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군위,의성 지역을 여행 하면서,

서담(西潭) 홍위(洪瑋)의 유허(遺墟)가 있는 곳으로,

군위 칠탄숙 강당(七灘塾講堂)을 찾았습니다.

 

경북 군위군 군위읍 외량리에 위치한 "칠탄숙 강당(七灘塾講堂)"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5호로 지정 되었으며,

 

 

 

3칸의 솟을 대문채를 들어서면 "一"자 형의 칠탄숙 강당(七灘塾講堂)이 들어오고,

칠탄숙 강당은 서담(西潭) 홍위(洪瑋:1559∼1624)가 성리학을 연구하고 유성룡(柳成龍)의 의 학덕을 후학들에게 전하는 등,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조선 인조 7년(1629)년에 지은 서숙(書塾) 건물로,

 

 

 

마을 뒤편 언덕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서 있는데,

가운데 3칸은 개방된 마루이고 양 옆은 온돌방을 배치한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의 구조 입니다.

 

 

 

마루 중앙의 처마에는 "칠탄숙(七灘塾)"의 현판이 올려져 있고,

 

 

 

기단(基壇)과 초석(礎石)은 모두 자연석을 사용 했으며,

 

 

 

5칸 중 3칸을 우물마루로 두어서 너른편 이며,

 

 

 

마루 안쪽의 가운데에는 별도의 공간이 있어,

 

 

 

문위에 장판각(藏板閣)의 현판이 있어서,

 

 

 

장판각(藏板閣)은 일반적으로 출판한 책을 찍었던 목판인 경판을 보관하는 곳이며,

 

 

 

문짝 안쪽의 글씨로 보아 근자에는 책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인듯 합니다.

 

 

 

칠탄숙 강당(七灘塾講堂)의 마루 위에는 몇개의 현판을 볼수 있어,

 

 

 

크고 긴 편액으로 제사와 관련한 현판으로 보이며,

 

 

 

관찰사(觀察使) 김안국(金安國)의 시판을 볼수 있어,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도학에 통달하여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지치주의(至治主義) 사림파의 선도자 였으며,

예조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했던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으로 여겨 지는 편액으로,

김안국(金安國)은 1517년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각 향교에 소학 (小學)을 나누어 가르치게 하고  향약을 시행하도록 해 주자학적 향촌질서의 수립에 힘썼던 인물입니다.

 

 

 

오래되어 보이는 "칠탄서당상량문(七灘書堂上樑文)"의 편액 이며

 

 

 

칠탄숙중수기(七灘塾重修記) 편액으로 후손인 12대손의 글로 보이며,

1967년(단기 4300년)에 중수가 있었슴을 알수 있습니다.

 

 

 

마루에서 오른쪽의 방을 들여다 봅니다.

 

 

 

방의 뒤편에 벽장을 둔듯 문이 보이고,

 

 

 

옆면은 막혀 있으나 전면과 마루의 문이 있어 밝은 편이며,

 

 

 

마루를 건너 왼쪽의 방도 들여다 봅니다.

 

 

 

왼쪽의 방은 하나로 트여있고 동쪽으로 문이 있어 더욱 밝은편이며,

 

 

 

마루로 나와 지붕아래 결구의 형태도 들여다 보고,

 

 

 

칠탄숙(七灘塾)은 일곱 여울이란 뜻으로 여울은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차게 흐르는 곳이며,

마을 입구에 첫여울을 열풍탄(熱風灘), 서애 유성룡을 모신 남계서원 앞을 남계탄(南溪灘), 그 위의 여울을 선곡탄(線谷灘)이라 하며,

양천 여울을 양천탄(良川灘), 내량리를 중심으로 흐르는 곳을 내량탄(內良灘), 가마솥 모양의 산봉우리 앞 여울을 부봉탄(釜鳳灘),

마지막 일곱 번째 여울을 서담탄(西潭灘)이라 하여 칠탄숙(七灘塾)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칠탄숙 강당(七灘塾講堂)을 세운 홍위(洪瑋:1559∼1624)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위부(偉夫)  호는 서담(西潭)으로 군위에서 출생하여,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한 뒤 1601년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지평·예조좌랑·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어 통제영종사관(統制營從事官)으로 통제사를 보좌하여 백성을 구휼하였으며 전비를 강화하는데 힘썼으며,

그후 춘추관기사관·세자시강원사서·정언·지평 등 요직을 역임하였으나,

광해군대에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교육에 힘썼으며,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에 다시 벼슬길에 나가 병조정랑, 예천군수 등 내외직을 역임 하였으며 저서로는 "서담집"이 있습니다.

 

 

 

서숙(書塾)의 뒤편을 돌아 보는것으로 칠탄숙 강당(七灘塾講堂)의 답사를 마치고 나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담(西潭) 홍위(洪瑋)의 정신을 되돌아 보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그의 행적을 더듬어 볼수있는 곳으로,

소보면 내의리에 있는 1612년(광해군 4년)에 그가 지은 정자인 양암정(兩岩亭)과 함께 찾아 볼만한 곳으로

경북 군위의 칠탄숙 강당(七灘塾講堂) 방문기 입니다.

 

서담(西潭) 홍위(洪瑋)의 양암정(兩岩亭)과 관련한 내용은,

명당에 자리한 정자, 군위 양암정_141217 에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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