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으로의 고택과 정자 문화재 탐방에서,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송은정(松隱亭)을 찾았습니다.

 

안동 송은정(安東 松隱亭)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3호로 지정 되어 있으며,

 

 

 

송은정(松隱亭)은 송은(松隱) 송형구(宋亨久)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1664년(현종 5)에 학문 연마와 향촌 사림과의 교유를 목적으로 건립한 정자이며,

처음에는 이송천변(二松川邊)에 있었으,

 송형구의 후손 송인명(宋仁命)이 조상을 추모하고 유업을 계승하고자 1733년 태장리로 다시 옮겨 건립 하였습니다.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1칸 반의 비교적 작은 규모로,

마을 뒤 야산을 절토한 경사면에 남향하여 세워져 있으며,

건물 하부는 시멘트로 기단을 만들었고 정면에는 화강석 주초를 놓고 위에 4각의 누하주를 세웠고,

건물 왼쪽에 온돌방을 오른쪽에 마루방을 들였는데,

앞쪽에는 반 칸의 툇간을 두고 퇴주 앞으로 2자 정도 마루를 더 확장시켜 계자난간을 세웠습니다.

 

 

 

송은정(松隱亭)의 현판이며,

 

 

 

정자에는 여러 기문(記文)과 시판(詩板)이 편액 되어 있어,

 

 

 

10여개의 시문(詩文) 편액이 있으며,

 

 

 

송은정상량문(松隱亭上樑文)의 기문(記文)과,

 

 

 

송은정의 내력을 알수있는 송은정기(松隱亭記)의 기문(記文)이 있고,

 

 

 

일기쉽게 한글로 쓰여진 "송은정 약사(松隱亭 略史)"의 편액도 볼수 있습니다.

 

 

 

송은정(松隱亭)을 지은 송형구(宋亨久,1598~1675)는 조선 중기 문관으로,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태이(泰而)이고 호는 송은(松隱)이며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신으로,

1642년(인조 20) 식년시에 생원에 합격하였고, 같은 해 식년시에 진사에 합격하여 관직은 관상감직장(觀象監直長) 찰방(察訪) 등을 역임 하였고,

1660년(현종 1) 진사 시절부터 역서(曆書)에 관심이 깊어,

원나라 허형(許衡)이 만든 대통력(大統曆)과 명나라 때 독일 선교사 아담 샬의 시헌력(時憲曆)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였으며,

시헌력이 1644년(인조 22) 조선에 전해진 후 1653년(효종 4)부터 널리 사용되었는데,

평소 시헌력에 비해 대통력이 더욱 정확하다고 생각하여 대통력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는 방도를 찾아달라는 상소를 올렸고,

1661년(현종 2) 전관상감직장으로서 음력과 양력이 더해져 24절기에 맞추어 제정된 시헌력을 폐지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음력 대통력(大統曆)을 사용할 것을 청 하였으나 관상감에서 일식(日蝕)과 월식(月蝕)을 통해 역수(曆數)의 차이를 조사한 결과,

대통력이 시헌력에 비해 오차가 크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664년(현종 5) 관직에서 물러난 후 안동의 송천읍(松川邑)으로 낙향하여,

지역 사림(士林)들과 친목을 도모하고 학문을 연구할 목적으로 송은정(松隱亭)을 세웠습니다.

 

 

 

정자의 마루방에는 전면과 마루쪽으로 접어서 들어올려 열수있게 만든 큰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었고,

전면의 분합문(分閤門) 위에는 좁고 길다란 창을 두고 있어,

중수또는 보수를 하면서 조선말기 또는 근대기의 양식이 가미가 된듯 하며,

 

 

 

온돌방의 내부는 깨끗한 편이며 마루쪽으로 큰문인 넌출문이 있어 밝은편입니다.

 

 

 

송은정(松隱亭)의 마루에서,

정자앞에 서있는 두그루의 노송들 너머로 해질녘에 가까운 풍경을 내려다 보고,

 

 

 

왼편 으로는 들어왔던 길과 논밭 그리고 시골의 주택들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마루에서 내려와 정자의 뒤편을 살펴보고,

산 아래의 그리 넓지못한 터에 정자가 자리하고 있슴을 보게 됩니다.

 

 

 

작은 마을의 안쪽 옆의 산자락 아래의 낮은 언덕에 자리하여,

아담하고 다소 정갈해 보이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송은(松隱) 송형구(宋亨久)의 유허를 살필수 있는 곳으로,

경상북도 안동의 정자 문화재, 송은정(松隱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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