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진도를 여행하면서,

남종화(南宗畵)의 성지라고 불리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찾았습니다.

 

대한민국 명승 제80호로 지정된 진도 운림산방(珍島 雲林山房)은,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의 안내문에서 운림산방(雲林山房)의 배치를 살펴 봅니다.

 

 

 

산방으로 들어서면 운림지(雲林池) 앞에서 바라본 운림산방(雲林山房)으로,

1856년 시,서,화 (詩,書,畵)의 삼절(三絶)이라 불리는 소치(小痴) 허유(許誰)가 작업실로 지은 운림산방이며,

집 앞쪽의 운치 있는 연못과 뒤쪽의 부드러운 산세를 자랑하는 첨찰산이 있어 한 폭의 풍경화 같습니다.

 

 

 

운림지(雲林池)는 방지원도(方池圓島)의 형태로 외곽은 네모나고 연못에는 둥근섬을 두어서 외방내원(外方內圓)의 형상 이라고도 하며,

선비사상인 천원지방 (天圓地方)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며,

연못의 한가운데 둥근 섬에는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직접 심었다는 수령 150여년의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산방(山房)으로 가는길의 왼쪽에는 "소치허공기념비(小痴許公記念碑)"가 있으며,

 

 

 

운림산방(雲林山房)의 운림각(雲林閣)으로,

 

 

 

운림각(雲林閣)은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고향으로 돌아와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던 화실로,

운림각(雲林閣) 또는 소허암(小許庵) 이라고도 하며 "ㄷ"자 형의 한식 기와이며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굴도리집 입니다.

 

 

 

운림각(雲林閣) 앞에는 삼층 석탑이 있어,

1층 기단에는 감실을 둔 특이한 삼층 석탑이며,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조선시대 후기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이 기거하던 곳으로,

허련(許鍊)은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 났으며,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많았던 그는 20대 후반에 해남의 두륜산방에서 초의선사의 지도 아래,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화첩을 보고 그림을 공부했고,

1840년 33세 때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소개로 평생 가장 소중히 모신 스승 추사 김정희를 만나게 되어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받았으며,

비록 남도의 섬에서 출생하기는 했지만,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질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능한 삼절(三絶)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운림각(雲林閣)의 마루방 앞에는,

진도출신의 화가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1891~1977)의 운림산방(雲林山房)의 현판이 올려져 있고,

 

 

 

"ㄷ"자 형태의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중앙에 있는 3칸의 마루는 너른편이며,

 

 

 

소치(小痴)는 허유(許維)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는데 중국 당나라 남종화의 효시로 알려진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서 허유라고 명명한 것이며,

당대의 명사였던 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 민영익, 신관호, 권돈인, 정학연 등 권문세가의 고위 관리들과 교유하였으며,

장안에 명성이 높았으며 소치(小痴)를 일컬어 민영익은 묵신(墨神)이라 하고, 정문조는 여기에 더해 삼절(三絶)이라고 평(評) 하였습니다.

 

 

 

1856년(철종 7) 허련(許鍊)은 그의 스승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가 죽은 후,

49세가 되던 다음 해에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초가를 짓고 거처하기 시작했고,

그는 이곳의 이름을 처음에는 운림각(雲林閣)이라 하고 마당에 연못을 파서 주변에 여러 가지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들었으며,

 

 

 

소치(小痴)는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면서 그림을 그렸으며 남종화의 터전으로서 운림각(雲林閣)이 의미를 지니게 된 것으로,

허련(許鍊)은 이곳에서 1893년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불후의 명작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나 허련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 허형(許濚)이 진도를 떠나면서 운림산방은 매각되어 예전의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고,

그 후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피폐 되었던 이곳을 허형의 아들 허윤대가 다시 사들였고,

또 다른 아들 허건(許楗)이 1992년부터 2년에 걸쳐 옛 모습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운림각(雲林閣)앞에는 익살스런 표정으로,

이곳을 지키듯 서있는 해태상으로 보이는 작은 석상이 있으며,

 

 

 

운림각 뒤편에 있는 초가지붕의 안채로 들어가 봅니다.

