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여름휴가 뿐만 이니라,

3일 이상의 연휴가 생기면 항상 가는곳이 추자도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가볼곳도,

바다가 좋은섬들도 많이 있지만..

연휴에 추자도를 고집하고 가는 이유는,

그곳에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섬이 있으며,

또한 우리나라 원도권의 3대 바다낚시의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추자도에 들어가기전에,

간단하게나마 추자도와 주요 부속섬이 들어있는 지도를 살펴봅니다.

나와있는 추자 십경중에서,

"장작평사"와 "추포어화"등은 이제 추자도에서 볼수가 없거나,

예전의 흔적만 조금 남아 그시대의 풍광을 짐작할 정도입니다.

 

 

 

 

늦은밤에 파주를 출발하여,

긴시간을 밤새워 달려와 완도항에서,

하루한번 아침 7시반에 출항하는 뉴드림호 입니다.

아침에 완도를 출항하여 추자도를 경유하여 점심쯤에 제주항에 도착,

다시 추자도 신양리항을 경유하여 왔던길을 되돌아와 저녁 7시반경에,

완도에 도착하여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하루에 1회 왕복을하는 배여서,

행여나 아침에 배를 타지못할 경우 하루를더 기다렸다가 내일을 기약하여야 합니다.

 

 

 

 

 

얼마전 까지 한일 카훼리3호가,

추자를거쳐 제주를 오가는 항로를 운항했었는데,

지금의 뉴드림호는 임시로 운항하는 배라고 전해줍니다.

 

2등실은 의자로 3등실은 다다미 방식으로 되어있는데,

개인적으로 야간운전의 피로를 3시간여 잠으로 풀면서 갈수있는 3등실을 좋아합니다.

 

 

 

 

밤샘운전으로 잠이들었다가,

안내방송에 일어나 갑판으로 나와보니,

돈대산 아래의 신양리항 전경이 맑은 날씨를 배경으로 시원하게 들어옵니다.

 

 

 

 

민박집에서 여장을풀고,

미리 차려둔 점심식사를 한후 서둘러 갯바위로 나가봅니다.

오후 물때에 맞춰 워밍업 삼아 농어루어를 던져볼 요량입니다.

 

 

 

 

썰물 포인트로 알려진,

상추자와 하추자를 이어주는 다리아래 포인트입니다.

이곳은 수심이 얕은 자갈과 여밭지형으로 조류의 흐름이 좋은곳으로,

큰씨알의 농어 보기는 좀체로 힘든곳으로 크지않은 씨알이지만 마릿수 재미는 있는곳입니다.

 

12호 태풍 "할롤라" 탓인지,

농어가 좋아하는 너울이 있어 분위기는 좋았지만 조과는 없었습니다.

 

 

 

 

 

낮낚시는 햇볕과 무더위 때문에 하지못하고,

저녁식사후 야간의 농어 찌낚시 채비로 준비를하여,

시원한 저녁과 야간에 물때에 맞춰 자리를 이동하며 낚시에 집중을 합니다.

주로 농어 낚시를 해보았지만 크지않은 농어와 볼락이 하룻밤의 조과로 초라합니다.

 

 

 

 

조황이 변변치않아 조기철수후,

크지 않지만 농어 한마리로 회를 장만하여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예보는 있지만,

아직은 추자도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이 조용합니다.

다음날 이른저녁을 먹구서 하추자의 농어포인트인 석죽머리로 나갔습니다.

이곳도 여밭지형으로 루어와 농어 찌낚시를 할수있으며 씨알큰 농어가 자주 나오는곳입니다.

 

 

 

 

농어 밤낚시를 하러갔었는데,

볼락 몇마리와 참돔한마리가 걸려나와 줄뿐 빈작을 보입니다.

태풍의 북상소식에 모두들 깊은 바닷속으로 대피하지 않았나 하는생각이 들정도입니다.

 

 

 

 

참돔 한마리로,

두군데로 나누어 쏘주의 안주로 올랐습니다.

절반만을 담아서인지 접시에 담긴 회의양이 아주 적어보입니다.

 

 

 

 

이곳은 오래전 "반도 민박" 자리로,

아주 오래된 바다낚시 친구가 인천에서의 낚시가게를 정리한후,

가족과 함께 추자도에 입도하여 민박을 시작한지 1년여을 넘긴곳으로..

민박집의 이름은 "추사랑 민박"으로 민박을 시작한지 일년이 지나서야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왕 추자도에 온김에..

이곳 "추사랑 민박"을 소개합니다.

반찬은 추자도에서 나는것을 위주로 반찬이 준비되어 나옵니다.

바닷말의 한종류로 "몰"로 불리는 해초무침으로 바닷내음의 상큼함을 전해줍니다.

 

 

 

 

일반적으로 육지의 식당에서도 나오는 오이김치 이구요,

 

 

 

 

맵지않은 큰고추에 속을넣은,

꼼꼼한 정성이 들어간 고추김치입니다.

