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서부지역인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로,

낙동강변의 정자, 달성(達城)의 하목정(霞鶩亭)을 찾았습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된 하목정(霞鶩亭)으로,

 

 

 

일각문을 들어서면,

제법 규모가 있는 "ㄱ"자 형의 건물이 들어오고,

 

 

 

하목정(霞鶩亭)으로 들어가는 문은 나무로 고임을 해두어 개방되어 있으며,

 

 

 

하목정(霞鶩亭)은 임진왜란때 의병장 이었던 낙포(洛浦) 이 종문(李宗文,1566∼1638)이 1604년 (선조37)에세웠으며,

원래는 제택(第宅)의 사랑채였으나 안채가 없어진 후 정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자 앞에는 장방형의 네모난 연못이 있어,

우리 고유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의미 하는듯 하며,

 

 

 

정자는 정면 4간 측면 2간 규모로 겹처마의 팔작지붕이나,

우측간의 전면과 배면에 누마루와 온돌방 1간씩을 달아내어 전체적으로는 정자형(丁字形)의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구는 5량가이며 주상(柱上)에는 초익공(初翼工)으로 장식 하였고 이 집의 특징은 처마의 형상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처마의 곡선은 안으로 오목하지만 이 집은 반대로 밖으로 약간 불룩한 느낌을 주는 방구매기란 매우 희귀한 수법을 사용한 점과,

당시 사가(私家)에서는 볼 수 없는 서까래 위에 부연을 달았다는 점이며,

보통 사가(私家)에서는 서까래 위에 부연(附椽)을 달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나 인조의 명으로 부연을 달았다고 합니다.

 

 

 

하목정(霞鶩亭) 현판의 글씨는 인조의 어필이며 원본은 별도 보관중이라 하며,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이곳에 잠시 머물때,

정자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에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따오기가 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하목정(霞鶩亭)이란 정호(亭號)를 써 주었다고 합니다.

 

 

 

마루위에는 하목당(霞鶩堂)의 현판도 볼수 있으며,

 

 

 

이곳 마을에는 낙동강 나룻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낙동강변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통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인조를 비롯하여 많은 유력인사들이 이곳에서 묵었던 것으로 보여,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현종 때 문인인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과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등 많은 유명인들이 쓴 시액(詩額)이 걸려 있습니다.

 

 

 

하목정(霞鶩亭)을 세운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은 생원에 합격한 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서사원, 손처눌등과 함께 팔공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서면 대장(西面大將)으로 활약했으며,

초유사 김성일의 표창을 받고 추천으로 세 고을의 수령이 되었고,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곽재우 장군과 함께 화왕산성을 지켰으며,

원종공신,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에 증직 되었으며 노후에 하목정을 짓고 여생을 보냈습니다.

 

 

 

마루와 방으로 통하는 2칸의 문은 사분합문(四分閤門)으로,

마루와 방 사이를 접어 열 수 있게 해두어 필요시 하나의 공간으로 여겨지게 합니다.

 

 

 

인조(仁祖, 재위 1623∼1649)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 집에 머문적이 있었는데,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장자(長子)인 이지영(李之英)에게 하목정(霞鶩亭)이란 정호(亭號)를 써 주었다고 하며,

 

 

 

하목정(霞鶩亭)은 당나라 왕발(王勃)이 지은 등왕각기(騰王閣記) 서(序)에,

"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아가고, 가을 물은 먼 하늘색과 한 빛이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는,

귀절에서 가져온것으로 보이며,

 붉게 물든 노을 속으로 검은 점으로 날아가는 따오기를  한 폭의 수채화로 보았던 이곳에서의 인조(仁祖) 느낌을 표현한듯 하고,

 

 

 

인조가 임금에 오르기전 능양군 시절에 당시의 왕은 아버지의 배다른 형제 광해군 였으며,

동생 능창군이 반역죄의 누명을 쓰고 광해군에게 죽었고 아버지 정원군도 이 일 때문에 홧병으로 죽었습니다.

광해군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 인듯 능양군은 경상도로 유람을 나서게 되어,

상주에서 배를 타고 하목정 나루터에 내렸는데,

석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지고 해질 녘 낙동강에 내려 앉거나 강에서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철새가 장관인하목정(霞鶩亭)의 아름다운 풍광에 눈에 들어,

능양군은 아름다운 정자에서 유숙했으며 하루라는 말도 있고 제법 머물렀다는 말도 있습니다.

 

 

 

후일 인조가 인조반정으로 임금에 올라 "하목정의 추억"을 떠올린 것은,

이종문(李宗文)의 아들 수월당(水月堂) 이지영(李之英)이 벼슬자리에 올랐을때 알아보았다고 하며,

부연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내탕금에서 은 200냥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목정(霞鶩亭)에서 나와 윗쪽에 있는 사당을 찾아 봅니다.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당 건물이며,

 

 

 

하목정(霞鶩亭)의 정원에는 선비화로도 불렸던 노거수 배롱나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데,

안채 뒷편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사당과 그 주변에 배롱나무들이 많이 심어졌음을 볼수 있으며,

사당 앞 뜰에는 400년 된 목백일홍 5그루가 있어 여름에 장관을 이룹니다.

 

 

 

하목정(霞鶩亭) 마루에 있는 시문(詩文)으로,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의 시(詩), 제 하목정(題霞鶩亭) 가져 와 봅니다. 

重湖鋪帶兩龍橫(중호포대양용횡)    중호(重湖)가 띠처럼 두르고 두 산줄기 길게 뻗었는데

遙野羅渙畵不成(요야라환화불성)     들판이 멀리 펼쳐 있어 그 아름다움 그리기도 어렵구나

曉靄雜煙沈渚濕(효애잡연심저습)    새벽안개는 연기와 섞여 물가에 잠겨 있고

落暉和浪蕩江平(낙휘화랑탕강평)     저녁 석양빛은 물결과 어울려 강물 위에 출렁이네

西山細雨簾心爽(서산세우렴심상)    서산(西山)의 가랑비에 주렴(珠簾) 안도 시원하고

南浦殘霞鳥背明(남포잔하조배명)    남포(南浦) 노을은 새 등에 반짝이네

可惜子安留語少(가석자안유어소)    애석하구나! 황자안(黃子安)이 아무 말 남기지 않으니

賞奇輪與麴先生(상기수여국선생)   좋은 경치 완상하며 좋은 술과 마주하네

 

 

 

건물 오른쪽에 있는 온돌방에는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현대화의 편안함을 버리고 생활에는 불편할수도 있는 이곳을 지키고 있어 건물과 정원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는듯 합니다.

 

 

 

7월부터 9월까지 화사한 배롱나무의 군락과 낙동강 일몰 등으로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볼수 있으며,

인조(仁祖)와 의 인연이 있었으며 임진란의 와중에도 팔을 걷고 나서 활약했던,

낙포(洛浦) 이 종문(李宗文)의 자취를 돌아 볼수 있는곳으로,

낙동강변의 정자 달성(達城)의 하목정(霞鶩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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