 

 

 

초가지붕의 사랑채와 안채는 "ㄱ"자 형태로 2개의 건물이 서있어,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초가로는 제법 큰 규모이며,

사랑채인 운림각(雲林閣)과 비슷한 평면인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으로 왼쪽부터 방, 부엌, 안방, 마루, 윗방(건넌방)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마루방의 왼쪽에 있는 부엌을 들여다 보고,

 

 

 

부엌의 선반위에 올려져 있는 술상에서 옛 정취를 느낄수 있으며,

 

 

 

2칸의 마루방을 들여다 보고,

 

 

 

왼쪽 끝의 방의 모습으로,

안채는 소치(小痴)가 기거 했던곳으로 전해지며,

 

 

 

초가의 방들은 소박한 가구들과 함께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대문채와 사랑채를 겸한것으로 보이는 4칸반 규모의 건물에는,

 

 

 

곳간과 불을넣는 아궁이가 있으며,

앞에 작은 마루를 둔 온돌방은 작은 칸을 달고 있습니다.

 

 

 

낮은 돌담장으로 안채와 작업공간인 운림각(雲林閣)을 구분해 둔모습 이며,

안채에서 나와 사당으로 향합니다.

 

 

 

1983년 건립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맞배지붕의 구조로,

 

 

 

사당의 입구에는 운림사(雲林祠)의 현판이 있고,

 

 

 

운림사(雲林祠)는 소치(小痴) 허련(許鍊)의 화상을 모신곳으로,

운림산방은 남종화의 산실로 남종화는 북종화와 구분되는 화법이며,

당나라의 문인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왕유를 비조로 하여 송나라를 거쳐 원나라의 사대가(四大家)로 뛰어난 산수화가였던,

오진, 황공망, 예찬, 왕몽에 이어, 명나라의 심주(沈周), 문징명(文徵明) 같은 오파(吳派)의 문인화가들에 의해 전해 내려온 화법으로,

남종화는 북종화보다 존숭되었는데 중국 명청시대에는 남종화가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두 분파의 큰 차이점은 주로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있었고,

북종화는 외형을 위주로 한 사실적인 묘사를 주로하고 남종화는 작가의 내적 심경, 즉 사의표출(寫意表出)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허련(許鍊)은 이러한 남종화에 심취 했는데,

소치(小痴)라는 아호는 스승인 김정희가 내려주었는데 원나라 때 사대가의 한 사람이었던 대치 황공망을 본떠 지은 것이며,

추사(秋史)는 소치(小痴)의 화재를 두고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고 극찬 했다고 하며,

옛날 선비들은 학문을 이르는 문사철(文史哲)과 문예를 통칭한 시서화를 소양으로 모두 갖추어야만 지식인으로 인정 받았는데,

소치(小痴)는 시서화로 당대를 휘어잡은 대가였는데 특히 묵죽을 잘 그렸으며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를 따라 흔히 추사체를 썼다고 하며,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추강만교도(秋江晩橋圖)", "노송도병풍(老松圖屛風)" 등 다수의 작품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운림사에서 오른쪽 뒤편에는 허씨 문중의 사당인 사천사(斜川祠)가 있으나,

이곳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사천사에서 내려와 소치기념관을 찾아 봅니다.

 

 

 

기념관 앞에는 소치(小痴)가 심었다는 일지매(一枝梅)가 있어,

운림산방 일지매(雲林山房 一枝梅)의 유래는 소치(小痴)가 가꾼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일지매와 백일홍, 그리고 자목련 이며,

일지매(一枝梅)는 소치(小痴)가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열자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선물한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치기념관(小痴記念館)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 되었으며,

 

 

 

소치기념관(小痴記念館)에는 운림산방 3대의 작품과 수석, 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어,

 

 

 

3대 허림의 외아들로 4대 화맥을 이은 임전(林田) 허문(許文)의 "송풍원무(松風遠霧)"로,

55.5cm x 26cm의 크기에 근경에 있는 소나무에서 솔바람이 부는 듯한 소나무를 주제로 한 풍경이며,

 

 

 

임전(林田) 허문(許文)의 하산대무(夏山帶霧)로,

2009년 작품으로 안개를 주제로한 산 풍경으로 일반적인 산수의 구도에서 벗어나 현대적 입니다.