 

 

 

 

추자도의 자연산 돌미역의 냉채가 시원하게 나오구요,

 

 

 

 

호박등, 몇가지 야채를 넣은 야채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야채는 현지에서 구하며, 없을경우 제주나 완도에서 들여옵니다.

 

 

 

 

추자도 특산품하면 빠질수가 없는게 "조기굴비"와 "멸치젓갈"입니다.

지난해의 조기가 많이 잡히지 않은탓에 크기가 작은 조기를 찜으로 조리해서 나왔습니다.

 

 

 

 

맛있게 차려진 점심의 상차림입니다.

점심 식사후 해질녘을 보기위해 잠시동안의 휴식에 들어갑니다.

 

 

 

 

좋은날씨의 덕분에,

일몰을 볼수 있을듯하여 등대전망대에 올라봅니다.

영흥리 마을위로 올라가는 가장 가까운 코스를 선택하였는데,

마을뒷편의 등대전망대의 시발점이라 할수있는 한전 사택의 모습입니다.

 

 

 

 

보통의 둘레길에는,

방부목으로 데크가 조성된게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오래전 철도 침목으로 사용되었던 나무로 조성이된,

나무 데크 350m 길이의 47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합니다.

 

 

 

 

그옛날 철로를 받쳐주던 침목으로 계단을 조성해두어,

튼튼하기도 하거니와 풍상을 견디어온 기름먹인 목재인탓에 든든해 보입니다.

 

 

 

 

나무계단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추자도의 해군 레이더 기지의 철탑이 저녁노을로 물들어가는 모습입니다.

 

 

 

 

올라온 나무계단의 길을 잠시 내려다봅니다.

침목의 발디딤 모서리부분에 미끄럼 방지를 해두어,

우천시의 기름기로 인한 미끄러짐을 예방하고자한 배려가 보입니다.

 

 

 

 

한참을 올라가다가,

중간쯤은 넘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즈음에 반겨주는 돌고래상 입니다.

이곳 등대 전망대를 찾아 계단을 오르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표지석이 될수도 있을법합니다.

 

 

 

 

저녁 노을아래 보이는 면소재지가있는 상추자의 대서리와,

바로 이어져 있지만 붉은지붕 일색인 영흥리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상추자항의 노을지는 모습으로,

잠시의 휴식을 가진후 나무계단을 다시 올라갑니다.

 

 

 

 

나무계단으로의 오름이 끝나자

그리높지도 않은 해발 125m에 자리잡은 추자도 전망대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원형으로 이루어진 두개의 조형물을 지나서,

등대전망대로 들어가 내부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면..

 

 

 

 

푸른 바다앞의 추자도 등대입니다.

북쪽으로는 "문여", 동쪽으로는 "보론섬", 남쪽으로는 "모여" 에 있는,

그리고 예초리항앞의 "가막여" 등대등 추자도 인근의 크고작은 많은 등대들을 거느린,

이른바 추자도 등대들을 관장하는 대장격이라고 할수있습니다.

 

 

 

 

나바론 직벽 너머인 목개를 배경으로,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인 일몰의 장관을 볼수가 있습니다.

 

 

 

 

전망대에 오르면..

 

 

하추자의 서편인,

오른쪽 맨앞의 대물인 6짜 감성돔으로 이름난 포인트인 "수영여"와,

왼쪽으로 삿갓모양으로 보이는 "섬생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섬생이" 는 장작리 쪽에서보면 두마리의 쥐가 등을 돌리고 앉은 형상입니다.

 

 

오른쪽의 그다음으로 보이는섬이 "청도" 라고하기도 하는 "푸랭이" 이며,

섬생이 뒤쪽으로 하추자 본섬너머로 보이는 곳이 "사자섬"으로,

한마리의 숫사자가 웅크리고 있는형상으로, "수덕도"라는 이름을 가지고있습니다.

 

 

위의 열거한 섬들은 겨울 영등철의 대물감성돔의 배출지로 이름난 섬들입니다.

 

 

 

 

 

 

조금 오른쪽으로 비켜서 보면,

 

 

수영여 왼편뒤로 푸랭이가 있고..

오른쪽 조금멀리 작게보이는섬이 "밖미역" 섬입니다.

 

 

밖미역의 뒷편으로 조그맣고 뽀족한 삼각형으로 서있는곳은,

여름철에 가장 인기가 있으나 위험하기도한 이름그대로의 "절명여" 입니다.

 

 

절명여에서 왼편으로 비켜서있는곳이,

제주도로 가는 귀양길에 제주도를 앞두고 갓의 끈을 여미었다는 "관탈도"입니다.

 

 

그뒤로 희미하긴하지만 크게 윤곽을 그리고 있는곳이 제주도입니다.

날씨가 좋은날이면 석양이긴 하지만 멀리에 있는섬들이 조목조목 들어오며,

밤이면 제주시의 불빛을 이곳 추자도에서도 볼수가 있습니다.

 

 

 

 

 

하추자와 상추자를 이어주는,

"추자교" 와 그주변의 전경도 정겹게 다가옵니다.

