)이 처음 지었으며,

그후 숙종 31년(1705)에 부사 이희조(李喜朝)가 중건하고, 1726년(영조 2)에 부사 박필문(朴弼文)이 중수하고,

권돈인(權敦仁)이 편액을 써서 걸었고 1900년(고종 37)에 부사 현인복(玄仁福)이 전면 보수 하였습니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 하였습니다.

 

 

 

옛 청풍부의 중심 건물로서의 상징성과,

조선 후기의 소박하고 단아한 건축 양식적 특징이 잘 표현된 지방 관아의 옛 모습을 살필수 있는곳으로,

제천의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에서 볼수있는 금남루(錦南樓)와 금병헌(錦屛軒) 방문기 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