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의 문화재 탐방에서,

이산정과 자운정에 이어서 생담정사(笙潭精舍)와 귀암정사(龜巖精舍)를 찾았습니다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550호로 지정된 생담정사(笙潭精舍)는,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 있는 조선후기의 정사이며 귀암정사로 오르는 초입에 자리하고 있으며,

 

 

 

1795년 의성김씨 입향조 오우당(五友堂) 김근(金近)을 추모하고 후진 양성에 힘쓰기 위하여,

6세손 김굉(金宏, 1739~1816)의 주도로 건립 되었으며,

이곳은 김근(金近)의 옛 거주지로 당초에는 초옥을 지어 "생담(笙潭)"이라고 하였는데,

김근의 유덕을 기려 유허에다 생담정사(笙潭精舍)를 세웠으며 현재는 강당만 남아 있으며,

정면에 있던 계단을 없애고 축대로 막아 놓았으며 뒤쪽 담장을 허물어 입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담정사(笙潭精舍)의 현판이며,

 

 

 

정사(精舍)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一"자 형의 팔작지붕의 겹처마 구조의 건물로,

중간설주의 유구와 청방간 창호의 구성수법이 독특하면서도 그 이전의 모습을 잘 이어오고 있으며,

대량과 창방 등에서 당시의 치목수법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건실한 부재의 사용으로 건물규모가 아담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포대공의 모습과 공포의 모습에서 정성을 들인 건물로 여겨지며 연대를 19세기 이전으로 올려 볼 수 있는 양식으로,

건립 당시의 모습이 비교적 온전히 잘 남아 있는 건물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주춧돌은 자연석을 이용 하였으며 마루방의 하부를 들여다 보고,

 

 

 

정사(精舍)의 전면에 나있는 온돌방 앞의,

불을 넣은지 오래되어 보이는 아궁이의 모습도 살펴보고,

 

 

 

디딤돌을 통하여 마루로 올라봅니다.

 

 

 

4칸 규모의 마루방은 너른편이며,

사방에 나무문을 두었으나 판벽으로 막아두었으며,

 

 

 

마루 중간에 가는기둥을 세워 두었는데,

2칸을 지탱해야하는 보의 하중을 덜어 주려는듯 합니다.

 

 

 

마루 에서는 입향조 김근(金近)의 호를 따온 오우당(五友堂)의 현판이 있어,

현판 획의 꺽임이 분명하고 붓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경쾌하여 시원스러움과 믿음을 함께한 행서체의 글씨 입니다.

 

 

 

2칸 크기의 정사(精舍)의 방에는,

우물 천정을 꾸렸으며  벽에는 나무를 가로로 걸쳐두어 걸게의 용도로 보이며,

 

 

 

생담정사(笙潭精舍)는 의성김씨 입향조 김근(金近, 1579~1656)을 기리는 정사(精舍)로,

김근(金近)의 자는 성지(性之), 호는 오우당(五友堂)으로 김용(金涌)의 문인으로 류진(柳袗)·정영방(鄭榮邦) 등과 교유하였으며,

1623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저서에 "오우당집(五友堂集)"과 "사금록(沙金錄)"이 있습니다.

 

 

 

정사(精舍) 앞에서 주변풍광을 둘러 봅니다.

 

 

 

생담정사(笙潭精舍)를 세운 김굉(金宏)은 김근(金近)의 6세손으로,

1773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777년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에 보임되었고,

그 후 사헌부지평·단양군수·예조참판 등을 역임 하였으며, 

인근에 있는 자운정(紫雲亭)과 다음 탐방지인 귀암정사(龜巖精舍)를 지어 후학에 힘썼습니다.

 

 

 

생담정사(笙潭精舍)에서 나와 귀암정사(龜巖精舍)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생담정사 윗쪽에 자리한 귀암정사(龜巖精舍)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 계단을 조금 올라야 하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94호로 지정된 귀암정사(龜巖精舍)는 정사와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귀미리 생담(笙潭)의 풍광 좋은 산록에 북서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주문(四柱門)을 들어서면 귀암정사(龜巖精舍)가 들어오고,

귀암정사(龜巖精舍)는 오우당(五友堂) 김근(金近)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6대손 김굉(金宏)이 주도하여 1791년 재사를 세우고,

1793년  영모사(永慕祠)를 세우고 별묘를 구성하였으며,

1795년(정조 19) 전체를 완공 하였습니다.

 

 

 

구암정사 라고도 이름하는 귀암정사(龜巖精舍)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정사가 자리잡아 강학(講學)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정사의 평면은 가운데에 있는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ㆍ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으로,

대청 전면에는 두리기둥을 세우고 주두 위에 무익공의 소로를 수장한 굴도리집인데,

가구는 견실한 5량가구로 종보 위에 제형 판대공을 세워 마루도리를 받게 하였습니다.

 

 

 

귀암정사(龜巖精舍)의 현판이며,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의 마루방은 2칸 모두를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어 접어서 열수 있게 해두었고,

 

 

 

마루에서 보이는 방문은 넌출문으로 두지 않았으며,

 

 

 

정사(精舍)의 마루인 중당을 강수재(講修齋)라고 하고,

동쪽의 방을 양정재(養正齋), 서쪽 방을 치각재(致慤齋)라 각각 이름 하였습니다.

 

 

 

귀암정사(龜巖精舍)에는 현판외 기문(記文)과 시문(詩文)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의성김씨의 가계도로 보이는 그림만 있으며,

 

 

 

정사(精舍)가 외진곳에 자리해서인지 방의 내부는 보수가 필요해 보입니다.

 

 

 

후손인 김굉(金宏)이 1791년에 이곳의 구성을 시작하여 1795년에 모두 이루었다고 하며,

1795년에 아래에 있는 생담정사(笙潭精舍)를 세우고, 인근의 자운정(紫雲亭)을 1796년(정조 20)에 건립했으니,

이곳 귀암정사(龜巖精舍)가 기장 먼저 시작한듯 보이며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건축이 이루어 졌슴을 알수 있습니다.

 

 

 

정사(精舍) 뒤편에는 사당이 있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제사 공간인 영모사(永慕祠)는 통칸집으로,

전면과 배면 기둥을 모두 두리기둥으로 세웠고 무익공에 소로수장한 5량가구의 구조이며,

 

 

 

묘우(廟宇)는 의성김씨 입향조 영모사(永慕祠) 김근(金近, 1579~1656)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며,

 

 

 

귀암정사(龜巖精舍)은 1700년대 말기에 서원의 신축이 억제 되었던 시기에 지어진 건물로,

궁극적으로는 서원으로 승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감춘 채 정사로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하던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좋은 예 이기도 합니다.

 

 

 

자운정(紫雲亭)에 이어 찾았던 생담정사와 귀암정사로,

입향조를 향한 김굉(金宏)의 효심과 후학 양성을 위한 노력을 살필수 있으며,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 이후 건립하여 서원이 아닌 정사(精舍)에 머물러야 했던,

시대적 반영을 살필수 있는곳으로 경북 안동의 생담정사(笙潭精舍)와 귀암정사(龜巖精舍) 입니다.

 

김굉(金宏)의 정자 자운정(紫雲亭)에 관란 자료는

안동의 정자, 이산정 과 자운정_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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