 

 

 

 

하추자의 다리 왼쪽으로,

붉은색을 띄며 추자민의 식수를 책임지는 정수장이 자리해있고,

앞으로 튀어나온 오지박 본섬포인트와 그뒤로 예초리의 마을전경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상추자쪽으로 눈을 돌리면..

왼쪽 가까이에 "염섬"과 그뒤 오른쪽으로 "이섬"이 나즈막히 길게 누워있고,

오른쪽의 조그마하게 보이는곳이 "검등여" 입니다.

 

 

그뒤로 한집만이 생활을 하고있는 "추포도" 이구요,

추포도 뒤로 길고 크게자리한곳이 4가구가 살고있는 "횡간도"입니다.

횡간도의 왼쪽에 조그맣게 있는곳이 해남 땅끝에서 추자도를 들어오면 만나게되는,

북쪽의 관문으로 등대가 있는 "문여"입니다,

 

 

 

 

 

상추자와 하추자를 연결하는 추자교 인근전경입니다.

앞쪽 상추자의 저수지는 추자 주민의 식수를 담당하는 용도이구요,

추자도에는 모두 세개의 저수지가 있는데 그가운데 하나입니다.

 

 

 

 

올라왔던곳의 아치형 조형물도 내려다 봅니다.

조형물의 바다방향에는 태풍등의 영향이 있을때 1차적으로 파도를 막아주는,

"파세지"로 불리는 뜬방파제 의 모습이 갈매기의 모습으로 들어옵니다.

 

 

 

 

전망대 아래에는,

금속으로된 조형물과 함께 추자도를 중심으로한 지도가 그려져있어 이해를 도우고 있으며..

 

 

 

 

한쪽에는,

세상 모든 등대의 원형이라는 "파로스 등대"의 모형이 있습니다.

 

* 파로스 등대의 설명에 대해서 옮겨와보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고대의 등대로 기술적인 위업이며 이후 세워진 모든 등대의 원형이다.
파로스등대가 세워진 파로스섬은 바위가 돌출되어 모든 곳에서 잘 보이는 곳이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파로스섬은 등대가 건설될 당시 이미 헵타스타디온이라는,

1킬로미터 길이의 방파제로 알렉산드리아 항구와 연결되어 육지나 마찬가지였다.

이 방파제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와 파로스섬은 두 개의 천연 항구로 변모했다.

좌측의 위노스토스 항구는 접근이 비교적 어려워 정박지로 사용되었고 주요 통상로는 오른쪽의 마구누스 항구였다.

마구누스 항구 끝에 파로스등대가 건축된 것이다.

파로스등대 건설은 기원전 290년경에 시작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건축가 소스트라토스가 지휘했다고 알려진다.

소스트라토스는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통치한 기원전 280~279년에 파로스등대를 완공했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등대는 100미터가 넘는 높이였고 3단으로 이루어졌는데,

맨 밑단은 4각 모양, 가운뎃단은 8각 모양, 맨 윗단은 원통 모양이었다.

등대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졌고 등대 안쪽으로는 나선 모양의 통로가 꼭대기까지 나 있었다.

꼭대기 위에는 거대한 여신상이 솟아 있었다.

꼭대기 부분에는 불을 지피는 설비가 있었고 불빛을 비추기 위해 반사렌즈나 거울을 사용했다고 한다.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 오르면 수십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지중해가 보였으며,

반사렌즈에 비친 불빛이 40여 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12세기 전반 안달루시아 출신의 여행자 엘 셰이크는,

파로스등대의 첫 번째 단은 70미터, 팔각형인 두 번째 단은 30미터, 마지막 세 번째 단은 9미터라고 했다.

등대의 기초까지 포함하면 높이 130미터의 실로 어마어마한 등대였다.

파로스등대는 1100년과 1307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무너졌다고 알려져 왔는데,

등대의 붕괴 원인이 다른 데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알렉산드리아가 아랍인에 의해 점령되었을 때 비잔틴제국은 알렉산드리아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파로스등대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함선으로 접근할 경우 발각될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파로스등대가 제 역량을 못하게 하는 것, 바로 파로스등대를 없애는 것이었다.

묘안을 생각해낸 기독교인들은 아라비아의 칼리프에게 친선사자를 보냈다.

친선사자는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후 등대 밑은 이집트의 금은보화로 가득하다는 거짓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을 들은 칼리프는 등대를 철거하고 보물을 찾아내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으로 등대는 철저하게 파괴되기 시작했는데,

칼리프는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는 중지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이집트 정부는 2006년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파로스등대를 원래 서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카이트 베이 성채 옆에 다시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집트는 파로스등대 잔해를 일부 사용해 지은 카이트 베이 성채에서 채취한 석재를 분석한 결과,

남부 아스완 지방에 있는 화강암과 알렉산드리아 멕스 지방의 석회암이 등대의 주자재라고 결론 내리고,

이 자재를 사용해 가능한 한 원형에 가깝게 등대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 - 이 상- -

 

 

 

 

해질녁의 등대전망대에 올라본후,

내려오는길의 상추자항은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후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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