 

 

 

수석도 여러점 전시가 되어 있어,

그중 하나인 전남 보성에서 수집한 "연유봉"이며,

 

 

 

소치(小痴) 허련(許鍊)의 6폭 병풍 송죽매국(松竹梅菊)으로,

49x32cm 종이에 수묵화로 사군자인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에서,

난초를 빼고 소나무를 대신 넣어 4폭을 만들고 양쪽에는 허련(許鍊)이 글씨를 넣어 6폭 구성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글씨 십곡첩(十曲帖)은 소치(小痴)의 운림묵연(雲林墨緣) 첩에 실려있는 글씨로,

소치의 글씨는 대부분 필획이 두툼하여 항상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획의 살을 빼려고 공들인 글씨로 소치가 추구한 또 다른 경계의 글씨 입니다.

 

 

 

소치(小痴)의 묵매화(墨梅花)로,

31cmx66cm의 크기로 중년에 그린 작품이며,

 

 

진도의 운림산방을 근거로 허련(許鍊)에 의해 풍미되기 시작한 남종화는 그의 가계에 의해 이어 지는데,

미산(米山) 허형(許瀅, 1862~1938)은 소치가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로 그의 화풍을 이어받아 산수, 노송, 모란, 사군자 등을 잘 그렸으나,

아버지의 화격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 받으며 미산은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7~1987)을 낳았고,

남농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한 후 20세기 근대 화단에 한국화의 중심에 자리한 화가가 되었으며 운림산방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 했습니다.

남종화는 소치, 미산, 남농 3대에 걸쳐 이어져 왔고 이러한 가풍에 영향을 받아 지금도 화가로 활동하는 후손들이 많습니다.

 

 

 

남농(南農) 허건(許楗)의 "삼송도(參松圖)"로,

전통회화의 관념적인 소나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했으며,

남농(南農)의 대표적 표현 세계인 소나무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 드러나는 구도는,

사물의 형태를 수평적으로 바라보면서 수직으로 중심을 잡아가는 독특한 특성을 보여 줍니다.

 

 

 

미산(米山) 허영(許濚)의 "매화팔곡병풍(梅花八曲屛風)"이며,

그의 중년대 역작으로 알려져 있는 여덟 점의 작품이 각기 다른 모습의 용이 용트림하듯 자신 있게 그려 졌으며, 

미산(米山)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합니다.

 

 

 

미산(米山)이 노년에 그린 "비천(飛天)"으로,

소치(小痴)의 그림과 거의 흡사한 그림으로 폭포의 물줄기가 가늘어 흡사 바람에 날리는듯 흘러내린다 하여 날비(飛)자를 쓴 폭포의 풍경 입니다.

 

 

 

소치(小痴) 허련(許鍊)의 운림각도(雲林閣圖)이며,

1866년 58세 때 그린 그림으로 소치 후기의 대표작이라 하며,

운림산방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화제를 통하여 소치의 인품을 알 수 있습니다.

 

 

 

임전(林田) 허문(許文)의 운연비폭(雲煙飛瀑)으로,

1987년 46세에 그린 폭포를 주제로 한 운연비폭(雲煙飛瀑)은,

근경에 위치한 소나무의 수법과 산의 준법이 실경과 거의 흡사하게 묘사된 사실적인 작품입니다.

 

 

 

소치기념관(小痴記念館)에서는 5대에 걸쳐 8명의 화가를 배출한 내용을 찾을수 있으며,

6대까지 장대한 화맥(畵脈)을 품은 운림산방(雲林山房)의 가맥은,

초대 소치 허련(初代 小痴 許鍊),  2대 미산 허영(二代 米山 許濚), 3대 남농 허건(三代 南農 許楗),

4대 임전 허문(四代 林田 許文), 5대 오림 허준(五代 五林 許埈)으로 이어지는 일가직계(一家直系) 5대의 화맥이,

한곳에서 200여 년 동안 이어지는 기록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합니다.

 

 

 

운림산방(雲林山房)으로는 모두 알수 없었던,

소치(小痴) 허련(許鍊)이후 일가직계(一家直系) 5대의 화맥과 화풍을 알수있게 해주는 소치기념관(小痴記念館)을 나옵니다.

 

 

 

조선말기에서 일제강점기 근대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느때 보다 변화가 많았던 시기에 붓을 놓지 않고 명맥을 이어 왔으며,

한때 도괴 되었다가 후손의 노력으로 복원되어 후인들이 찾아볼수 있게 되어 다행이며,

전통의 맥을 이어와 우리에게 귀감이 되게 하는곳으로,

주변 산세와 어우러지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원림을 보여주는 진도 운림산방(珍島 雲林山房)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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