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문촌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봉화 종선정(種善亭)을 찾았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4호로 지정된 종선정(種善亭)으로,

종선정(種善亭)은 동부시(宗簿寺) 주부(主簿)를 역임한 금응석(琴應石,1508~1583)의 선행(善行)을 흠모(欽慕)하여,

마을 주민들이 세운 정자(亭子)이며 17세기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으로 경사진 지형에 누마루형식을 취해 북동향하여 자리잡고 있으며,

경사(傾斜)진 지형관계(地形關係)로 인하여 배면(背面)에 출입(出入)하게 되어 있고,

자연석 허튼층쌓기한 기단에 덤벙주초를 놓고 각주를 세웠으며,

가구는 5량가로 곧게 뻗은 대량 위에 대접받침소로와 첨차를 짜아 종량을 받게 하였으며,

이 위에 파련대공(波蓮臺工)을 세워 종도리를 얹었습니다.

 

 

 

종선정(種善亭)의 현판이며,

 

 

 

우측에 트여 있는 2통칸의 온돌방을 먼저 들여여 봅니다.

온돌방 전면에는 쌍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았는데 머름 위의 창틀 중앙에도 가운데 설주 홈이 남아 있고,

 

 

 

온돌방은 옆면의 외벽쪽에도 창이 있어 밝은 편이며,

천정은 나무로 우물천정을 꾸렸습니다.

 

 

 

6칸의 마루는 너른 편이며 모두 우물마루를 깐 마루방으로 꾸몄는데,

측면과 후면은 판재로 문을 달아 판벽을 두었으며,

 

 

 

마루방의 후면 3칸에는 각 칸에 3분합 띠살창호를 시설하였는데 문틀 상하에는 가운데설주 홈이 남아 있고,

온돌방과 마루방 사이에는 기둥을 중심으로 좌우에 크기가 다른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았고,

 

 

 

마루에서 방으로 향하는 문위에는 또하나의 종선정(種善亭) 현판이 있어,

금응석(琴應石)의 선행을 알게 된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이 정자를 종선정(種善亭)이라 부르고 명명(命名)하고 친필현판(親筆縣板)을 달아 주었다고 합니다.

 

 

 

1994년 올린 중수기(重修記) 기문(記文)으로,

한글과 한문이 혼용되어 있습니다.

 

 

 

마을의 노인분이 낯선 방문객이 궁굼하신지 이것저것 물으시면서,

선행(善行)으로 세워진 종선정(種善亭)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 주십니다.

 

 

 

종선정(種善亭)의 주인 금응석(琴應石 : 1508-1583)은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봉화(奉化)로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이해(李瀣)의 아들로 이교(李㝯)의 장인이며,

만석꾼 부자로 주부(主簿)를 지낸 인물로, 

당시 오랜 가뭄과 흉년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땅에 뿌릴 씨 조차 없는 상황에,

금응석(琴應石)은 굶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농민에게는 무료로 씨를 주는 등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마루 위에서 팔작지붕의 천정 마감인 우물천정을 볼수있고,

 

 

 

어느 시기인가 이곳 정자도 단청을 했었는지,

오랜된 목재의 여러곳에서 단청의 흔적을 찾을수 있습니다.

 

 

 

정자의 마루방과 온돌방 전면에는 쪽마루를 내어 밀고 헌함(軒檻 : 대청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깐 좁은 마루)을 돌려 누마루처럼 꾸몄고,

귀맞춤한 창문얼굴과 창문틀에 남아 있는 가운데 설주를 사용했던 흔적 등 고졸한 구조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정자를 처음 세운 후 470여년이 지나는 동안 여러차례 새로 고쳐지어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문촌리의 토일천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하여,

금응석(琴應石)의 선행(善行)으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구했던 그의 정신을 찾을수 있는 곳으로,

경북 봉화의 정자 문화재, 종선정(種善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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